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아프간 대사가 전한 철수 당시 긴박한 상황 “전쟁 상황과 비슷”

최태호 대사, 카타르 도하의 임시 공관서 화상 브리핑
마지막 교민 1명까지 챙겨 철수...공습 경보 울리고 활주로 막히는 등 위급해

18일 최태호 주 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가 화상 브리핑에서 전날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1.08.18ⓒ사진 = 외교부

"15일 저녁이 되자 아프간 군중이 카불의 민간 공항을 점거하고 활주로에 들어와 민간 항공기에 매달리는 상황이 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항 전체 지역에 탈주를 원하는 아프간 군중들이 모여서 아주 혼란스러웠습니다. 총기를 소지한 분들도 있어서 총소리도 들렸습니다. 우방국 헬기가 공항 위를 맴돌면서 상황을 경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영화에서 봤던 전쟁 상황과 비슷했습니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을 점령한 가운데, 17일(한국시간) 마지막 남은 우리 교민과 함께 현지에서 철수한 최태호 주 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는 당시의 긴박한 분위기와 현지 상황에 대해 이 같이 전했다.

최 대사는 18일 한국 취재진 대상으로 한 화상 브리핑에서 우리 교민과 외교 공관원들의 철수 과정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는 현재 카타르 도하에 마련된 임시 공관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아프간 현지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오전 11시 경부터다. 당시 최 대사는 외교부 본부와 화상회의 중이었는데 대사관을 지키는 보안업체로부터 '탈레반 부대가 대사관 20분 거리까지 진입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연이어 우방국 대사관으로부터 "바로 모두 탈출하라"는 소개작전 공지가 도착했으며, 연락을 취한 다른 우방국 대사들 역시 '급한 상황이다, 빨리 가야 한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한다.

그러자 최 대사는 현지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고, 정의용 장관에게 보고한 뒤 철수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는 정해진 메뉴얼에 따라 대사관의 주요 문서 등을 파기하고, 청사를 비운 뒤 잠금 장치를 했다. 이후 짐을 챙긴 공관 모든 직원들과 함께 우방국 대사관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우방국 헬기를 타고 카불의 군공항으로 이동했다. 당일에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지난주 우방국들 간에 '유사시 철수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최 대사는 설명했다.

15일 오후(현지 시간), 이미 카불 군 공항에는 여러 국가 대사관 직원들이 철수를 위해 밀려들었다. 최 대사는 공관 직원들의 우방국 군용기 탑승 수속을 진행하며, 동시에 마지막으로 현지에 1명 남아있던 교민에게 철수하자고 설득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공관 직원 3명이 해당 교민 사업장을 방문해 설득에 나섰지만, 이 교민은 '사업장을 정리하고 며칠 뒤에 내 힘으로 철수하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최 대사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이 교민을 무작정 기다릴 수 없어 결단을 내린다. 공관 직원 대부분을 우방국 군 수송기로 제3국으로 피신 시키고, 자신을 포함한 직원 3명만 현지에 남아 교민을 끝까지 설득하기로 하고 외교부 본부에 보고한 후 승인을 받는다. 수속을 마친 공관 직원들은 이날 오후 5시(현지 시간) 활주로로 이동하려 했는데, 갑자기 공습경보가 울려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대합실로 대피해 한 시간 동안 숨을 죽인 후에야 경보는 끝났고, 마침내 군용기를 탈 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교민, 자신 위해 남은 공관 직원들 보고 마음 돌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여러분이 남아 고생해서. 나도 철수하겠다"

직원들을 보낸 최 대사는 다시 남은 직원들과 함께 교민을 찾아가 설득 작업에 나섰다. 그 전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이 교민은 또 설득하러 온 공관 직원들을 보고 마음이 변했다고 한다. 최 대사는 "그 교민 분이 '나도 철수 하겠다. 대사관 분들께 미안하다. 나 때문에 남아서 고생해서 미안하다'면서 철수하겠다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이 교민은 사업장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필요해 바로 떠나지는 못하겠고, 다음날 오전(16일 오전)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를 들은 최 대사는 현지 상황을 보고 철수가 가능하겠다는 판단 하에 동의했고, 16일 오후 1시(현지 시간) 우방국 군 수송기를 타고 해당 교민이 떠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뒀다고 한다.

공관 직원들은 16일 오후 모든 준비를 마친 교민을 만나 군 공항 터미널에 안내하고 수속을 마친 뒤 대합실로 들여보냈다. 마지막 교민이 떠나게 됐지만, 이날도 공관 직원들은 현지에 남기로 했다. 아프간에서 철수하지 못한 우방국들과의 회의 등이 남아있어, 이 일정에 참여하며 현지 상황을 더 파악하기로 한 것이었다.

16일(현지시간) 공개된 위성 사진에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 공항 활주로에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항공기에 몰려들고 있다.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시민 수천 명이 이날 공항 활주로에 몰려들어 일부는 필사적으로 미군 항공기에 매달리다가 추락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08.17.ⓒ사진 = AP/뉴시스

우방국 수송기 바닥에 앉아, 마지막 교민과 함께 탈출

그런데 돌발 상황이 또 발생했다. 마지막 교민은 오후 3시 경에 비행기를 타러 활주로로 이동하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전날부터 탈출을 위해 카불 공항에 들어온 아프간 시민들이, 16일 오후엔 군 공항 활주로에까지 와 군용기를 막아섰기 때문이다. 활주로를 쓸 수 없게 되자, 우방국 군 수송기는 출발할 수 없었고, 이 교민은 대합실에서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다. 공관 직원들은 교민의 상황을 확인하며 공항에서 대기했고, 최 대사는 현지 일정을 소화하며 흐름을 지켜봤다.

사태는 17일 새벽 1시(현지시간)가 되어서야 정돈됐다. 파견된 우방국 병력이 군 활주로를 확보해, 군 수송기 운항이 재개됐다. 현지 상황에 대해 본부 보고를 마친 최 대사와 직원들은 공항에 모였다. 이들은 마지막 교민 보호 차원에서 함께 출국하기로 정한 후 본부의 허가를 받았다.

이날 새벽 3시, 교민 1명과 최 대사 포함 공관 직원 3명은 우방국 군 수송기에 탑승해 카불 공항을 떠났다. 최 대사는 당시 비행기 상황에 대해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바닥에 앉았다. 예전에 배를 타듯이 오밀조밀 모여 앉았다"고 전했다. 당시 비행기엔 미국인이 대부분이었으며, 최 대사 일행 등 제3국인 일부와 아프간 인 일부도 탑승하고 있었다고 한다. 17일 오후(현지시간) 제3국에 안전하게 도착해서야 최 대사와 공관 직원들은 안도할 수 있었다.

현재 최 대사와 공관 직원들은 카타르 임시 공관에서 업무를 보며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최 대사는 "현지 상황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탈레반 정권 수립 동향, 국제사회 대처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면밀히 파악해 국제사회 공동 대응에 참여할 것"이라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한편, 이날 최 대사는 카불의 공관에서 철수할 당시 최소한의 짐 밖에 챙길 수 없어 양복도 가져오지 못했다면서, 반팔 셔츠 차림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또 그는 현지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는 터라 "아직 한국의 가족과 통화조차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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