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선미는 K-POP의 최선두에 서 있다

선미의 세 번째 미니앨범 [6분의1]

선미의 새 음반 [6분의1]을 들으면 몇 가지 고정관념을 확실히 버려야 한다. 아이돌 뮤지션은 다른 사람이 써준 곡을 대신 연행하는 존재일 뿐이라는 고정관념. 그리고 댄스뮤직으로는 뮤지션의 고민과 사유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 말이다.

원더걸스에서 활동하다 2013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 선미는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 ‘날라리’, ‘보라빛 밤’을 비롯해 자신의 노래 가사를 직접 쓰고 곡을 만들어 왔다. 모든 역할을 선미 혼자서 다 해낸 것은 아니지만, 가사를 누군가와 함께 쓰다가 어느새 홀로 쓰고, 곡 작업에도 꾸준히 참여했다. 이 사실은 선미가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는 점에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미의 음악 역량이 꾸준히 성장했으며, 스스로 성장하기 위해 도전했다는 사실, 그리고 선미가 쓴 노랫말에 여성으로, 아티스트로, 청춘으로 살아가면서 쌓아둔 이야기가 담긴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이제 곡을 쓰는 아이돌 뮤지션이 선미 혼자만인 것도 아니다. 이는 더 이상 ‘아이돌 뮤지션’ 대 ‘싱어송라이터’의 대립항으로 뮤지션의 위계를 설정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자신의 메시지를 잘 표현하는지, 그 메시지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가늠하는 일이다.

선미의 세 번째 미니앨범 '6분의1' 메인 이미지ⓒ사진 = 어비스컴퍼니

그래서 선미가 꾸준히 댄서블한 음악을 발표하면서 복고적인 사운드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진다. 원더걸스의 활동이나 레트로 열풍과 무관하지 않을 선미의 음악 스타일은, 일회적이지 않은 지속성을 보이며 선미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해냈다. 게다가 음반의 수가 늘어가는 동안에도 ‘동어반복’처럼 느껴지지 않을 만큼 미묘한 변화와 차이를 보여왔다.

8월 6일 발표한 선미의 새 EP [6분의1]은 제목처럼 여섯 곡의 노래로 선미의 세계, 선미다운 음악을 다르게 보여준다. 이 앨범은 디스코, 신스 팝 등의 장르를 활용한 복고적인 사운드의 댄스 팝을 중심으로 한다.

이번에도 음반 모든 곡의 가사를 직접 쓴 선미는 자신의 경계성 인격장애를 노래로 고백한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며 살아가는 이의 고통을 “너에게 맞춰서/살아간다는 게/더는 견디기 힘들어/내가 누군지도 모르겠어/니가 만든 틀에 날 구겨 넣어”(‘Narcissism’)라는 가사로 노래한 곡도 있다. 관계가 끝났다고 선언하는 ‘Call’과 약을 먹어가며 버티는 “짓눌린 마음”의 고통을 노래하는 ‘6분의1’을 들으면, 선미의 노래가 자신의 경험이건 아니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꽂힐 수밖에 없다고 동의하게 된다. 어쩌면 그 전에 흥얼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

선미가 어두운 내면만 노래하지는 않는다. 음반에는 여름 휴가와 사랑 이야기를 버무린 곡 ‘SUNNY’가 있고, 왜 내 맘을 몰라주냐고 따지는 ‘You can't sit with us’도 있다. 노래마다 제각각 음반의 1/6을 담당한다. 메시지가 다르거나 음악 스타일이 다른 각각의 곡들은 이 음반을 파노라마처럼 출렁이며 들을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음반은 선미의 이전 음반들과는 다르다. 그 이유는 마지막 곡의 록킹한 사운드나 가사에서 드러난 내밀한 자기 고백 때문만이 아니다. 모든 곡에서 더 유연하고 안정된 선미의 보컬이, 매력적인 복고적 사운드의 향연 속에서 ‘보컬리스트 선미’의 진화를 은근하게 보여준다. 애원하고, 즐기고, 힘겨워하는 이야기. 당당하고, 두려워하고, 고백하는 다른 이야기를 노래할 때 선미의 목소리는 더 부드러워지고 편안해졌다. 과시하거나 압박하지 않는 선미의 창법은 선미의 노래를 여유롭고 자유롭게 한다.

음반에 담은 곡들에는 제각각 좋은 멜로디와 맛깔스러운 비트와 사운드가 버무려져 있는데, 곡의 서사와 사운드에 완전히 끌려가지 않은 목소리의 거리가 음악의 품격과 매력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덕분에 노래를 듣는 이들도 노래를 더 깊게 들을 수 있다. 더 매끄럽게 스며들 수 있다.

음악의 밀도에 대해서는 듣는 이들마다 취향이 있어 다른 감각이 작동할 수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태도를 발산하는 곡 ‘Call’에서마저 선미의 목소리는 좀처럼 100도가 되지 않는다. 펄펄 끓기 전에 멈춰 노래하는 목소리의 자연스러운 온도는, 원숙함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데뷔 14년 차인 뮤지션, 현업 뮤지션으로 계속 작품을 만들고 발표하며 활동하는 뮤지션에게 당연한 귀결이다.

덕분에 마지막 곡 ‘Borderline’의 록킹한 사운드 스케이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자신의 영역과 방법론을 계속 유지하면서 꾸준히 변화를 감행하는 뮤지션, 여전히 만족스러운 곡을 내놓으면서도 자신을 드러내고 듣는 이가 동화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치는 뮤지션. 이들에게 우리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은 열광일 것이다.

오늘 한국의 K-POP은 선미라는 뮤지션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선미가 K-POP의 최선두에 있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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