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원준의 경제비평] 기본대출,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남에게 돈을 빌릴 때 그 대가로 대개 이자를 지불한다. 이자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여러 설명을 제시해왔다. 그 설명 중 하나를 살펴보기 위해 돈을 빌려가는 사람이 빌린 돈을 확실히 제때에 갚는다고 가정해 보자. 말하자면 돈 백만 원을 당장은 쓸 일 없어 남한테 빌려줘도 나중에 내가 필요하면 아무 어려움 없이 어떤 위험도 없이 백만 원 그대로 돌려받을 수 있고 그런 사실을 모두가 안다. 자, 이런 경우에도 돈을 빌려주는 쪽에서 이자를 요구하는 것이 공정한가?

‘공정 이자율’은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나 빌리는 사람
누구에게도 불리하지 않은 이자율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 루이지 파지네티라면 이 질문에 대해 이자가 0원이 아닌 것이, 즉 이자율이 0%가 아닌 것이 대체로 공정하다고 답했을 법하다. 위험이 전혀 없는데도 공정한 이자율이 0%가 아니라고? 그렇다. 파지네티의 설명은 이렇다. 오늘은 가령 백만 원으로 10시간의 노동시간을 구매할 수 있다고 하자. 그런데 만약 일 년 사이에 노동 생산성(단위 시간 동안의 생산량)이 향상되고 물가가 올라 임금이 10% 상승했고 이로 인해 일 년 후 10시간의 노동시간을 구매하기 위해 백십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면, 오늘의 백만 원과 동등한 가치를 갖는 일 년 후의 화폐금액은 백만 원이 아니라 백십만 원이다. 그래야 동일한 10시간의 노동시간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백만 원은 일 년 후에는 10% 늘어난 백십만 원과 같은 가치를 갖는다. 이 경우 ‘공정 이자율’은 10%가 된다.

파지네티는 시민들이 노동으로 생산에 기여하는 것에 비례하도록 소득이 분배되어야 공정하다고 생각했다. 앞의 예에서 오늘 백만 원을 빌려주면서 일 년 이자로 이십만 원을 받는다면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빌리는 사람 사이의 소득 분배가 공정하지 않게 된다. 오늘 10시간에 해당하는 돈을 빌려주면서 미래 10시간 넘는 노동시간에 해당하는 돈을 받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지네티의 이 원칙은, 이자율이 어떤 수준일 때 분배 측면에서 공정한가에 대한 하나의 유력한 설명이다. 작년 말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2012-2019년 기간 동안 한국경제의 평균 공정 이자율이 3%에 가까운 크기로 계산되었다. 물론 공정 이자율은 노동 생산성과 물가가 어떻게 변하는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한다. 2017년과 2018년에는 4%에 달했고 2019년에는 2%에 못 미쳤다.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고 경제회복이 본격화되면 공정 이자율은 오를 수 있다.

16일 서울 중구 한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건물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뉴스1

기본대출이 정부의 손실 보전 하에 공정 이자율로
누구에게나 동일한 대출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포용 금융의 한 형태

이제 어떤 대출기관(은행, 신협, 상호금융, 저축은행 등 자금을 빌려주는 금융회사)이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기본대출’ 사업에 대해 손실 보전 약속을 받고 시민들 누구에게나 일정 한도의 돈을 대출해준다고 하자. 만약 정부 보증에 힘입어 대출기관이 미래에 정상적인 이윤을 벌어들이지 못할 위험이 사라지게 된다면 어떨까? 이들로서는 실제로는 최근 기준 약 2% 정도로 예상되는 공정 이자율만 받아도 특별히 손해 볼 일이 없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른 차이는 기본대출에서는 정부의 손실 보전으로 인해 사라진다. 누구나 같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되는 배경이다. 시장을 놓고 벌어지는 점유율 경쟁까지 고려하면 대출기관으로서는 기꺼이 누구에게든 신용등급을 따지지 않고 재산 조사 없이 동일한 이자율로 자금을 빌려줄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기본대출이 이루어진다면,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정부가 은행의 팔을 비틀어 신용을 강제 배분한다고 볼 만한 구석은 없다.

누군가는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다. 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자율로,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은 높은 이자율로 자금을 빌리게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데 신용등급은 부자일수록 높을 수밖에 없다. 소득과 재산이 많으면 금융 기회를 충분히 누리며 이자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1금융권 은행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의 대출을 받기 쉽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한테는 그럴 기회가 없다. 최근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 하위 20% 가구가 받은 대출은 소득 상위 20% 가구가 받은 대출에 비해 10분의 1도 안 된다. 더욱이 상위 20%는 대출 가운데 은행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반면 하위 20%는 그나마도 그 비중이 줄어들면서 대부업체와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다. 부와 가난이 나란히 대물림되는 가운데 소득 계층별로 금융 기회의 격차가 커지고 있고 다시 이로 인해 불평등이 더욱 확대되는 형국이다.

필자는, 가난한 사람한테는 시장 원리대로 가급적이면 돈을 빌려 쓰기 어렵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꼭 옳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는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다. 유엔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가 주도하는 ‘포용 금융’ 논의에 따르면,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면서 제도권 금융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온당하다. 기본적인 수준의 금융 서비스라면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가 이해하는 바대로 기본대출이란 것이 정부의 사업 손실 보전 하에 공정 이자율로 누구에게나 동일하지만 제한된 대출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포용 금융의 하나의 실천 가능한 형태일 수 있다. 이를 두고 공갈이라며 무작정 폄하부터 하는 것은 협소한 기득권 시각일 뿐이다.

정부의 역량에 따라서는 손실 보전을 위한 재정 부담은
충분히 관리될 수 있어

현재 논의되는 기본대출 계획은 향후 완성되고 공개될 금융 구조의 내용에 따라 그 경제적 효과가 다르게 계산될 전망이다. 앞으로의 제도 설계가 중요한 까닭이다. 하지만 미리 명확하게 해둘 점은 있다. 먼저 정부가 기본대출 사업의 손실을 보전함에 있어서는 대출기관 이윤의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부분까지 보장해줄 필요는 없다고 하겠다. 정부는 앞에서 언급한 수치를 가져오자면 가령 2% 이자율에 해당하는 수입을 대출기관에 보장해주면 된다. 만약 기본대출의 이자율이 3%라면 그 차이인 1%는 손실 보전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결국 기본대출 사업의 제도 내용도, 재정 부담도, 대출기관을 상대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정부의 역량에 달려 있다. 유능한 정부라면 손실 보전을 위한 재정 부담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소모적인 논란을 줄여야 한다. 기본대출을 마치 안 갚아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전 국민 모두가 각자의 기본대출 한도를 전액 실제로 써야만 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해서도 안 된다. 충분히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릴 수 있는 부자까지 단지 이자율이 더 낮아서 기본대출을 쓰게 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늘어나는 가계부채는 내세울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는 기본대출의 이자율을 지금 제안된 수준보다는 조금 더 높게 정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기본대출의 이자율이 오르면 그만큼 손실 보전 재원도 확충할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빌딩에서 줌 화상 기자회견을 통해 기본금융 관련 5차 정책발표를 하고 있다. 2021.08.10ⓒ정의철 기자/공동취재사진

기본대출의 문제의식은 신용 제약을 완화해
경제 전체적으로 성장 기회의 총량을 늘리고 복지를 보완하려는 것

무엇보다도 기본대출이라는 아이디어가 출발점에서 가졌을 법한 본래 문제의식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학에서는 금융 시장이 완전하지 않아 경제주체들이 ‘신용 제약’(필요한 자금을 사회적으로 최적인 수준까지 빌리지 못하는 제한)에 처하기 쉬우며 이 신용 제약은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보수적인 경제학자라도 그런 사실까지 부인하지는 못한다. 기본대출은 그 신용 제약을 풀어줌으로써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미래를 고려해 자금 배분 계획을 개선하고 인적 자원을 계발하는 것을 도울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제 전체적으로 성장 기회의 총량을 늘리고 복지를 보완하는 긍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제도 설계 과정에서는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충분히 검토하고 보완책을 준비해야

기본대출에 대한 세간의 우려 중에는 가계부채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최근 이자율이 상승 압력을 받는 가운데 가계부채 문제의 심각성이 대두되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기본대출의 적지 않은 부분은 기존 고금리 대출을 갚는 용도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기본대출 때문에 금융 부문이 부실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는 기우일 수 있다. 기본대출은 금융 방식을 활용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 재정 사업인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기본대출로 장만한 돈을 가상자산 등에 투자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 정책에서는 늘 등장하는 문제이다. 기본대출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상자산이 골칫거리라면 가상자산 시장을 제도화해 각종의 사기와 해킹, 시세조작 등 피해로부터 투자자를 제대로 보호하면 될 일이다. 서로 다른 문제들을 뒤섞어서는 해결이 안 된다. 기본대출은 기본대출대로, 가상자산 규제는 가상자산 규제대로 제도를 잘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설 명절을 앞둔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은행 강남본부에서 관계자들이 시중 은행에 공급할 설 명절자금을 방출하고 있다. 2021.02.04.ⓒ사진공동취재단

청년 대상 사업으로 제도 초기에 안정성을 확보하는 접근은 바람직

향후 기본대출 사업은, 현재 계획대로 청년층을 대상으로 개시하는 편이 맞다. 청년층은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관계로 대출기관이 이들의 미래를 가늠할 만한 과거 신용 이력이 없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청년들은 실제로 빚을 잘 갚을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사전에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 경우 금융에 대한 접근성은 특히 낮아진다. 경제학 용어로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청년기는 자산 형성을 시작하는 시기이기도 하므로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는 절실하다. 이와 같은 부조화는 청년 대상 기본대출로 일정 부분 완화할 수 있다.

기본대출의 대상을 초기에 청년층으로 제한하는 것은 기본대출 제도의 안정성을 조기 확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론에 따르면, 대출로 자금이 제공되고 다시 상환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게임’이 아니라 ‘1회만의 게임’과 같은 상황이 되면 돈을 빌린 측에서 의도적으로 빚을 잘 갚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청년층은 생애 남은 기간이 길기 때문에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환에 더 적극적이기 쉽다. 기본대출이 도입되는 초기에 제도가 제대로 안착되려면 채무 불이행 사례를 최소화함으로써 시민들의 지지와 공감대를 확보해가야 한다. 그런 이유로도 기본대출을 청년 대상 사업으로 시범 운영하겠다는 현재의 접근법은 현명해 보인다.

진보 의제로서의 기본대출에 대한 성숙한 사회적 논의를 기대한다

2021년 한국사회에서 공정성은 여러 서로 다른 얼굴로 나타나고 있다. 다만 가난을 직접 겪는 서민, 진짜로 돈이 없는 사람들의 시선에서는 기본대출을 공정한 것으로 직감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약자를 버려두지 않고 보호하는 국가에서는 잘 설계된 기본대출이 전통적인 복지제도를 금융적인 방식으로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법하다. 그런 점에서 기본대출은 특정 대선 예비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앞으로 가치 있는 진보 의제가 될 수 있다. 기본대출 제안을 둘러싼 보다 성숙한 사회적 논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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