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최재형 씨, 그 집안 며느리들이 왜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지 알려드리죠

스무 명에 가까운 대가족이 설 명절에 모여 가슴에 손을 얹고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한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이런 사진을 스스로 공개해 자랑질을 하고 다닌다. 이런 엽기적인 세상이 있나? 21세기가 시작된 지 20년이 지났는데, 내가 아직도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픈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혹자는 “남이야 설날에 애국가를 부르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고 하던데, 천만의 말씀이다. 그 ‘남’이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라면 자기들끼리 모여 애국가를 부르건 기미가요를 부르건 그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 나선 이가 이런 짓을 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최 전 감사원장은 이런 행동을 ‘국민의 모범’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가 자발적으로 이 사진을 자신의 이름을 건 유튜브 채널(최재형 TV)에 공개했을 리가 없다. 그래서 그가 대통령이 되면 온 국민이 이런 행위를 정서적으로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다.

논란이 커지자 최 전 감사원장의 가족들이 발 벗고 나서 “나라가 잘된다면 애국가를 천번 만번이라도 부를 것”이라고 항변했단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누군가가 애국가를 천번 만번 부른다고 나라가 잘 될 턱이 있나?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애국가 완창이 나라가 잘 되는 지름길이라 굳게 믿는다. 대통령과 그 가족의 정서가 이렇다면 국민들이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도리가 없는 거다.

비판이 거세지자 친야권 성향의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근본 있는 집안은 저렇게 한다”는 말까지 나왔단다. 내가 걱정하는 게 바로 이런 정서다. 설날 모임에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지 않으면 졸지에 근본 없는 집안 출신이 되는 거다.

나는 진심으로 두렵다. 설날에 가족끼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 대신 “삼촌, 조국에 충성하기 참 좋은 명절이어요”, “그래 우리 조카도 올해는 꼭 더 큰 애국하고 살아야 한다” 뭐 이런 인사를 나누는 날이 멀지 않은 건가?

그건 자발적인 행위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 무서운 점은 최 전 감사원장이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이 사진에 대해 해명하며 “우리 집안 며느리들도 기꺼이 참석하고, 아주 같은 마음으로 애국가를 열창한다”고 말한 대목이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보면 머리에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 않나? 전직 대통령 박근혜가 각종 재단을 만들어 기업으로부터 삥을 뜯은 일 말이다. 그에 대해 박근혜가 내놓은 항변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기업들도 “우리는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받은 쪽도, 준 쪽도 다 자발적이란다. 그러면 그 ‘삥’이 진정 자발적인가?

2008년 초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 대통령 당선인 이명박이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헛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일단 숭례문이 무슨 결손 가정이냐? 불우이웃이냐고? 성금으로 돕게?

그런데 이런 희대의 헛소리를 대통령 당선인이 하면 국가가 공포에 빠진다. 왜냐? 만약 국민 성금이 진짜로 시작됐다면 대기업부터 시작해 중소기업, 각종 공공기관, 무슨무슨 사회단체 등이 줄줄이 그 국민성금에 참여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멍청한 이명박은 “봐라, 내 말대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냈다”고 뿌듯해 했겠지만, 그게 진짜 자발적이라고 믿는 뇌는 이미 뇌의 기능을 상실한 거다.

그 집안 며느리들의 애국가 완창도 마찬가지 아닌가? 최 전 감사원장은 그게 자발적이라고 굳게 믿겠지만, 그걸 믿는다는 점 자체가 이미 그의 뇌가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 네티즌이 그 기사에 올렸다는 댓글이 있다. 이 댓글이 진실에 훨씬 가깝지 않은가?

“시아버님, 그건 네 생각이고요.”

왜 그들이 복종하나?

최 전 감사원장은 가부정적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쥔 시아버지의 권력이 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는 그 권력의 정점에 선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저런 집안의 며느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시아버지의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다. 애국가 4절이 아니라 40절까지 부르라고 해도 부르게 돼 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가족들이 애국가를 제창하는 모습ⓒ최재형TV 캡쳐

하지만 이렇게 말해줘도 최 전 감사원장은 절대 이해를 못할 테니 좀 학술적으로 접근해보자. 최재형 씨, 이게 바로 당신 집안 며느리들이 찍 소리도 못하고 애국가를 완창하는 이유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신분석학자로 칭송받는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저서 『불복종에 관하여』에서 ‘사람이 왜 부당한 권력에 복종하는가?’에 대해 다음의 이유를 든다. 첫째, 복종을 해야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프롬의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인간은 이토록 쉽게 복종으로 기우는 것일까? 인간에게 불복종이란 왜 이렇게 하기 힘든 것일까? 국가, 교회, 여론 등의 권력에 복종하는 한 우리는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복종을 통해 나는 내가 숭배하는 권력의 일부가 되고, 따라서 나 역시 강한 존재가 되었다고 느낀다. 나는 오류를 범할 리 없다. 권력자가 결정을 내려주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일 리 없다. 권력자가 나를 늘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죄를 범할 리 없다. 권력자가 내가 죄를 범하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죄를 짓는다 해도, 징벌은 내가 전능한 권력자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된다.

당신 집안 가족들이 복종하는 이유는 당신이 권력의 정점에 선 ‘숭배 받는 권력’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하고, 사법연수원장도 하고, 감사원장도 하고, 대통령 후보로도 나설 정도가 되면 가족들은 더더욱 당신의 권력을 숭배한다. 그래서 그 권력에 복종하면 아버지가 나를 보호해 주고, 나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며, 나의 허물도 숨겨진다고 믿는다. 이게 바로 그들이 복종하는 이유다.

프롬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역사적으로 불복종이 권력 앞에서 악(惡)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프롬의 설명이다.

불복종하는 것, 권력자에게 감히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인 까닭이 또 있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복종은 미덕과, 불복종은 악덕과 동일시되어 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기간 동안 소수가 다수를 지배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복종하는 이유가 오직 두려움뿐이라면, 되어야 할 많은 일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힘에 대한 공포에서 나오는 복종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복종으로 바뀌어야 한다. 단지 불복종하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복종을 원하고 심지어 복종을 필요로 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안 봐도 비디오지만, 최 전 감사원장 같은 집안에서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는 것은 미덕이고, 불복종하는 것은 악덕이다. 이게 너무나 명확하기에 애국가 4절을 완창하는 집안 며느리들은 자기들의 복종을 자발적인 것이라 굳게 믿는다. 왜? 그게 미덕이니까!

만약 집안 가족 중 하나가 용기를 내 “아버님. 전체주의도 아니고 이게 뭔가요? 설 명절에 애국가 완창은 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고 가정해보라. 그가 그 집안에서 어떤 취급을 당했겠나?

그래서 프롬은 “불복종의 역량을 잃은 사람은 자신이 복종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논란 이후 가족들이 게거품을 물고 “우리는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불렀어요”라고 나서는 이유다. 최 전 감사원장은 그런 가족들을 보고 “우리 집안 며느리들은 진짜로 자발적으로 애국가 완창에 동참한 거여요”라며 흐뭇해하는 거고.

저런 복종을 자발적 행위라고 믿는 자가 대통령이 된 세상을 상상해보라. 실로 끔찍하지 않은가? 온 관공서가 명절 때마다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하고, 숭례문이 불에 타면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국민 성금을 모아 복원하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각종 재단에 돈을 갖다 바치는 실로 아름다운 세상이 오지 않겠나?

프롬은 이런 종류의 복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하며 “역사의 현 시점에, 의심하고, 비판하고, 불복종하는 능력이야말로 인류의 미래냐, 문명의 종말이냐를 가를 모든 것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며느리의 저런 복종을 자발적이라고 믿는 최 전 감사원장 같은 자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는 문명의 종말을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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