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할까? 헌법 제11조는 누구든지,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특별히 잘못한 것이 없어도 차별을 받아들여야 하고, 법도 이를 인정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 존재한다.
바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이야기다. 이들은 사용자가 영세하다는 이유로 다른 노동자는 모두 적용받는 노동법적 권리에서 배제되어 왔다. 5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허용한 게 지난 1998년이니, 그 이후로 또 사반세기 동안 노동자의 권리찾기는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겪는 차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대 흐름과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임금과 관련하여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연장, 휴일, 야간 근로를 하더라도 법으로 보장된 가산 임금(통상임금의 50%)를 받지 못한다. 근로기준법 제56조를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귀책사유로 휴업을 하면 노동자는 평균 임금의 70%를 휴업수당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예외인데 근로기준법 제46조를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실제 코로나19로 인해 휴업하는 기업이 많았는데,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왜 이런 차별을 받아야 하는지, 그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용자가 영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용자의 경영 상황은 중요하고, 노동자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냐는 반문에 대한 명쾌한 답은 거의 없다.
더 큰 문제는 건강을 위협하는 ‘장시간 노동’이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주40시간제(주당 최대 52시간)적용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사용자는 주당 60시간, 혹은 유명 정치인의 말처럼 주당 120시간 일하라고 노동자에게 요구할 수도 있다. 물론 그렇게 일해도 연장근로수당은 없다.
노동자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그런데 억울해도 따질 수 없다.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용자는 근로기준법 제23조를 면제받아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노동자를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따지고 저항한 노동자는 해고되었고, 다른 노동자가 그 자리를 채워 왔다.
정말 심각한 것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되고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 대상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은 제외되었는데, 2020년 기준 중대재해의 35%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통계)한 상황을 고려하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다. 직장 내 괴롭힘도 작은 사업장에서 더 많이 발생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에 에 5인 미만 사업장은 빠져 있다. 대체 공휴일법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인들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중대 재해, 직장 내 괴롭힘, 대체공휴일 관련 법 적용 대상에서 왜 제외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고 있다. 그저 근로기준법 따라가기만 반복하고 있다. 마치 ‘원래 차별받던 사람이니까 계속 차별받는 게 당연하다’는 식이어서 섬뜩하다.
이렇게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권리에서 제외되는 사이, 해당 기업들의 각종 탈법 행위는 늘었다. 5인 미만으로 기업체를 유지할 경우, 더 적은 임금으로 많은 일을 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류 상 5인 미만의 회사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40명이 일하는 회사이지만 법인을 10개로 쪼개 5인 미만 사업장을 만드는 방식이다.
그래서 일까, 2019년 전국사업체조사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이 크게 늘었고,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도 꾸준히 늘어 전체 임금노동자의 42.7%(604만 명)가 되었다(통계청 전국사업체조사).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42.7%가 장시간 노동, 중대재해, 직장 내 갑질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억울한 죽음이 사라져야 한다. 장시간 노동으로 죽고, 직장 내 괴롭힘에 죽고,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그보다 큰 사업장 노동자들과 똑같은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통해 어떤 권리를 침해받고 있으며 고충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실태조사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중대재해처벌법,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대체공휴일법 등을 동등하게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영세 사업장의 보건 관리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현재 23개에 불과한 근로자건강센터를 대폭 확대하여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넷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조직된 노동조합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초기업교섭을 확대하고 단체 협약 효력확장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MZ 세대의 공정성 요구, 보편적 복지 확대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라는 목소리엔 슬그머니 눈을 감는다. 심지어는 “아직도 그런 일이 있어?”라고 반문하기도 한다. 지난 24년 동안 계속 반복되고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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