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기억과 공간] 봄 길 저편의 기억들 ② : 영월

영월 젊은달 와이파크의 ‘작은 달’과 ‘목성’

편집자주/이 글은 한국에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기 이전인 지난 5월 중 여행을 통해 작성된 글입니다. 당초 7월 중순 경 게재하려 했지만, 당시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격상 등 방역과 관련해 외부활동을 자제하라는 정부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시점에 여행을 소재로 쓴 글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기엔 적절치 못하다는 판단 하에, 필자의 동의를 구해 게재 시점을 뒤로 미뤘습니다. 방역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려왔지만, 한 달이 지나도 좀처럼 희소식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계절이 또 바뀔 지경이라, 더 게재 시점을 미루는 것은 적절치 않아 이렇게 글을 게재합니다. 독자님들의 너른 양해를 구합니다.

(봄 길 저편의 기억들 ①:여수 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5월에 다녀왔던 영월 젊은달와이파크에 관한 소개가 많이 늦어졌습니다. 여름 한 가운데인 지금에야 이 글을 내는 것은, 백신 접종과 방역 조치의 효과가 나타나 신규 확진자 수가 감소할 시점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확진자 수가 줄고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때에 백신 접종을 마친 분들이라면, 주말이나 연휴 기간을 이용해 방역 수칙을 지키며 한적한 강원도 영월을 찾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봄 정취가 사라졌을지라도 영월 젊은달 아이파크의 아름다움은 그대로일 것이니, 여러분께 소개해 드립니다. 기억해 두셨다가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였을 때 지인들과 함께 찾아가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젊은달와이파크'는 주천강이 휘돌아 감고, 나지막한 다래산이 쭈욱 뻗은 위치에, 천혜의 환경에 자리해 있습니다. 이곳은 주천면의 술샘박물관(2014년 개관)을 재탄생시킨 곳으로 2019년 개관했습니다. 이듬해 12월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도 '2020 한국관광의 별'에 선정돼, 특별상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주천(酒泉)이란 지명은 '술이 솟는 샘'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름을 딴 술샘박물관은 주천지역의 전통주를 주제로 만들어진 전시공간이었습니다만, 활성화되지 못해 2019년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 전시와 놀이, 공방 등의 기능이 더해진 복합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영월 젊은달 와이파크와 다래산의 모습. 2021.05ⓒ사진 = 김명식

이곳엔 1편에서 언급한 거친 표면의 마감, 날 것 그대로의 재료나 구조의 특성을 드러내는 '브루탈리즘(Brutalism) 양식'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 '목성(木星)'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입니다. 조각가 최옥영이 만든 이 작품은, 다양한 창작물들과 함께 이곳을 특색있게 만드는 요소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주천의 자연환경과 미적 창작물들이 묘하게 어울리는, 소위 자연과 인간의 콜라보레이션이 탁월하게 이뤄진 곳입니다. 염세적 관점에서는 이렇게 멋진 자연환경을 인위적 가미가 망치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를 할 수도 있겠지만, 전자에 따르면 거대한 대지를 기반으로 한 멋진 예술 공간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젊은달와이파크는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습니다. 강렬한 붉은색의 파이프는 차갑고도 뜨거운 대나무 숲을 만들어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긴장과 집중도를 높여 공간이 시작됨을 알리며, 우리를 그 내부로 안내합니다. 안내에 따라 카페달(카페 겸 티켓구매, 전시공간 진/출입), 목성, 젊은달미술관 1~3, 바람의 길, 젊은달미술관 4~5, 이 사이에 붉은 파빌리온 1~2, Spider web play space 등의 공간을 돌아보면, 입구만큼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창작물들과 공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달와이파크 달카페에서 본 외부, 입구(우측)와 다래산 능선(좌측), 2021.05ⓒ사진 = 김명식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보기 쉽지 않은 연출이 돋보입니다. 공간이 주연이 되고 설치 작품들이 조연이 되는 점이 차별화 됩니다. 보통 전시 공간들은 주인공인 어떤 창작물을 위해, 무대 장치로써 기능합니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설치 작품들을 통해 내외부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연출을 높이 사고 싶습니다. 그중 인상 깊은 것 두 개만 언급합니다.

젊은달와이파크 홈페이지 전시자료 목록에서 '개인전, 이재삼'을 클릭해 들어가면, 2006년 그의 작품 '저 너머 Beyond there'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전시공간들의 발랄하면서 감각적이고 서구적인 창작물과 다소 거리가 있는 묵직한 동양화풍의 목탄화 대나무 숲은 보는 이의 다소 들뜬 마음을 다잡아 줍니다. 또 배경이 된 콘크리트 구조체의 노출된 공간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묵직한 무게감을 줍니다.

젊은달와이파크의 몇몇 공간이 그러한데, 다르게 말하면 전체 전시공간의 성격과 다소 쌩뚱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강렬한 붉은색의 파이프로 만들어진 대나무 숲 입구를 생각해도 그렇지요?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노출 콘크리트 구조물이 이 작품을 이곳으로 불러들여 본래보다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재삼의 '저 너머 Beyond there'(2006)ⓒ사진 = 김명식

다음은 역시 같은 홈페이지 전시자료에서 '전시, 어린달 미술관'에서 볼수 있는 최정윤의 작품 '어린달'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설치미술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만, 저에겐 무엇보다 인상적인 작품 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첫눈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천장화(프레스코, 1498)가 떠올랐습니다. 밀라노 스포르쩨스코성(지금은 박물관 Museo del Castello Sforzesco)의 한 방(Sala delle Asse)에 들어가면 녹색 식물로 천장을 가득 덮고 있는 천장화를 볼 수 있습니다. 다빈치는 1948년 밀라노를 다스리던 루도비코 스포르짜(Ludovico Sforza)를 위해, 이 방의 천장에 뽕나무 줄기와 가지와 잎과 열매를 가득 그려놓았습니다.

왜 하필 뽕나무냐면, 스포르짜의 별칭이 Ludovico il Moro였는데, 이것이 밀라노 방언으로 뽕나무를 뜻하는 moroni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학자들(특히 알렉산드로 비스콘티)은 스포르짜가 뽕나무 재배를 도입하고 장려하며 대대적으로 재배한 데서 붙게 된 별칭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천장을 장식한 뽕나무는 그를 암시하고, 그가 또는 그의 가문이 이 나무처럼 얽히고설켜 번성하고 번영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것은 아닌가 하는 유추를 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거기에 담긴 의미가 어떻든, 그가 남긴(제가 알기로는 유일한) 이 천장화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알려진 다빈치의 또 다른 작품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기 위해 밀라노를 찾는 것에 비하면, 특히 그렇습니다.

또 스포르쩨스코성 박물관에 오더라도, 미켈란젤로의 걸작에 밀리기 십상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 전시된 피에타에 이어 미완성, 혹은 그 자체가 완성인 피에타 론다니니(Pietà Rondanini)를 이곳에 남겼습니다. 이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다빈치의 뽕나무 천장화를 종종 놓치곤 합니다.

위는 최정윤의 작품 '어린달'(2020), 아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천장화 ‘Sala delle Asse’(1498)ⓒ사진 = 김명식(위), La Repubblica(아래)

반대로 '어린달'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확 잡아끕니다. 털실을 이어 온 천장을 지나도록 해 3차원의 천장화를 그린 듯 근사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언뜻 보기엔 천장에 거대한 거미줄이 친 것 같아 보이지만, 작가는 이를 이전 시대엔 없었던 강렬한 작품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장화, 근대의 페인트와 벽지, 또는 콘크리트 노출로 끝나던 2차원적 면의 마감이 3차원의 천장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21세기에 태어난 아이들의 눈엔 풍부한 상상력을 품은 재미난 놀이 공간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저에겐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두 거장이 남긴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그 박물관이 떠올랐습니다.

이제 본래 이곳을 찾게 된 계기인 '목성' 에 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미 전편 글에서 마래 제2터널을 통해 단단하고 거친 돌의 질감과 그 날카로운 표면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을 간접 경험했습니다. 파빌리온 같은 설치물 '목성'에서도 그 질감의 연장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목성'을 가까이에서 보면 나무가 주는 따뜻함과 함께, 건조된 나무껍질 표면에서 다소 거칠고 까칠한 굳은 살 같은 느낌도 받게 됩니다. 멀리서 보면, '목성'은 비스듬히 엮인 나무토막들이 지문처럼 휘감기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휘감기는 흐름을 따라 시선을 위쪽으로 올리면, 마치 잡상(잡귀를 쫓는 의미로 궁궐이나 전각 지붕 위 네 귀에 얹는 작은 동물 형태의 장식 기와)이라도 올려놓은 듯, 삐쭉빼쭉 튀어나온 나무토막을 끼워 둬 재미를 더합니다.

최옥영의 '목성' 외부 모습(위)과 내부 모습(아래)ⓒ사진 = 김명식

내부는 더욱 흥미롭습니다. 얼키설키 엮어 놓은 나무토막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빛은 내부 공간을 더욱 투박하게 만들며 원석을 보는 것 같은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산란하여 몸에 부딪치는 빛의 공간은 태고적 공간감을 주고, 원시적 은신처에 들어온 것 같은 인상을 줍니다.

빛의 유입이 없었다면 마래 제2터널의 느낌과 매우 유사합니다. 설치적이면서 조형적 성격이 강한 탓에 단순하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인간의 DNA에 박혀있는 외부에 대항한 내부의 건축적 공간성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올려다본 돔의 천장은 다른 여러 형태의 돔 건물과 비슷하지만, 한가운데 자리한 둥근 천창이 몇몇 위대한 건축물의 그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건축을 공부한 이에게는 판테온(Pantheon)의 눈, 오쿨루스(oculusㅡ 원형천창)를 바로 연상하게 합니다. 판테온은 인류 초기에 고안해냈던 원시적 삶의 공간(집)을 상징하는 요소들로 가득합니다. 특히 원형천창은 내부공간을 위한 자연광의 원천이 되고, 통풍과 환기의 기능을 하며, 그림자보다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빛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정밀히 계산된 공간의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은 내부의 인간의 망막에 들어와 맺히는 구조가 이뤄집니다.

그러나 같은 건축적 요소라고 하더라도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은 어미’ 모자상을 전시해둔 베를린 ‘전쟁과 독재의 희생자를 위한 추모관’(“비설, 4.3의 기억”편 참고)의 그것은 전혀 다르게 해석됩니다. 이어 흉내만 낸 광주의 5.18기념공원 내 추모승화공간도 떠오릅니다.

'목성'의 천창 모습ⓒ사진 = 김명식

조금 더 생각을 진척시켜 훨씬 더 고도의 공학적 치밀함과 정밀함, 그리고 여기에 미학적 숭고함을 더한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2009년 프리츠커상 수상)의 수도사 클라우스 기념 예배당(Bruder Klaus Field Chapel, 2007)을 보겠습니다. 이 건축물은 독일 서부지역 작은 마을(Mechernich-Wachendorf) 경작지에 서 있습니다.

춤토르는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한 사람의 기념공간을 넘어, 성도들은 물론 많은 이의 마음에 정신이 깃든 상징, 영적 생의 기념비를 아로 새겼습니다. 건축은 물질의 대표주자이지만, 이 건물은 이를 뛰어 넘어 정신과 삶의 연관성을 담아 냈습니다. 거칠지만 간결하고 간소하며 아름답고 지엄한 공간으로 우뚝 솟았습니다.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기회가 제게 주어진다면 바로 이러한 공간에서 시작해, 이를 뛰어넘는 신비스럽고 경이로운 공간을 빚어내고픈 소망을 갖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 예배당은 지역 농부들의 수호성인인 15세기 클라우스 수도사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공간을 생성시키는 방법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좀처럼 생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바닥을 콘크리트로 굳히고 112개의 나무를 원시적인 원형의 오두막집과 삼각형 입구가 형성되도록 서로 기대어 세운 후, 이를 감싸는 거푸집을 만들고 약 50cm 높이의 콘크리트를 붓고 굳히는 방식으로 24번을 반복, 약 12m 높이의 오각 콘크리트 기둥을 만들었습니다.

수도사 클라우스 기념 예배당ⓒ사진 = Bennett Mueller
'수도사 클라우스 기념 예배당'의 입구와 예배 공간ⓒ사진 = (좌)August Fischer, (우) seier+seier

맨 마지막 층의 콘크리트가 굳어졌을 때, 세모 모양으로 남겨둔 입구의 공간 속으로 불을 지펴 나무를 모두 태웠습니다. 이제 납을 녹여 만든 바닥과 나무가 타고 난 자리에 그것이 있었던 흔적만 남은 벽이 만들어졌습니다. 외부 형태를 통해 유추할 수 없는 검게 그을린 벽의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시적 공간으로 귀결되는 정신의 공간, 영적인 공간이 완성된 것입니다.

예배당 내부 벽의 노출 콘크리트는 브루탈리즘 양식 그대로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천창의 오쿨루스는 지금까지 보아온 행태와 전혀 다른 눈입니다. 타고 사라졌으나 세워진 나무의 방향대로 결을 갖게 된 벽면은 하늘로 향해 공간의 눈을 만들어내고, 이 눈은 무엇 하나 제대로 갖추지 않은 노출 콘크리트 덩이에 원초적이면서 영적인 집이 완성되도록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신비로운 영적 존재와 대화하고, 자연과 낮의 하늘과 밤의 별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검소하게 살다 간 클라우스를 닮아 있습니다. 신과 함께 한 검소한 수도자의 삶, 그것의 감각적 표현, 그리고 그 자체로 존재하며 정신이 되고 영이 되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지요. 브루탈리즘은 여기에서 불에 타 생을 다하고, 우리 눈앞에 새로운 건축양식을 등장시겼습니다.

‘수도사 클라우스 기념 예배당’의 천창ⓒ사진 = Flemming Ibsen

이에 견줄 바는 아닙니다만, '목성'과 그것의 눈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의 공간을 경험해보는 것은 국내에서 쉬이 할 수 없는 경험인 것은 확실합니다. 젊은달와이파크의 흥미롭고 다양한 감각적 창작물들과 함께, 거친 재료와 구조 본연의 특성이 주는 '목성'의 공간감을 느끼는 일은 가치가 있습니다.

풍부한 인문학적인 상상력과 의미론적 추론의 길을 따라가 보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것입니다. 태고적 인류에서 지금의 우리에게 이어진 순수하지만 숭고해질 수 있는 공간의 DNA를 살피는 것이, 누구도 예상치 못한 공간에 관한 근사한 생각으로 이어질지 모를 일입니다. 그 시작을 '목성'에서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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