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의 일과 법] 행복은 사업장 규모순인가요

약 30년 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인 주인공이 학교 성적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은 입시지옥에서 고통 받는 많은 학생들의 현실을 보여준 데다 당대 최고의 하이틴스타가 주연을 맡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행복은 노동자가 다니는 직장의 규모순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기업의 임금 등 근로조건은 중소기업에 비해 월등히 좋다는 점, 근로조건뿐 아니라 사회적인 지위나 대우 등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라는 지위는 언제부터인가 일종의 사회적 신분처럼 고착화되고 그 가족 내지 자녀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단지 그러한 점들만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포스터ⓒ자료사진

우리나라에서 주 5일 근무제가 처음 시행되던 무렵에 봤던 기사가 생각난다. 주 5일제 적용을 받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직원의 자녀들은 주말이 지나고 나면 토요일에 부모님과 함께 어디에 놀러갔다 왔는지, 부모님과 같이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등을 이야기하거나 일기에 쓰는 반면, 주 5일제 적용을 받지 못하고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중소기업 직원의 자녀들은 일기에 쓸 말도, 할 이야기도 없어 소외감을 느끼고, 중소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 직장인들은 토요일에 학교에 가지 않는 자녀들을 맡길 곳이 없어 고생한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 기사를 보면서 노동자와 그 가족의 행복이 사업장 규모에 따라 이렇게 달라지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며 씁쓸해 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 7월 7일 ‘공휴일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기존에는 설날·추석·어린이날에 한정되어 있던 대체공휴일이 확대 적용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르면 공휴일이 토요일이나 일요일, 다른 공휴일과 겹칠 경우 공휴일 다음의 첫 번째 비공휴일이 대체공휴일이 되기 때문에 올해는 일요일인 광복절과 개천절, 토요일인 한글날과 성탄절에 대해 대체공휴일이 적용되어 총 4일의 대체휴일이 늘어났다. 그러나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주 5일제 근무제가 시행되던 때처럼 휴일이 늘어난 기쁨과 행복은 사업장 규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한국노총은 공휴일을 통한 ‘휴식권’ 보장은 국민의 포괄적 기본권인 ‘행복추구권’의 기본적 내용으로,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면서 5명 미만 사업장에 대체공휴일제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비판했고. 5명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어야 함을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민주노총 역시 대체공휴일제도로 인해 공휴일마저 양극화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현행 근로기준법 제11조는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하면서, 다만,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여 원칙적으로는 5명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되, 예외적으로 몇 개 규정만 4명 이하 사업장에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상 근로조건의 명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 또는 출산으로 인한 휴업기간과 그 후 30일간 해고 금지, 해고예고제도, 휴게, 주휴일, 출산휴가는 4명 이하 사업장에도 적용된다. 또한 남녀고용등과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육아휴직,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른 퇴직급여, 최저임금법에 따른 최저임금의 효력에 관한 규정도 4명 이하 사업장에 적용된다. 반면,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 및 부당해고 구제신청, 근로 시간, 주 12시간 연장 한도, 연장·휴일·야간근로에 대한 가산수당, 연차유급휴가는 4명 이하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다. 즉, 부당해고 관련 규정 외에, 근로시간과 휴가에 관한 규정이 배제되고 있는데 근로시간과 휴가는 임금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기본적 근로조건에 해당된다. 근로시간, 휴일, 휴가는 노동자 및 그의 가족의 삶의 질, 행복과 연결되고, 사실 보다 근본적으로는 노동자의 건강 및 안전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주 5일제에서 배제됐던 5인 미만 사업장 대체휴일도 역시
전체 노동자의 28% 헌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해
선진국 됐다면서 아직도 행복은 사업장 규모순인가

한국노동연구원이 고용노동부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2018년 기준 5명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약 455만 명이고, 이는 전체 노동자의 28%에 달하는 수치이다. 대다수의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중요한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은 언제부터 5명을 기준으로 전면적용과 일부적용을 나눈 것일까? 1954년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정 당시에는 15명 이하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했었는데, 그 후 점차 법의 적용대상을 확대했고, 1989년 개정 근로기준법부터 지금처럼 5명 이상 사업장에 원칙적으로 전면 적용하게 됐다. 5명 이상 사업장 전면 적용이라는 기준도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기고 있는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에게도 대체공휴일 확대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2021.06.21ⓒ사진공동취재단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인 적용대상을 5명 이상 사업장에 한정하고 있는 조항이 헌법상 평등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다투어진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상시 사용 근로자수 5인’이라는 기준을 분수령으로 하여 근로기준법의 전면적용 여부를 달리한 것은, 근로기준법의 확대적용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한편으로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고려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가의 근로감독능력의 한계를 아울러 고려하면서 근로기준법의 법규범성을 실질적으로 관철하기 위한 입법정책적 결정으로서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할 것이므로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현실을 무시하고 근로기준법상의 근로기준을 이들 사업장에까지 전면 적용한다면 근로자보호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한 채 오히려 영세사업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행정적 부담만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헌법재판소 1999. 9. 16. 선고 98헌마310 전원재판부).

그런데 최근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제한 규정과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등 구제절차를 4명 이하 사업장에 적용하지 않는 것이 4명 이하 사업장을 5명 이상 사업장에 비해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여 위헌인지가 다투어진 헌법소원 사건에서도 헌법재판소는 위 결정과 마찬가지의 논리, 즉, 영세사업장의 부담 문제를 주된 근거로 제시하면서 합헌이라고 판단했다(헌법재판소 2019. 4. 11. 선고 2017헌마820 전원재판부 결정). 결국 20년이 지나도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 배제는 주로 경제적, 행정적 부담이라는 동일한 논거에 의해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노동단체인 ‘권리찾기유니온’은 ‘공휴일에 관한 법률’이 5명 미만 사업장에 대해 대체공휴일 적용을 배제한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는데, 헌법재판소가 이에 관해서도 영세사업장의 현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판단을 내릴지, 대다수 노동자들의 건강권과과 행복추구권도 고려하는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약 10년 전 제18대 대통령선거 당시 어느 대선후보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은 지금까지도 역사상 가장 좋은 대선 슬로건으로 회자되곤 한다. ‘저녁이 있는 삶’에 비하면 다소 진부한 표현 같지만 대다수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건강하고 행복한 삶’은 언제 어디서나 중요한 가치로 추구되어야 한다. 얼마 전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공식적인 선진국대열에 진입했다. 우리가 자주 선진국 사례로 언급하는 독일의 경우 오래전부터 근로시간법과 연차유급휴가법은 사업장 규모에 관계없이 적용된다. 우리도 국가 차원에서 별도의 지원방안을 마련해서라도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이 저녁과 휴가, 건강과 행복이 보장되는 삶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선진국 노동자와 그 가족의 건강과 행복이 단지 사업장 규모순으로 결정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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