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 어디까지 왔나?

정부, 제도 정비하고 유통 체계 구축…업계는 시장 개화 대비해 기술개발·실증사업 추진

전기자동차 충전소 자료사진ⓒ뉴스1

전기차 보급 확대로 폐배터리 배출 규모가 늘고 있다. 전기차는 친환경적이지만, 각종 화학 물질로 구성된 배터리는 매립하면 환경 오염으로 이어진다. 대책이 없으면 수만, 수십만개의 폐배터리가 속수무책으로 쌓이게 된다. 정부와 민간은 폐배터리를 다시 활용해 사업화하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제도적 기반 마련과 기술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28일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 폐배터리 배출 규모는 올해 1,075개에서 오는 2025년 3만 1,696개로 약 30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보급 확대에 따라 폐배터리 배출 규모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2025년 전기차 누적 보급 목표를 113만대로 잡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수명은 6~10년 정도다. 약 500회 충전하면, 주행거리가 짧아지고 충전 속도가 느려지는 등 성능 저하가 나타난다. 통상 잔존 용량이 초기 용량 대비 80% 이하로 감소하면 전기차 배터리로서 수명을 다하게 된다.

전기차는 친환경 산업으로 여겨지지만, 폐배터리는 얘기가 다르다. 배터리 원재료로 사용되는 리튬·니켈·코발트 등 유기물질은 환경에 치명적이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배터리를 유해 물질로 분류한다.

폐배터리는 매립하거나 소각해서는 안 된다. 재활용 또는 재사용해야 한다. 재활용은 폐배터리에서 원재료를 추출해 다른 새 배터리를 만드는 데 활용하는 방식이다. 리튬·니켈·코발트 등 배터리 원재료는 희귀 광물로, 대부분이 외국에서 수입된다. 전 세계 매장량은 한정된 상황에서 전기차 보급 확대로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을 통해 원재료를 확보하면 배터리 원가를 절감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재사용은 재조립을 통해 배터리 용도를 바꾸는 방식이다. 에너지 저장 시스템(ESS) 배터리로 사용된다. 배터리를 ESS로 사용할 경우 잔존 용량이 50%로 떨어질 때까지 쓸 수 있다. 미국 국립재생에너지연구소는 잔존 용량이 70% 수준으로 떨어져 전기차 동력으로서 수명을 다한 배터리도 ESS로는 추가로 10년을 활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기차 배터리는 각종 원재료로 이뤄진 전지의 최소 단위인 셀, 여러 개의 셀을 하나로 묶은 모듈, 그 상위 단위인 팩으로 이뤄진다. 재사용은 모듈 또는 팩 단위의 재조립이 주를 이룬다.

셀 단위까지 분해해 재조립하면 용도에 맞게 설계를 재구성하는 데 유리하고 불량 셀을 걸러낼 수 있다. 다만, 해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고, 해체 작업에서 화재 발생 우려도 있다. 모듈·팩 단위의 재사용은 설계 재구성이 일부 제한되나, 효율성이 좋다.

재활용보다는 재사용이 효율적인 것으로 평가되나, 배터리가 손상돼 재사용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재활용으로 대체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자동차 배터리ⓒ출처 : LG화학

정부, 폐배터리 유통 체계 구축 추진…성능·가격 표준화 등 숙제도

정부는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 사업화를 위해 인프라 조성과 제도 마련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부는 관련 법령을 개정해 폐배터리의 민간 유통 경로를 확보했다. 기존에는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폐배터리를 지방자치단체에 반납해야 했으나, 올해 등록된 전기차부터 반납 의무를 폐지했다. 또한, 현재는 사실상 지자체가 폐배터리를 민간에 매각할 수 없도록 금지돼 있는데, 2022년부터는 민간 매각을 허용한다. 폐차장에서 회수된 폐배터리를 민간에서 바로 유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아 구입한 전기차 배터리의 소유권은 차량을 운행할 때는 차주에 부여되다가, 폐차해서 등록이 말소되면 지자체에 넘어간다. 그간 재활용·재사용 지침 부재로, 지자체는 배터리를 민간에 팔지 못한 채 떠안고 있어야 했다. 반납 의무가 사라지면 폐차 후 폐배터리 소유권도 민간으로 넘어간다.

전기차 보급 초기에는 폐배터리의 경제적 가치가 크지 않았고, 환경 오염과 화재 발생 위험도 있어 공공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었으나, 폐배터리 활용성이 가시화하고 안정성 확보를 위한 기술이 개발되면서 민간에 개방했다.

올해 등록된 전기차가 폐차되기까지 향후 약 10년간은 정부가 폐배터리 유통을 주도한다. 환경부는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를 전국 4개 권역(경기·충남·전북·대구)에 구축하고 있다. 다음달 준공 예정으로, 시범운영을 거친 후, 민간 매각이 허용되는 2022년부터 본격 운영된다. 거점수거센터는 폐배터리를 회수하고 잔존 용량 등 성능을 평가한다. 보관된 폐배터리는 민간에 매각한다. 매각 대금은 정부와 지자체로 돌아간다.

숙제도 있다. 폐배터리 유통과 활용과 관련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성능 평가 표준과 매각 대금 산정 기준 등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지난 8일 ‘K-배터리 발전 전략’을 발표하면서 폐배터리 성능 평가 등 규정 마련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경기 시흥시에 들어서는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 조감도.ⓒ환경부

업계는 기술개발·협업으로 사업화 구상…“시장 개화 대비”

배터리 기업도 폐배터리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때를 대비해 사업화 모델을 구상하고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폐배터리를 재사용해 만든 전기차용 충전 ESS 시스템을 오창공장에 설치했다. 10만km 이상을 달린 전기 택시에서 떼어낸 배터리를 전기차 충전 배터리로 활용한다. 전기료가 저렴한 심야 시간대에 ESS를 충전하고, 전기료가 비싼 낮 시간대에 전기차를 충전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게 LG에너지솔루션 설명이다. 폐배터리 충전기 운영은 사업화에 앞서 자체적인 실증 차원에서 진행 중이다.

다른 업종과의 협업도 이뤄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2월 현대자동차 현대글로비스 KST모빌리티와 폐배터리 활용 실증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폐배터리를 매입해 안전성과 잔존 용량을 분석해 ESS를 만든다. ESS가 탑재된 충전기는 KST모빌리티에 판매한다. 모빌리티 플랫폼 마카롱택시를 운영하는 KST모빌리티는 LG에너지솔루션이 만든 충전기로 현대차의 코나EV 택시를 충전한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기술개발과 협업을 통해 다양한 폐배터리 재활용·재사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재활용 관련 기술도 개발이 진척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폐배터리에서 니켈, 코발트 등 원재료를 추출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관련 특허도 54건 출원했다. 2022년 시험 생산을 시작해 2024년 상업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분 투자를 통한 시장 진입 움직임도 보인다. 삼성SDI는 지난 2019년 폐배터리 재사용 전문기업 피엠그로우 지분을 사들였다. 피엠그로우는 최근 경북 포항에 배터리 그린 사이클 캠프를 구축하며 폐배터리 재사용 사업 구체화에 나섰다. 폐배터리 성능별로 등급을 매기고 ESS로 재사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폐배터리 물량이 쏟아져 나오는 시점이 아니기에 전반적으로 재활용·재사용 사업 모델이 뚜렷하지는 않다”라면서도 “향후 폐배터리 시장 확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폐배터리 처리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 문제도 있어, 수익성과 ESG 측면에서 사업화를 위한 준비를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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