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파업” 코로나로 계속된 탈진에 총파업 선택한 간호사들

보건의료노조, 파업 찬반 투표 결과 90% 찬성...정부 “파업 전 타결 노력”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산별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보건의료노조 관계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의 명확한 해결책이 없으면 9월 2일 전면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2021.08.27.ⓒ뉴시스

"코로나19 시기에 국민 모두가 우리 덕분이라고 하지만 병원 측은 병원이 힘들다는 핑계로 또다시 우리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노조가 오는 9월 2일 총파업을 예고한 기자회견에서 영상을 통해 목소리를 전한 한 간호사는 이번 총파업에 나서는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27일 보건의료노조는 서울 영등포구 노조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파업 투쟁 찬반투표는 투표율 82%에 90% 찬성이라는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됐다"면서 오는 9월 2일 오전 7시를 기해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예고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조합원 5만6091명 중 4만5892명이 투표했고, 4만1191명이 찬성했다. 투표율은 81.82%, 찬성률은 89.76%였다.

코로나19 신규확진자가 2천여명대를 기록하는 가운데 간호사 등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의료현장에 부담이 예상되는 파업을 선택한 이유는 코로나19 유행이 1년7개월이나 이어질 만큼 장기화되면서 의료현장의 어려움이 가중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병상부족' 현상에 방역당국은 병상을 늘리는 데 집중했지만, 그에 맞게 보건의료인력은 크게 확대되지 않았다. 보건의료노동자가 '번아웃'과 '탈진'을 호소하는 이유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 생명홀에서 열린 '산별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의 명확한 해결책이 없으면 9월 2일 전면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2021.08.27.ⓒ뉴시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한 코로나19 전담병원은 확진자가 증가함에 따라 병상을 160병상에서 290병상까지 늘렸지만 인력을 충원하지 않았다"며 "방호복에 고글, 마스크, 페이스쉴드까지 중무장한 간호사는 일반 간호뿐만 아니라 식사, 청소, 배변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 일반 환자보다 2~3배 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초기 보건당국은 임시파견인력과 자원봉사 등으로 부족한 보건인력에 대해 대응했으나, 1년7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침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에 2주 정도의 기간만 파견되는 임시파견인력에 대한 효용성과 기존 인력과의 수당 차별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국회는 추가경정예산에 보건의료인력에 대한 생명안전수당 960억원을 증액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당초 3042억원을 증액하기로 한 것에 비해 대폭 삭감된 결과다. 이마저도 임시처방으로 곧 지급이 종료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들의 '번아웃'은 심화되고 있다. 노조가 지난 3월 조합원 4만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0.7%가 "코로나 블루(우울감)를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또 코로나19전담병원의 노동자의 50.5%는 "노동 여건이 나빠졌다"고 답했다.

나 위원장은 "3교대 간호사의 80.1%가 사직을 고민하고, 신규 간호사의 42.7%가 입사 1년 안에 사직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한간호협회도 전날 낸 성명에서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노동강도는 더 심해졌고, 이제 사명감만으로 더 버틸 수 없다"면서 "의료 노동자의 희생이 의미가 있으려면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료인력을 조속히 확충하고 감염병을 전담할 공공의료체계를 튼튼히 해야 한다"고 짚은 바 있다.

이에 보건의료노조는 정부에 '보건의료인력 확충·처우 개선 5대 요구'로 △직종별 적정인력기준 마련과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교대근무제 시행 △5대 불법의료 근절 △의료기관 비정규직 고용 제한 △의사인력 확충과 공공의대 설립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나 위원장은 특히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에 대해 "미국의 경우에는 법으로 간호사 1명당 돌보는 환자를 5명으로 정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나마 상황이 좋은 병원에서 1(간호사) 대 15(환자)정도고 대부분의 병원은 1 대 20~40까지도 된다"면서 "우리도 간호사 1인당 환자수를 법제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조는 또 '공공의료 확충·강화 3대 요구'로 △감염병전문병원의 조속한 설립 △전국 70개 진료권에 1개씩 공공의료시설 확충 △공공병원 시설·장비·인력 인프라 구축 등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대정부 교섭 상대인 보건복지부는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노력하겠다"는 수준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날 오후에 열린 11차 노정실무교섭은 이날 새벽 3시까지 마라톤협상을 진행했으나, 공공의료 강화, 보건의료인력 확충의 핵심쟁점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렬됐다. 다음 교섭 일정은 잡히지 않은 상태다.

나 위원장은 "복지부에서는 재정 당국에서 국회에서 예산과 법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다"면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에 대해서는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언제까지 실시하겠다는 답이 없어서 선언적 입장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총파업시 의료현장 부담 예상...정부 "파업 개시일 전까지 타결 시도"

앞서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18일 공공의료 확충과 보건의료인력 확충을 요구하며, 136개 의료기관의 동시 쟁의조정 신청을 한 바 있다. 15일간의 쟁의조정기간 안에 정부가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코로나19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총파업은 현실화된다.

노동조합법에서 필수공익사업으로 분류된 병원사업은 파업에도 필수인력은 반드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인력은 파업에 참여할 수 없다.

다만, 코로나전담병원과 일반 진료과의 경우에는 일정 비율의 필수인력 외에는 파업에 참여할 수 있어 보건의료현장에 부담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 보건의료노조 측은 "총 조합원 5만6천명 중에 필수직 때문에 파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조합원은 대략 3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나 위원장은 파업으로 인한 '의료대란' 우려에 대해 "이 파업은 벼랑 끝에 내몰린 코로나19 최전선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피눈물로 호소하는,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파업"이라며 "지금 보건의료현장은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라고 눈물을 보였다.

이어 "더 이상 참고 버틸 수 없어 저희는 피눈물 머금고 파업을 선택했지만 저희의 목적은 파업이 아니다"라면서 "보건의료노동자들이 현장을 떠나지 않고 환자 곁을 안전히 지킬 수 있도록 응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정부는 총파업 개시 전까지 노조와 타결을 이끌어 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9월 2일 파업 개시일 전에 계속 논의를 해서 합의를 이끌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보건의료정책관은 "정부나 노조나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파업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파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부도 추가적인 협의와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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