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야간노동을 규제하는 법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야간 노동

최근 고정적으로 한 달에 20일 넘게 야간에만 일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한국엔 이에 대한 어떠한 법적 규제도 없다. 법률 위반이 아니니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야간노동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고, 이를 이용한 사업주들의 이윤 추구도 용인되는 실정이다. 그 와중에 야간노동을 하던 물류노동자가, 야간 배송 노동자가, 쓰러지고 병들고 있다.

한국에서 야간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현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한 자료는 아직까지 없다. 다만, 2019년 한국노동연구원 조사에서 밤 10시에서 다음날 새벽 5시 사이에 최소 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을 ‘야간노동’로 규정하고, 이때 취업자 중 야간노동을 하는 비율이 10.0%라고 보고한 바 있다.

야간 노동이 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여러 연구에서 야간노동이 심뇌혈관 질환, 정신 질환 등과 관련돼 있고, 유방암, 전립선암, 대장암 등과의 관련성도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근무로 인한 심뇌혈관 질환 기여 위험도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높게 나타나며, 전체 심뇌혈관 질환 건수의 1.4%(남), 5.1%(여)가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근무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는 정신질환의 발생에 야간노동을 포함한 교대 근무의 기여가 남성은 3.9%, 여성은 5.7%라고 추정했다. 사망에 대한 야간노동의 기여는 여성에게서 1.9~4.0% 라고 추정하였다.

현행 법의 야간 노동 관련 내용은 임금 할증 규정 뿐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2019년 한 연구**에서 야간노동을 ‘공공서비스형’과 ‘이윤추구형’으로 구분하였다. 공공서비스형에는 병원이나, 경찰, 소방 분야 노동자들이 포함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야간노동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노동자들이 야간 노동을 하며 건강을 위협받지 않도록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최근 야간에만 고정으로 일하는 물류산업의 노동자들, 야간 택배 업무를 하는 노동자들, 자동차나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야간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의 경우엔 이윤추구형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서비스형의 야간노동이든, 이윤추구형의 야간노동이든 노동자들의 건강 보호를 위한 어떠한 규제도 받고 있지 않다.

19일 오전 서울 중구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 관계자들과 유족이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고 김 모씨의 죽음과 관련해 한진택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10.19ⓒ김철수 기자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어렵게 만들어 졌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못하는 노동 현장이 많다. 일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아예 노동시간을 제한하지 않도록 하는 ‘노동시간 특례제도’에 갇혀, 주당 52시간 상한이 아니라, 주당 60시간, 70시간이 넘는 노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야간노동은 아예 이를 제한하는 규정 자체가 없다. 근로기준법에 야간 노동과 관련해서 존재하는 유일한 규제는 제56조(연장ㆍ야간 및 휴일 근로)의 야간노동에 따른 임금 할증 관련 내용*** 뿐이다. 이는 야간노동과 관련한 복잡한 상황을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한국 전체 노동자 중 16%가 저임금 노동자****인데, 이들은 생활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야간노동을 선호한다.

한 물류회사의 노동자들은 주간, 오후, 야간 근무로 나뉘어 고정적으로 근무한다. 노동자들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걸 알면서도 임금이 높다는 점에서 야간 노동에 대한 선호를 높게 보인다.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더 많은 임금을 받게 되니, 당장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 정도는 눈감을 만큼 현실의 어려움이 큰 것이다.

그래서 야간노동을 제한하자고 하는 주장은 현장 노동자들의 필요에 의해 심한 저항을 받기도 한다. 야간노동을 해야만 생활임금을 받을 수 있는 임금 구조의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으니, 당장 현실의 필요를 막는 규제에 저항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를 적절히 이용해,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 조건을 존속시킨다.

야간 노동 규제하는 나라가 다수
한국도 근로기준법에 야간노동 규제 담아야

프랑스 노동법전(Code du travail)은 야간근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야간근로는 예외적으로만 허용된다. 야간근로는 근로자의 건강과 안전의 보호를 위하여 필수적인 사항들을 고려해야 하며, 사회적 이익을 갖는 업무나 사업의 계속성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에 의하여 정당화되어야 한다.”

프랑스는 21시부터 07시까지를 야간 근로로 정의하고, 이 시간의 근로를 하려면 단체협약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단체협약이 없는 경우에는 근로감독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은 영업시간 규제를 통해 야간노동을 제한하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열린 '처참한 심야배송이 부른 과로사, 쿠팡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고강도 심야노동 정책을 규탄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2021.03.08ⓒnews1

이제는 한국에서도 근로기준법에 야간노동 규제와 관련한 별도의 장을 신설해야 한다. 거기엔 연속적인 야간노동 제한, 월 단위 야간노동의 횟수 제한, 야간노동자에 대한 휴식 및 휴일의 부여, 야간노동 시 배치해야 할 최소 인원 및 적정인력 배치 의무, 1인 야간근무 금지 등의 규정이 담겨야 한다. 또 해당 내용이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 노동자도 대상이 되어야 한다.

특히 야간노동에 대한 대가를 가산임금이 아니라 ‘의무적 보상휴가’로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활임금 확보가 이루어지는 임금 체계가 마련되는 것과 함께, 장기적으로는 연장노동, 야간노동, 휴가노동 등 초과노동 전체에 대해 가산임금 제도를 의무적 보상휴가 제도로 바꾸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

또 야간노동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야간노동에 대한 가치판단을 담은 원칙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야간노동을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야간 영업의 확대와 야간 노동자 증가는 필히 병원, 경찰, 소방 등과 같은 공공서비스형 야간노동의 수요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윤추구형 야간노동의 한 형태인 야간영업 규제는 공공서비스형 야간노동의 수요 증가를 제어하는 효과도 가질 것이다.

* 정연, 과로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질병 부담. 보건복지 ISSUE & FOCUS. 2019
** 이정희. 서비스업 야간노동 -인간중심의 분업구조를 위한 제언. 노동연구원. 2019
*** 근로기준법 제56조 ③ 사용자는 야간근로(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 사이의 근로를 말한다)에 대하여는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근로자에게 지급하여야 한다.
**** 저임금노동자 비율 = (월임금 중위값의 2/3 미만 임금근로자수 ÷ 전체 임금근로자수)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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