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속박에서 벗어나는 투쟁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더구나 그것이 나의 신념과 다른 체제, 나와 다른 민족에 의한 강압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 욕구는 더욱 강하게 표출되겠지요. 19세 유럽은 용광로의 쇳물이 끓어 오르듯 저항과 통일의 움직임이 가득했습니다. 스페인의 프랑스에 대한 저항을 프란시스 고야는 두 장의 그림으로 남겼습니다.

1808년 5월 2일 The Second of May 1808 1814 oil on canvas 266cm x 345cmⓒ프라도 미술관

말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던 한 무리의 병사들이 사람들 사이에 갇혔습니다. 말을 탄 병사는 뒤에서 그를 끌어당기는 사람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칼을 들어 그를 찌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앞에서 말을 타고 가던 병사는 이미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데, 그를 향해 한 사내가 칼을 겨누고 덤벼들고 있습니다. 길바닥은 쓰러진 사람들과 그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아비규환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는 이곳은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이고 날짜는 1808년 5월 2일입니다. 등장하는 군인들은 프랑스 군대 소속의 마믈루크(터키 용병인데, 자료에 따라서는 모로코 또는 이집트 용병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이고 그들을 공격하는 사람들은 마드리드 시민들입니다.

1808년 5월 2일 그림 일부ⓒ기타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하고 있던 1808년 5월 1일, 프랑스 육군 대장 뮈라는 마드리드에 있던 스페인 왕국의 왕자들을 프랑스로 옮기는 작전을 펼쳤습니다. 왕실을 그렇게까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지만 스페인 왕자와 왕비가 프랑스로 끌려가는 것을 마드리드 시민들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5월 2일 아침, 밤잠을 설친 시민들은 프랑스 관리들과 부딪치기 시작했고 프랑스군과 창기병들은 시민들의 시위를 가혹하게 진압했습니다. 마드리드 시내가 피로 물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마믈루크도 시민들의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프랑스에 대한 스페인 독립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의 독립 정신을 담은 이 작품은 혼란스러운 인물들의 배치로 ‘1808년 5월 3일’과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중심 초점이 없는 구성이 오히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더 절실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1936년 스페인 내란 당시 독일군의 폭격으로 프라도 미술관이 위험해지자 공화국 정부는 이 작품을 트럭에 실어 다른 곳으로 옮기고자 합니다. 그러나 트럭이 사고를 당하면서 작품은 부서지고 심지어는 몇 개의 조각은 잃어버리고 맙니다. 1941년 1차 보수를 했지만, 완전히 복원된 것은 2008년이었습니다.

1808년 5월 3일 The Third of May 1808 1814 oil on canvas 260cm x 340cmⓒ프라도 미술관

깊은 밤, 한바탕 총소리가 지나가자 앞에 서 있던 몇 사람이 피범벅이 되어 쓰러졌습니다. 병사들이 다시 총에 장전을 끝내자, 니내 몇 명의 사내들이 끌려 나왔습니다. 곧 맞이하게 될 죽음 앞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1808년 5월 3일 그림 일부분ⓒ기타

흰 옷을 입은 남자는 마치 십자가의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정면을 향하고 있지만 죽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이 지옥 같은 광경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일체의 표정 없이 등만 보이고 있는 병사들 너머로는 어둠 속의 교회 건물이 보입니다. 교회는 이 모습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술가가 남긴 인간의 인간에 대한 잔학한 행위를 고발한 것 중 가장 통렬한 작품’ 속 그 사람들은 평범한 마드리드 시민이었고 이날은 1808년 5월 3일이었습니다.

1808년 5월 3일 그림 일부분ⓒ기타

1807년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으로 진입하고 나자 1808년 3월 17일, 마드리드 근처의 아랑후에스에서 카를로스 4세를 몰아내고 그의 아들 페르디난도 7세를 왕으로 추대하는 반란이 일어납니다. 나폴레옹은 스페인 왕가의 분열을 이용해 자신의 동생, 조제프를 스페인 왕으로 만들 계획을 세웁니다.

5월 2일 마드리드에는 카를로스 4세와 페르디난도 7세가 프랑스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았고 마드리드 시민들은 프랑스 군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이날 시민들의 저항으로 프랑스 군인 150명 가량이 사망하고 맙니다. 물론 시민들의 피해도 컸지요.

다음 날인 5월 3일 아침, 프랑스 군대는 임시 재판소를 열고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총살을 시작합니다. 해가 떨어지고 난 뒤엔 재판도 없이 사람들을 처형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프랑스군은 닥치는 대로 살육하기 시작했다. 창문으로 총탄을 퍼부어 집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조리 학살했다. 한 수도원의 문을 박살내자 목 잘린 수도승들의 머리가 비 오듯 거리로 쏟아졌다’

광복절이 다가옵니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분들이 꿈꾸었던 세상을 지금 우리는 제대로 만들고 살아 가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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