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바로 진보] ‘기업 책임’ 사라진 탄소중립 시나리오 ‘멈춰!’

정부에서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 이후 10개월 만에 구체 방향을 내놓은 것이다. 가장 가깝게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서부터 산업 전반에 대한 기후위기 대응 방안 구상, 희생 없는 정의로운 전환 계획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담길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향후 30년을 결정짓는 시나리오에 귀추가 주목되었다. 하지만 시나리오는 맹탕 그 자체이다. 국민들이 기대하는 구체 계획과 로드맵은 없고 시나리오를 3개 제시해 더 헷갈리게만 한다. 이래선 지난해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에서 숫자 목표만 몇 개 더 추가된 것 말고는 뭐가 달라진 건가 싶다.

윤순진 2050 탄소중립위원회 공동위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열린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공개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1.08.05.ⓒ뉴시스

정부 측은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가 탄소중립 미래상과 부문별 전환 과정을 전망한 것으로 부문별 세부 정책 방향과 전환 속도 등을 가늠하는 나침반 역할에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나리오는 3가지 안으로 구성되어 있다. 석탄발전 유무, 전기·수소차 비중 등 핵심 감축 수단과 그 수준에 따라 3가지 대안 시나리오를 마련했다고 탄소중립위원회는 설명했다. 하지만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탄소중립 목표를 명확히 한 것은 3안뿐이었다. 심지어 1안과 2안은 기후위기 주원인인 화력발전소를 유지하는 방안이다. 나침반의 역할이라는 탄소중립이라는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나침반은 바늘이 세 개인 나침반이고 그중 두 개는 탄소중립으로 갈 수 없는 가짜 나침반 바늘인 셈이다. 기후 재난이라는 위협 앞에 명확한 길을 제시해도 모자랄 판국에 국민들을 3가지 갈림길 앞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갈림길 앞이라면 나아갈 방향을 정하기가 더 어렵고 혼란스럽지 않겠는가. 더욱이 ‘석탄발전소를 유지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포함해 이번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탄소중립 ‘포기’ 시나리오라는 조롱만 듣게 되었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 1위 포스코, 2위~6위 발전기업
‘사업주의 자발적 의사 없이 석탄 발전 중단 어렵다’는 위원회
결국 탄소중립 없는 탄소중립 시나리오 탄생

탄소중립 시나리오 브리핑 후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에게 석탄발전소 유지 방안이 시나리오에 포함된 이유에 대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다. 이에 대한 답변은 ‘사업주의 자발적 의사 없이 중단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취지로 몇 차례 반복되었다. 여기에서 이 로드맵도 없고 탄소중립도 아닌 시나리오가 발표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기후위기를 만들어낸 석탄화력 발전을 막을 계획도 기업에 책임을 물을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탄소중립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없으니 이도 저도 아닌 시나리오를 들고 와 공론화와 의견수렴을 거치겠다며 국민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정부는 기후위기를 절박한 과제로 이해하지 못했단 걸 고백한 꼴이 되었다. 석탄을 태우며 돌아가는 사회가 기후위기의 원인이고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은 기업에 있다는 것을 외면했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부문별로 따지면 발전과 산업 부문이 70%대를 차지한다. 상위 30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가 전체 배출량의 71.5%에 이른다. 1위는 포스코 2위부터 6위까지는 발전기업이 차지했다. 탄소중립은 후퇴해선 안 될 목표로 제시했어야 하며 석탄발전 퇴출, 기업 책임 강화라는 최소한의 원칙이라도 세웠어야 한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22일 오전 경남 고성군 소재 삼천포화력발전소 굴뚝에서 흰 연기가 잿빛 하늘로 뿜어져 나오고 있다. 2019.02.22.ⓒ뉴시스

시나리오는 아직 초안이고 9월까지 산업계, 노동계, 청년, 시민사회, 지자체 등 분야별 의견수렴과 일반 국민 500명으로 구성된 ‘탄소중립 시민회의’를 통해 의견수렴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처 간 추가 논의 결과를 종합 반영해 10월 말 정부 최종안이 확정될 예정이라 한다. 시나리오 초안은 탄소 중립 목표도 명확하지 않고 방향도 분명하지 않다. 성의 없는 초안이니 의견 수렴할 수준도 되지 못한다. 지금의 맹탕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전면 폐기하고 다시 작성되어야 한다. 속도도 중요하지만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이다. 끝도 없이 생산하고 소비하며 처리하지 못할 쓰레기를 양산하고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에너지를 무한대로 소비하는 이 시스템 전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구상이 없이는 기후재난을 막을 수 없다. 석탄 발전을 멈추고 기업과 자본에 온실가스 배출 책임을 분명히 묻는 계획만이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벗는 유일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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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솔 신촌기후행동청년넷 대표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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