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를 금지한 인도 카슈미르의 작은 마을 ‘바바 와일’

2019년 3월 9일, 아시아 최고 부자인 인도 릴라이언스 그룹의 무케시 암바니(64) 회장의 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참석한 이날의 초호화 결혼식도 화제였지만, 그 전해 말에 치러졌던 암바니의 딸의 결혼식에는 못 미쳤다. 그때는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을 비롯해 이재용 삼섬그룹 부회장 등 유명인사들이 참석했고 가수 비욘세가 축가를 불렀다. 당시 일주일 간의 사전 행사까지 1000억 여 원이 든 것으로 추정됐다.ⓒ사진=뉴시스/AP

편집자주: 인도의 악명높은 지참금 제도. 결혼할 때 여성이 금품을 남성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둘러싸고 더 많은 액수를 원하는 남성 집안과 그렇지 못한 여성 집안 간의 갈등이 생기고, 여성에 대한 폭력이 빈번하며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진다. 특히 아직도 남은 인도의 계급 카스트 제도로 인해 지참금은 더욱 문제가 된다. 계급이 낮은 여성은 더 많은 지참금을 요구받는다. 그러나 카슈미르의 작은 마을 ‘바바 와일’은 1985년부터 지참금을 금지시켰고 결혼을 검소하게 하도록 했다. 이 작은 결정과 마을 사람들의 실천으로 만들어낸 변화는 실로 놀랍다. 알자지라의 기사를 전한다.
원문: The Kashmir village that outlawed dowries

750년 전에 사예드 바바 압둘 라자크라는 존경받는 수피파 성인이 저 멀리 이라크 바그다드부터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인도령 카슈미르 중부에 있는 구틸바그의 산자락까지 왔다. 그리고는 ‘바바 와일’이라는 작은 마을을 세워, 6천 명이 모여 호두나무를 키우고 파시미나 스카프를 만들면서 사는 이곳에 잠들었다.

이 작은 마을 사람들의 대부분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라고 믿는 샤 카스트이다. 28킬로미터 떨어진 지역 중심지 간더발에서 산과 푸성한 녹색 나무에 둘러싸인 이곳 바바 와일에 오는 데까지는 2시간 정도 걸린다. 길은 험하고 대중교통은 거의 없다. 마을의 집은 거의 새로 지어졌고, 몇몇 남은 흙집은 대부분 버려졌다. 사람들은 밭이나 작은 마을 시장에서 서로 만난다. 여자들은 마실 물을 길어오는 샘물에서 수다를 떨곤 한다.

이곳의 사람들은 평범하게 산다. 인도령 카슈미르 대부분의 작은 마을처럼 말이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 이 마을은 호화 결혼식을 거부하고 수세기 전에 수피 성인이 가르친 이슬람 전통에 따라 더 단순한 시대로 돌아가기 위해 지참금을 전면 금지했다.

이 마을도 한동안 지역 전통에 따라 훨씬 화려하고 값비싼 결혼식을 치렀다. 하지만 결혼식과 지참금과 관련해 점점 커지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빚을 지게 된 집들에 대한 얘기가 너무 많아졌다.

신부측이 신랑측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은 인도 문화에서 오랫동안 중시돼 왔다. 지참금으로 현금으로 지불되기도 했지만 금이나 텔레비전, 세탁기, 냉장고와 가구 등의 혼수로 지불되기도 했다. 인도의 중산층 가정이 지참금으로 1600만 원 정도를 합의하는 일이 흔할 정도다. (인도에서는 대졸 사무직의 초임 평균 임금이 한 달에 약 35만원, 고졸 생산직 초임은 약 24만원이다).

카슈미르대학교 사회학과의 수하일 라줄 교수는 결혼 지참금 제도를 ‘복잡하게 얽힌 사회학적 현상’으로 여성에 대한 ‘야만적’인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지참금 살인

마을의 사르판치(촌장)인 알타프 샤(45)는 마을로 향하는 여행자들을 태워주곤 하는 낡은 차를 몰고 다닌다. 잘 다듬어진 수염이 있는 호리호리한 알타프는 지참금에 대해 조용하지만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게 지참금을 반대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과제다. 그리고 이를 널리 알려 세상 사람들이 이를 따라 했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알타프는 “지참금을 가지고 결혼한 여자들은 시댁의 요구 때문에 많은 심리적, 육체적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바바 와일에서 결혼 의식과 관습이 늘 신부 가족에게 이렇게 부담스러운 건 아니었다. 알타프는 19세기 중반만 해도 신랑 측에 줘야 할 지참금이 전혀 없었고, 결혼이 검소하게 이뤄졌다고 했다.

약혼 전 상견례에서 신랑 측이 물잔에 사랑의 표시로 11루피를 넣었다. 지금 돈으로 약 500~1000루피, 대략 7,600~15,300원이다. 약혼식에서는 신부 측이 신랑 측에게 51루피(지금 돈으로 약 35,000~47,000원)를, 결혼 서약에 서명하는 이슬람 의식인 니카에서는 신랑 아버지가 신부 아버지에게 하객 접대용으로 쌀 40킬로그램과 고기 30킬로그램을 주게 돼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인도 신문에 지참금 관련 살해 사건이 나오지 않는 날이 거의 없다. 과도한 기대, 특히 신랑 측의 과도한 기대가 여성에 대한 학대와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카슈미르에서도 그렇다. 인도의 지참금 제도가 힌두 문화에서 유래했지만, 인도의 이슬람 교도와 다른 종교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인도 국가범죄기록국(NCRB)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검경 당국은 카슈미르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를 제대로 조사한 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강간, 성폭행, 가정폭력 등 신고 된 여성 대상 강력 범죄가 3,069건이나 있었고, 지참금 관련 살인이 8건 있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상황이 악화됐고, 지난 1년 동안 신랑 측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지참금 때문에 불에 타 죽었다는 신부들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지참금 때문에 산 채로 화형을 당하거나 맞아 죽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그 결과, 카슈미르 주의 많은 부모가 딸들의 결혼을 막고 있다. 이미 2014년에 카슈미르 여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25세로 인도 전체보다 3년이나 높았다. 또 2021년에는 40살이 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은 카슈미르 여성이 5만 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주된 이유는 부담스러운 지참금 때문이었다.

작년에 마을 사르판치로 선출된 알타프는 “사회적 관행이던 기브-앤-테이크의 지참금 제도가 위험한 추세인 사회악이 돼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구박과 폭력, 고문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시댁의 압력에 대해 얘기하는 여성이 많지 않다. 지참금을 맞춰주지 못했던 부모의 딸들이 결국 압력에 굴복해 이혼을 하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시댁의 요구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통 결혼식이 열리는 인도 마을에 설치된 길ⓒpixabay

지참금 금지를 어긴 가족, 마을의 누구도 감히 그들에게 말을 붙이지 못했다

마을의 지도자들이 법적 통제력을 지닌 건 아니다. 선출된 사르판치와 이맘(이슬람의 종교지도자)를 포함해 임명된 3명의 장로가 지도부를 형성하는데, 이들의 지도력은 준형식적이다.

지참금과 관련해 여성들이 겪는 폭력에 관한 얘기에 놀란 마을 지도부가 관련 조치를 취하기로 결정한 것은 1985년이었다. 그들은 호화 결혼식과 지참금을 금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마을에 배포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모스크에서 기도도 못하고 마을 묘지에 묻히지도 못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결과 지참금을 요구하는 것이 심각한 범죄로 간주돼 마을 사람들은 이를 어긴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마을 이맘인 바시르 아흐메드 샤는 지도부가 대신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라 전통적인 결혼 의식과 전통을 따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알타프는 한 가족이 이를 어겼다가 마을에서 아무도 그들과 말을 하지 않아 결국 마을을 떠나야 했던 적이 있었다고 했다.

2004년에는 마을 장로들이 새 문서를 장만했다. 1985년의 가이드라인을 공식화하기 위해서였다. 이 문서는 조심스럽게 전해 내려와 현재 이맘의 집에 보관돼 있다.

여기에는 신랑 측이 신부 측에게 어떤 것도 요구해서는 안 되는 1985년의 원칙이 다시 강조됐다. 대신 신랑 측이 신부 측에게 최대 5만 루피(약 79만원)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도 그 액수에는 변함이 없다.

실제로 오가는 액수는 니카 예식 중에 신부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왈리와 신랑 사이에서 합의로 정해진다. 그 액수를 꼭 돈으로 내야 하는 건 아니다. 신랑 측이 가난할 경우 물건으로 이를 대신할 수 있다. 신부 측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없다.

그중 신부에게 직접 주는 최대 2만 루피(약 32만원)는 ‘메어’로 신부가 개인 재산으로 가지면 되고, 2만 루피는 ‘와르단’으로 신부가 예복을 장만하는 데 쓰인다. 1만 루피(약 16만원)는 기타 결혼 비용으로 쓰이는데, 여기에는 신부 베일에 쓰일 3천 루피(약 4만7천원)가 포함돼 있다.

지참금이 여성을 상품화 시킨다

마을 이만 바시르 아흐메드 샤는 지참금을 금지한 이후부터 사돈 간의 싸움, 가정 폭력과 신부의 살해나 자살 사건이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 여성이 살해되거나 자살한다는 소식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게다가 지참금을 장만하지 못해 여성들이 결혼하지 못하는 문제가 이제 사라졌다고 한다.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라지 샤(24)는 “일찍 결혼하는 건 축복인데 다른 지역에서는 지참금을 너무 많이 요구해 그게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고, 결혼 5년차인 자비드 샤(32)는 “니카를 아주 단촐하게 치르고 싶었다. 부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요구하는 게 있었으면 일이 순조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동의했다.

마을 촌장 알타프 샤의 아버지 하지 굴람 나비 샤는 지참금 금지를 처음 고안한 사람 중 하나다. 아들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그는 크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검소하고 신을 두려워한다. 마을의 전통과 관습을 열심히 따른다. 지금은 이 책임이 새로운 시대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마을 모임과 행사, 회의를 자주 열어 사람들에게 이전의 사악한 제도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 얘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을 청년들의 지지는 대단하며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 청년들이 검소하고 지참금 없는 결혼식의 모범을 보여 영원히 후손들의 모범이 될 것”이라며 기뻐했다.

알타프 샤의 맏딸 이크라 알타프(24)은 이제 지참금 없이 결혼할 수 있게 됐다. 이크라는 900루피 이상의 메어는 원치 않는다며 “지참금은 사회악이다. 이런 나쁜 문화를 퍼뜨리고 싶지 않다. 나는 부모님, 조부님 때부터 지참금을 거부해온 마을에 살고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고 자유롭게 우리 권리를 누린다. 내가 이런 사회와 문화의 일부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부모님 집에 살고 있는 이크라는 저녁 때 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우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이크라는 매일 운전을 배우며 여성으로서 독립성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결혼식이 다가오면서 이크라는 집안일과 마지막 대학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바쁘다고 했다. 하지만 조촐하게 치러지는 만큼 결혼식 준비에는 다른 여성들보다 훨씬 적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이크라는 “지참금이 여성을 상품화하고 결혼은 사랑과 존경보다는 물건과 돈이 오가는 사업 거래 취급을 받는다”며 마을 여성들이 지참금 금지를 지지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크라는 집안 간의 중매로 예비 신랑을 만났다. 하지만 결혼이 결정되기 전에 이크라가 정혼자를 미리 만나 결혼을 승낙한 터였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청년으로 마을 시장에 천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이크라는 마을 학교의 선생님이 되려고 준비 중이다. 그녀는 다른 마을 청년들도 지참금 없는 문화를 후대에 남겨주고 싶다고 하면서 이 문화가 특히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며 “여성들이 이를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했다.

대학에서 상업을 공부하는 이크라는 “교육이 지참금 제도와 같은 사회 악을 근절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모든 사회가 여성의 교육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을 청년들 중 인도 전역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많다.

마을 사람들은 지참금 금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남자와 여자를 동등하게 교육시킨 것을 꼽았다. 특히 마을의 남성들과 남학생들도 지참금을 금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계속 배운다. 이크라를 보러 온 이크라의 친구 사이마(21) 샤는 “우리는 공부에서 남자들과 똑같이 경쟁한다. 교육에 관해서는 마을에서 여학생의 성적이 더 우수하다”고 했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한 사이마는 부모님이 짝 지워준 남자와 결혼하기로 했다. 사이마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할 것이라며 예비 신랑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고 했다. 사이마는 “누구든 원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 우리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결혼 후에도 눈치를 보지 않고 공부나 일을 계속 할 수 있다. 결혼식이 간소화되면서 부모님의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마을의 전통과 가이드라인에 따라 사이마의 결혼식이 사이마의 집에서 하객 몇 명만을 초대해 단촐하게 치러질 예정이다. 결혼식 당일 날 신랑은 4명만 데리고 신부 집에 올 것이라고 한다. 또 사이마는 예복으로 평상복 샤마르에 면사포를 쓸 것이라고 했다. 너무 비싸서 사람들이 주로 대여하는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입지 않겠다고 한다.

결혼 3년차인 또 다른 마을 주민 미누 니로파(28)는 간더발에서 지역 정부 화훼과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시집에서 일을 그만두라는 압력이 전혀 없다. 나는 직장 여성이었고 결혼 후에도 일을 하고 있다. 시집이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소문을 퍼뜨리다

이크라와 그의 아버지는 카슈미르의 다른 마을에도 이런 문화를 퍼뜨리고 싶어했다. 알타프는 “우리가 초에 불을 붙였으니, 그 불빛이 카슈미르 계곡의 구석구석을 비췄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마을 여성 3명이 다른 마을 남성들과 결혼했다. 사이마는 그때 “신랑 측 사족들에게 우리의 결혼 문화를 알렸고, 신부에게 뭔가를 주고 싶으면 그렇게 하되, 신부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지참금 금지 제도를 따른다고 했다”고 했다. 그리고 마을 청년들이 다른 마을 여성들과 결혼해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바바 와일 마을의 전통은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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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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