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무국적자’ 화가 조반니 세간티니

아프가니스탄 상황이 급변하고 연일 그곳을 떠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 뉴스에 나옵니다. 이를 보는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더구나 그들 가운데 일부가 몸을 피해 도착한 한국은, 그들의 입국 자격과 관련한 이야기로 시끄럽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 가장 속이 타는 사람들은 아마 그들 자신일 것입니다. 이제 그들 앞에는 어떤 삶의 길이 펼쳐지게 될까요?

지금 현지를 떠나는 아프간인들과 이유는 다르지만, 태어난 나라를 떠나 무국적자로 살았던 화가가 있습니다. 조반니 세간티니(Giovanni Segantini/1858 ~ 1899)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숲에서 돌아 오는 길 Return from the Woods 1890 oil on canvasⓒ세간티니 미술관

눈이 꽤 쌓인 날입니다. 나란히 서 있는 지붕마다 눈이 가득한데 숲으로 땔감을 찾으러 갔던 여인이 수레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수레에 실린 나무 덩어리는 한눈에 봐도 무게가 꽤 나갈 것 같은데, 어떻게 혼자서 끌고 왔을까요? 앞서 간 썰매 자국이 선명한데, 길 옆에 쌓인 눈에는 흔적 하나 없습니다. 움직이는 듯한 산의 묘사 때문에 겨울의 차가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다가옵니다. 적막하고 차가운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여인의 모습, 삶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세간티니는 이탈리아 북부 아르코라는 곳에서 태어났는데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아버지는 노점상을 하며 이곳저곳을 떠도는 장사꾼이었습니다. 세간티니가 태어나던 해, 형이 화재로 숨졌고 그의 어머니는 이 일로 대단히 큰 마음의 병을 얻게 됩니다. 아버지가 거의 집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어머니와 지냈는데, 어머니가 생활력이 없어 두 모자는 극심한 가난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결국 세간티니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세상을 떠납니다.

호수를 건너는 아베 마리아 Ave Maria a trasbordo (version2) 1886 oil on canvas 120cm x 93cmⓒ세간티니 미술관

호수를 건너는 배에 양 떼를 가득 실었습니다. 양을 치는 가족이지만 다른 의미로는 성모 마리아와 어린이 예수, 그리고 가장 요셉의 모습입니다. 목이 마른 양들이 목을 축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고요합니다. 양 떼는 세상을 건너는 배 위에 있는 우리들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평화롭게 흐르는 물 위에 떠 있는 것일까요?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세간티니를 전처와의 사이에 낳은 딸 이레인에게 맡겨 놓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는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객지에서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배다른 누나와 남겨진 세간티니는 누나가 하녀로 일하며 벌어온 돈으로 간신히 삶을 이어갑니다.

세간티니의 누나는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위해 근거지를 밀라노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오스트리아 시민권을 포기하는 서류를 제출합니다. 그런데 처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오스트리아 시민권은 없어지고 이탈리아 시민권 청구는 거절되고 맙니다. 결국 두 사람은 무국적자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후 세간티니는 죽을 때까지 국적이 없었습니다.

쟁기질 The plowing 1890 oil on canvasⓒ노이어 피나코테크

봄이 왔습니다. 한 해의 농사를 위해 밭을 갈아야 할 때 입니다. 아직도 잔설이 산봉우리들을 장식하고 있지만, 들판은 초록으로 덮였습니다. 깨끗한 대기와 함께 맑은 빛이 가득해서 마치 물에서 막 건져 올린 풍경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용된 색들이 나름대로 통일감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밭과 쟁기를 잡고 있는 사내의 바지, 사내들의 상의 색상이 같아서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입니다.

이후 두 사람은 밀라노에 도착했지만, 생활이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세간티니는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하다가 결국 경찰에 의해 교화소로 보내지게 됩니다. 거리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짐작이 됩니다. 그 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배다른 형 나폴레옹이 그를 교화소에서 데리고 나옵니다. 세간티니는 형 밑에서 사진술을 배우다가 밀라노에 있는 브레라 아카데미에 입학해,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세간티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무국적'에 발목을 잡힙니다. 국적이 없어 결혼과 관련된 법적인 서류를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동거 형식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교회법으로는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교회와의 갈등 때문에 거처를 자주 옮겨야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때문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평생 동안 서로에 대해 헌신적이었습니다. 아름다운 부부였지요.

여름 날 A Summer Day 1903 oil on canvas 65cm x 113cmⓒ개인소장

초록의 농담((濃淡) 만으로도 이렇게 맑은 풍경을 만들 수 있었군요. 화면 중앙에 자리를 잡은 풍성한 나무의 그림자마저도 시원하게 다가 옵니다. 화면 왼쪽에서 등장한 여인, 등에 진 초록색 나무들에서 초록이 쏟아져 나오는 듯 합니다.

1883년 암스테르담 국제 전시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면서 세간티니의 명성이 올라갔고 1890년 브뤼셀 살롱전에서는 세간티니에게 개인 전시실이 배정됩니다. 세잔과 고갱, 고흐와 비슷한 대우였지요. 유럽 전역에 그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의 작품이 국제 전시회에 출품됐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시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국적이 없었기 때문에 여권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명성은 널리 퍼져 나갔지만 시민권을 얻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스위스 사보닌에서 지방세 납부를 거절한 그는, 알프스의 산들로 둘러싸인 엥가딘 계곡으로 이사를 갑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앞두고 엥가딘 계곡의 풍경을 그림으로 묘사해달라는 주문에 맞춰 작업을 하던 중, 그는 심한 복막염을 앓게 됩니다. 그리고 2주 후 아내와 아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납니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마흔 한 살이었습니다. 세간티니가 하늘에서는 어떤 국적을 얻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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