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2021 후지록페스티벌이 되찾아 준 페스티벌의 감동

부재는 공백을 낳고, 공백은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들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8월 20일 금요일부터 22일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후지 록 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에 푹 빠져 지냈다. 일본 니카타현 유자와로 날아간 건 아니었다. 감사하게도 후지록페스티벌 주최 측에서 유튜브 공식 계정을 통해 페스티벌을 무료로 생중계 해 준 덕분에 가능했다. 주최측 에서는 세 개의 채널을 열고 라이브를 생중계 해주었고, 다음 날 새벽부터는 일부 팀들의 공연 영상을 재송출해주기까지 했다. 그래서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채널 세 개를 모두 열어두고 번갈아 가면서 페스티벌을 보거나, TV와 유튜브를 연결해서 보았다.

출연팀들은 일본 팀들 뿐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사실 출연팀들 중에 이름을 알고 있는 팀은 엔비(Envy) 정도였다. 하지만 이름을 몰라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일본 음악 전문가들의 추천을 받기도 했고, 금세 빠져들 만큼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팀들이 많았다.

후지 록 페스티벌 일정과 참여 뮤지션들ⓒ사진 = 후지 록 페스티벌 홈페이지 갈무리

아직 후지록페스티벌을 가보지 않아 후지록페스티벌의 추억은 없었는데, 라이브 중계를 보면서 수많은 페스티벌들의 추억이 밀려왔다. 특히 여름의 페스티벌 중에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기억들이 물밀듯 밀려들었다. 같은 시기에 열리는 페스티벌이기도 했고, 페스티벌의 무대와 분위기, 관객들의 모습이 거의 똑같았기 때문이다. 사각의 대형 무대나 돔 무대에 밴드가 올라와 노래하고 기타/베이스/드럼/건반을 연주하는 모습, 그리고 관객들이 우비를 입고 서서 공연을 보는 모습은 한국과 다를 바 없었다. 후지록페스티벌을 보는 게 아니라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나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을 보는 거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난 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는 여름이면 페스티벌에 가는 게 일상이었다. 두 개의 페스티벌에 가는 건 기본이었고, 많게는 다섯 개의 페스티벌에 가기도 했다. 페스티벌에 가는 건 당일 페스티벌에 다녀오는 일만이 아니었다. 그 해 봄부터 언제 어떤 페스티벌이 열리는지 확인하는 일이었고, 조금씩 공개하는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설레며 기다리는 일이었다. 페스티벌이 열리기 한 달 전에 페스티벌의 동선을 짜고 교통편을 예약하는 일이었다.

한편으론 사흘 내내 다 갈 것인지, 아니면 하루만 갈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고민의 시간이기도 했다. 같이 갈 이들과 약속을 잡는 일이었음은 물론이다. 가서 볼 뮤지션의 음악을 미리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틈틈이 듣고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는 일은 기본이었다. 그 때 입을 옷을 코디해보고, 페스티벌을 더 잘 즐기기 위한 준비물을 보강하는 일도 중요했다.

출발하는 당일 짐을 꾸려 미리 계획한 교통편을 타고 행사장에 도착하는 순간의 터질 것 같은 기분은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멀리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얼른 공연장에 들어가고 싶어 발걸음이 절로 빨라진다. 여름 페스티벌 룩으로 멋을 부린 사람들과, 좋아하는 뮤지션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 사람들도 일 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티켓 부스에서 이름을 확인하고, 팔찌를 받고, 타임 테이블이 적힌 목걸이를 목에 건다.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맞춰 심장이 뛴다.

후다닥 가방 검사를 받고 무대를 향해 뛰듯 달려가면 느껴지는 페스티벌의 공기. 다시 이 곳에 왔다. 깃발이 휘날리고 사람들은 서거나 앉아서 음악에 빠져든다. 맑거나 눅눅하거나 비가 오거나 이제부터는 음악의 바다에서 유영할 수 있다. 곳곳에 음악이 넘쳐나고, 나는 음표처럼 걷고 비트처럼 웃는다.

11일 인천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열린 2018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관객들이 밴드 크로스페이스(crossfaith)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2018.8.11ⓒ사진 = 뉴스1

돌이켜보면 여름 페스티벌의 모든 순간이 다 좋았던 건 아니었다. 페스티벌이 드물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페스티벌이 열리는 것만으로 황홀했지만, 페스티벌이 정례화 되면서부터는 익숙해지기도 했고 식상해지기도 했다. 너무 많은 페스티벌이 열릴 때는 부담스럽기도 했고, 보고 싶은 출연진이 없으면 실망스럽기도 했다. 주최측의 미숙하고 무성의한 진행 때문에 화가 났던 적도 있었다.

사실 땡볕 아래서 공연을 보다 보면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일 때도 적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데 두 세 시간이 걸릴 걸 생각하면 ‘집에서 음반이나 듣지 뭐 하러 이 고생을 하나’ 싶어 한숨이 나올 때도 많았다. 공연에 매순간 집중했던 것은 아니었고 수다를 떨거나 술에 취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거의 모든 페스티벌이 중단되고 실내 공연조차 드물어지면서부터는 페스티벌의 모든 순간들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후지록페스티벌의 온라인 생중계는 페스티벌의 기억을 생생하게 복원했을 뿐 아니라, 페스티벌과 음악의 가치와 즐거움을 새삼스럽게 일깨웠다. 무대 위의 뮤지션들이 무아지경으로 노래하고 연주할 때, 서로 교감하며 싱긋 웃을 때, 화면으로 보는 관객의 심장마저 한여름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바다 건너에서 온라인으로 중계한 공연이었음에도 거의 음향 사고가 없었다. 아니 사고가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음향 운용이 뛰어나 라이브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젊은 뮤지션들이 패기를 내뿜으며 공연할 때도 좋았지만, 40대가 넘어 보이는 뮤지션들이 여유롭고 근사한 공연을 펼쳐 보일 때는 이것이 연륜이구나 싶었다. 저들이 대부분 예전 후지록페스티벌 무대에 섰을 것이고, 팬들 역시 오래도록 저들의 공연을 보면서 환호했을 거라 생각하니 애틋한 기분까지 들었다. 저들은 얼마나 간절하게 페스티벌을 기다렸을까.

무대 위의 뮤지션들과 무대 아래의 팬들만이 아니었다. 음향과 조명을 만지고 무대를 쌓은 사람들, 공연을 중계하고 무대 뒤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긴장하고 고심하며 준비해 만든 무대일 게 분명했다. 매년 당연히 열리는 무대가 아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더 번지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그래도 무대는 열려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음악 생태계에 뿌리 내린 삶이 이어질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만든 무대일 게 분명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을 수 없는 무대였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무대였다. 음악이 무엇이고, 공연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무대를 만들고 마스크를 쓰고라도 공연을 보나 싶었다. 음악이 어떻게 했길래 뮤지션들조차 내내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나 싶었다.

부재는 공백을 낳고, 공백은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들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온라인으로 본 올해의 후지록페스티벌은 음악이 삶이 된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했고, 음악으로 교감하는 우리의 연결과 파장을 살피게 했다. 음악은 정말 좋은 것이었고, 보고 들을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 애쓰고 마음을 연 덕분이었다. 그 마음들이 닿은 덕분이었다.

아직 열리지 못한 이 나라의 페스티벌과 공연들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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