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종말] 요란했던 ‘농업 농촌 지원 119조원 투·융자’의 결말

WTO가 난항을 겪으며 농업 부문에서 더 이상 합의가 나오지 않자, 국제적으로 다자 간 협상은 물 건너가는 듯 했다. 그러자 '양자 간 협상'이란 것이 불거졌다. 이것이 FTA(free trade agreement, 자유무역협정)이다. 농산물 수출 강대국들은 개발도상국들을 상대로 1대1로 농산물 수출 장벽을 뚫어내는데 진력했다.

2002년 11월 한강 고수부지에서 10만의 농민들이 난장을 벌였다. 그 농민대회장에서 날아오는 달걀을 피하지 않으며 한-칠레 FTA과 쌀 추가 개방을 반드시 막겠다고 사자후를 토하던 사람이 그해 12월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렇게 참여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국민들에게 신선함이 있었다. 노무현이란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 대통령이 된 극적인 사건에 농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주류 사회는 반발했다. 아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굽신대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다 한나라당으로부터 탄핵을 당하지 않았던가. 노 대통령은 2003년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면서 "한국은 농업 분야를 위협하는 어떠한 FTA도 추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얼마 가지 못해 한-칠레 FTA 비준안에 서명했다.

그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을 '또 다른 도전'이라고 했다. 하지만 농민들과 진보진영은 비판하며 결별을 선언했고, 청와대 수석이었던 정태인 박사마저 떠나버렸다. 그러니 노 대통령의 그 도전은 농민들이나 농업 부문의 의견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후 노 대통령의 입장은 사뭇 달라졌다. 그는 2005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개최를 계기로 싱가포르 경제전문 월간지 `아시아INC`와 한 인터뷰에서 "한-칠레 FTA가 발효되기까지 개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한국 내에서 많은 진통을 겪었으나 이제 한-칠레 FTA를 통해 개방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고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말했다. 또 이런 토대 위에서 아세안(ASEAN), 일본 등과 다발적인 FTA를 추진해 나가고 있다며 한국 정부의 무역 자유화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고 한다.

11월 15일 농민대회 현장에서 경찰폭력에 쓰러진 고 전용철 농민을 옮기는 농민들. 2005. 11. 15ⓒ기타

2005년 11월 정부의 쌀 관세화 협상이 국회 통과를 앞두자, 농민들은 서울 여의도에서 대규모 시위를 열었다. 농민들이 국회 앞으로 몰려들자, 수많은 경찰들이 방패를 세우고 몽둥이를 휘둘러 피를 보게 했다. 이날 경찰 공권력에 의해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이 사망했다. 농민들의 참여정부에 대한 기대는 이 사건으로 산산히 부서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엔 농민들이 '검은 머리 미국인'이라고 비아냥 댔던 김종훈을 수석대표로 임명해 한미 FTA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 때 농업 부문과 관련해선 별다른 대책도 없었던 것 같다. 또 한미FTA가 어떤 후유증을 낳을 것인지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다

당시 일본은 농업강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농산물에 대해 관세를 철폐할 경우 일본 농업 생산액의 42%가 감소하고, 농업 식품산업 관련 종사자 375만 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한국의 공무원들은 이런 종합적 연구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데이터를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농민들이 다방에서 커피나 마시고 보조금이나 축낸다는 비난만 했다.

정부는 '농업개방정책'을 추진하며 농민들에겐 자금을 수혈해 위기를 견디도록 하고, 한편으론 농업 구조조정을 통해 농업 재편을 하려는 뜻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 '119조원 투융자 사업'이었다. 119를 통해 출동한 소방관들의 주임무가 불을 끄는 것이다. 아마도 정부는 그런 맥락에서 '119'라는 숫자를 끌어들여 농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던 것 같다. 이것도 나중에는 추경이 편성돼 123조원으로 증액 됐다. 그런데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쓰였고, 효과는 어땠다는 보고서는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농촌진흥청에서 열린 제8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올해말까지 농업발전과 농민 복지증진을 위한 향후 10년간의 청사진을 제시할 것"이라면서 "앞으로 10년간 농업·농촌 투융자계획은 119조원 규모로, 특히 내년부터 2008년까지 51조원을 정부 중기재정계획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3.11.11ⓒ사진 = 노무현 사료관

당시 신문엔 "119조원 농어촌 구조조정자금으로 풀린다"란 기사가 연이어 보도됐다. 내용은 주로 농촌에 엄청난 혈세를 쏟아붓는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였다. 결국 한미FTA 타결 이후 가장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농업 부문에 대한 지원 방식 및 규모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일부 보수 언론과 재계, 비농업 전문가들은 정부의 농업지원정책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농업 지원의 모럴해저드', '퍼주기식 지원'이라고 비난을 일삼았다.

농민들은 이 같은 논조에 동의할 수 없었다. 119조원이 어디 모두 농민에게 지원된 돈이었던가. 농민에게 직접 지원되는 금액은 전체 투·융자 금액의 30%가량이며, 나머지 70%는 경지 정리, 농산물 유통시설 현대화 등 농업의 하부구조 개선과 국토의 균형발전 차원에서 농촌 개발에 쓰여지는 돈이었다.

"제1차투융자기간(1992~98, 7년 간)에는 48조6598억원이, 제2차 투융자기간(1999~2003, 5년 간)에는 40조9858억 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3차 기간이라 할 수 있는 2004~2013년까지 10년간에는 119조원이 투·융자 된다. 연평균 총 투융자액을 명목 가격으로 비교하면 119조 대책은 1차에 비해 1.7배, 2차에 비해 1.5배의 투· 융자를 하는 셈이다. 연평균 국고 지원만을 명목으로 따지면 1차에 5조1786억원, 2차에 6조5254억 원, 3차에 11조9290억 원으로, 119조 대책은 1차보다 연평균 2.3배, 2차보다 1.8배 많다. 그러나 물가인상률을 4%로 가정하고 2000년 실질가격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19조 대책의 연평균 총 투융자액은 1단계에 비해 불과 1.01배, 2단계에 비해 1.09배에 지나지 않는다" (강기갑의원 국감보고서, 한국농어민신문 2006.10.19.)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가 UR 이후 1992년부터 10년 간 약 90조원을 농어촌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에 투입했다. 그럼에도 그 효과는 보잘 것 없었다. 2003년 무렵 농가수는 대폭 줄어들었다. 농민들은 절박함에 처해있었다. 119조원을 농어촌에 투입한다는 결정은 그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었다.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계속 똑같은 대책을 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째 별 성과가 없는데 농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생각은 안 하는 건지. 관료들과 경제학 교수들이 만든 자료만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었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2013년까지 10년 동안 총 119조원을 투입하는 '농어촌종합대책'은 경쟁력 있는 품목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개방화 시대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아울러 친환경. 고품질 농업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진하고, 잘사는 농업인 육성에 집중해 살고 싶은 농촌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계획이었다.

“119조 투융자계획을 들여다보면 10년간 119조원 가운데 정부 예산은 79%인 94조원, 기금은 21%인 25조원이다. 연도별 투융자규모는 2004년 8조4000억원에서 2005년 9조6000억원, 2006년 10조4000억원, 2007년 10조7000억원, 2008년 11조8000억원으로 연평균 7.8%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이는 정부의 사업예산이 매년 3%씩 증가하고, 성장분야의 경우 5%, 그외 분야는 1.2% 증가되는데 비하면 높은 증가율이었다. 분야별 투융자 비중은 농가소득 및 경영안정, 농촌복지 및 지역개발 분야는 확대하는 반면 농업생산기반정비는 감축했다. 2004~2008년까지 5년간 분야별 투융자 비중은 농업체질강화와 경쟁력 제고에 36.5%, 소득 및 경영안정 강화에 25.6%(이중 직접지불 사업은 18.3%), 농촌복지증진 및 지역개발에 12.2%, 농산물 유통개선에 9.9%, 농업생산기반정비에 15.8%이다.” (한국농어민신문. 119조 투융자 농촌종합대책, 2004. 2. 2)

분야 별 119조원 투융자 비중, 농촌정보문화센터 정재현, 2006.08.23ⓒ표 = 정책브리핑

이런 어마어마한 투융자 계획은 숫자놀음에 불과한 것이었다. 처음 문민정부가 세운 42조원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연이어 세운 계획에서 중첩된 부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문민정부가 세운 7년간의 예산은 국민의 정부로 약 1년치가 넘어가고 국민의 정부는 5년 간만 계획 했으므로 중첩되진 않았지만 참여정부는 10년의 계획을 짠 것이라서 차기 정부까지 예산이 넘어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차기 정부가 그 계획을 제대로 시행할 것이라는 담보가 없으니 그야말로 숫자 놀음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5년 간의 투융자규모를 살펴봐야 한다. 참여정부의 119조 투융자는 앞선 두 정부가 1992~2002년까지 11년 동안 농업·농촌에 투·융자한 중앙정부 지원분 62조원의 약 2배 수준이다. 그러나 그것은 허수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10년 간 투·융자 계획 중 참여정부가 재정계획으로 반영해 책임질 수 있는 투융자 예산은 51조 원이었다. 그 중 2004년 분 8조4500억 원은 국민의정부가 99~2004년까지 5년 간으로 짰던 45조 농업농촌 투·융자계획의 2004년도 예산과 겹친다. 따라서 51조원 가운데 8조4500억 원을 빼면 2008년까지 4년 간 42조5500억 원을 투입하는 것이었다.

거기에 물가인상과 예산 증가를 감안해보면 참여정부 119조 계획은 그동안 2개 정부의 투융자 총액보다 늘어난 게 아니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2~98년까지 1단계 42조원, 1999~2004년까지 45조원, 1995~2004년의 농특세 15조를 합치면 그동안 총 투융자금액이 102조원이다. 참여정부 투융자계획 119조원에서 2004년분 8조4500억원을 빼고 9년 간 투입한다는 110조5500억원을 102조와 비교하면 큰 차이는 아니었다.

물론 참여정부 계획은 예전과 달리 지방비와 자부담을 빼고 중앙정부 지원분만 계상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했다. 119조원 가운데 참여정부가 2008년까지 국가재정계획으로 책임진다는 51조원을 빼면 2009~2013년까지 5년간 68조원이 차기 정권의 몫이었기 때문에, 투융자계획이 법으로 보장되지 않는 한 2009년부터는 지속적인 투자를 확신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게다가 119조 투융자계획을 농림예산에 반영할 경우, 노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한 국가예산 대비 농림 예산 10% 이상 확충 공약은 지킬 수 없었다. 농림예산은 UR 타결 당시인 문민정부 시절에는 농특세 신설, 42조 사업의 3년 조기 집행 등으로 1993년 10.4%, 1995년 12.8%, 1997년 11% 등 10%를 크게 웃돌았다. 그러다가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8년 9.5%(문민정부 편성한 것)로 줄어들었다.

이어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9~2002년 중기재정계획에서 농림부문 예산은 8%대로 떨어진다. 실제 2000년 8.5%, 2001년 7.9%, 2002년 8%로 줄다가 참여정부가 들어선 2003년엔 8.3%(국민의 정부가 작성했으나 추경에 의해 증가) 다소 는다. 2004년에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해 한 농림부 관계자가 '119조가 계획대로 집행된다해도 국가 예산 대비 농림예산 비율은 2006년 9.5%, 2008년 9.8%'라고 했으나, 이는 영 헛말이 되고 말했다. 2009년에 5% 대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국가 전체 예산 및 농식품부 예산 추이, 경시인가 무관심인가…농업예산 비중 축소 ‘고착화’, 2018.12.12 .기사 내 인용ⓒ표 = 농민신문

그렇다면 참여정부 시기 계획된 투융자 계획은 이명박 정부로 넘어와 지켜졌을까? 아니다. 이름이 이것, 저것으로 바뀌더니 끝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3월 3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식물식품연구소를 방문해 "한국 농촌도 많이 발전했는데 아직 투자에 비하면 농산물 경쟁력이 썩 높지 않다"면서 "농업 개혁 이전의 뉴질랜드와 같이 한국 농촌은 여전히 (정부)지원을 받아서 하고 있는데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한국 농업의 정부 의존성이 문제라는 것이며 ,정부지원금을 없앤 뉴질랜드의 농업 위기 극복사례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으로, 농업에 대한 국가지원 축소를 예고한 것으로 해석됐다.

이명박 정부는 기업농만 강조하며 농업 전반에 대한 단기 대책, 중장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한미FTA 후속조치라며 119조원 중 나머지 68조원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 21조원의 상당의 투융자 계획을 내놨을 뿐이다. 그것도 윗돌 빼서 밑돌 고이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는 참담한 지표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까지만 해도 100을 웃돌던 농가교역조건이 100이하로 추락하면서 5년 평균 89.5를 기록했고, 농가소득은 2012년 기준 도시근로자소득의 58% 수준으로 떨어졌다.

당시 4대강 살리기 본사업으로 추진됐던 농업용 저수지 둑높임 사업 예산이 4066억원 늘어난 것을 제외하면, 실제로 농업예산은 5051억원(전체 예산대비 4.5%)로 감소했다. 4대강 관련 사업 예산 때문에 농가소득· 경영안정, 농촌개발· 복지증진, 농업체질강화 등 모든 예산이 줄어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한미 FTA가 타결되고 한-EU, 한-아세안 그리고 한-중 FTA까지 추진했던 걸 보면, 과거 기조를 따른다 해도 농촌 투·융자는 계속 되어야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68조원의 투융자는 이름을 바꾸며 사라지고 말았다. 게다가 한 술 더 떠 농업예산은 해마다 그 비중이 줄어 이제는 3%아래로 곤두박질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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