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아름다움으로 삶을 지키려는 이선지의 의지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 신보 [Oscillations]

지난 며칠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의 새 음반 [Oscillations] 덕분에 풍요로워졌다. 이제는 이선지를 ‘좀처럼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뮤지션’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2008년 정규 1집 [The Swimmer]을 내놓은 후, 거의 2년마다 정규 음반을 발표하는 집요한 성실함이나, 도재명 같은 다른 장르의 뮤지션과 함께 작업을 시도하는 과감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가진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는 작가 정신과 일관된 서정미는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 중에서도 돌올하다. 그렇다. 이선지는 오늘도 한국 재즈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자신을 끊임없이 쌓아 올리고 있다.

9월 1일 내놓은 신보 [Oscillations]는 제목처럼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베이스, 드럼, 프로그래밍, 보컬 사운드의 진동과 조합으로 마음을 움직인다. 음반에 담은 8곡의 음악은 이선지의 마음이 진동한 기록이며, 락다운 시대 수많은 이들의 마음이 움직인 파동의 흔적이다. 두렵고 막막하고 화나고 슬펐던 코로나 블루의 시간들이 이렇게 한 예술가에 의해 기록되었다. 예술가는 기록하는 사람이다. 대변하는 사람이다. 부활시키는 사람이다.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 앨범 'Oscillations' 커버 이미지ⓒ사진 = 페이지 터너

재즈 피아니스트답게 이선지는 피아노와 신시사이저를 주로 활용하는데, 이번 음반에서는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성큼 다가온다. 이선지가 직조한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자신이 연주한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사운드의 물결을 더 어룽거리게 한다. 첫 번째 곡 ‘Dawn Song’에서부터 마지막 곡 ‘Epilogue’까지 음반에 담은 곡들마다 이선지가 직조한 섬세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멜로디가 물결친다. 감각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주선율이 흐를 때, 매혹은 필연적이다.

이선지는 좋은 멜로디 하나만 우려먹을 생각이 없다. 그는 첫 번째 곡에서 음형을 반복하면서 이어가는 멜로디 위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멜로디를 얹고, 여기에 신비로운 질감의 신시사이저 연주까지 더했다. 이 구성은 이선지의 음악이 얼마나 단단한 조합의 산물인지를 공증한다.

두 번째 곡 ‘Swell’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게 부풀어 오르는 테마를 반복하면서 묵직한 타건을 더하고, 영롱한 신시사이저 연주를 흩뿌릴 때, 마음은 두 번 세 번 걸려 넘어지고 꽁꽁 묶인다. 피아노의 흐름이 바뀌어도 반복하는 테마는 번번이 아름답다.

재즈 피아니스트 이선지ⓒ사진 = 페이지 터너

이선지는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연결한 소리들로 성을 쌓는다. 서로 다른 소리들을 이어붙일 때 한 곡의 음악은 풍요롭고 단단해진다. 그 소리는 단지 다른 악기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조합이 아니다. 갈라지고 깨지고 부서진 세계와 삶과 마음을 최대한 보듬으려는 예술가의 의지이다. 그래서 이 음반 어디에서도 냉정한 관찰은 없다. ‘Crack’의 드럼이 무너진 오늘의 파편을 드론 카메라로 찍듯 펼쳐 보인다면, 베이스는 그 속에서 버티는 이들을 위로하듯 줄을 튕기고 긋는다.

이선지의 음악은 인간과 세계를 기록하면서 옹호하고 연민하며 지키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Lost’에서는 수림이 부른 노랫말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Let It Flow’에서는 그 다운 멜로디의 향연을 이어가면서도 더 선명한 재즈의 언어와 화려한 사운드로 말한다. 이선지와 이준삼, 신승규는 ‘Forest Song’ 같은 곡들에서 곱고 자유로운 소리의 드라마를 이어 붙여 숲을 재현하고 충만한 위로와 생명의 가능성을 동시에 전달한다.

반복과 서정이라는 지향을 잃지 않는 ‘Night,rain’은 편안하면서 따스하고 애잔하다. 자연의 소리까지 담으며 음반을 마무리하는 'Epilogue‘의 고요함은 언젠가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평화를 환기시키며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희망처럼 불을 밝힌다.

섣불리 희망을 말하기 어려운 날들, 그래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느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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