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갈 길 먼 민주주의

요즘 뉴스를 보면 코로나 사태와 천정부지로 뛰는 집값, 그리고 내년 대선과 관련된 이야기뿐입니다. 모두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들이지만, 무엇 하나 기분 좋게 들리는 소식들은 아닙니다. 특히 정치인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우리 사는 세상의 것이 아닌,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괴담’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민주주의가 처음 시작되었다는 영국의 예전 선거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영국의 신윤복’, 윌리엄 호가스는 그의 작품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선거원 접대 An Election Entertainment 1754~1755 oil on canvas 101.5cm x 127cmⓒSir John Soane's Museum

홀에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오렌지색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니 휘그당(오늘날 자유당의 전신)의 모임입니다. 맨 왼쪽에 있는 후보자 한 명은 임신한 여인의 입맞춤을 받고 있습니다. 그 옆에 있는 또 다른 후보자는 술 취한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는데, 후보자들의 표정이 밝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표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참아야겠지요.

창밖에는 토리당(오늘날 보수당의 전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짜증이 난 휘그당 지지자 한 사람은 창밖으로 물을 붓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의자를 집어 들어 밖으로 던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영국이나 우리나 다를 것이 없군요.

1754년 영국 전역에서 실시된 의회 의원 선거 중 흥미로운 곳 중 한 곳이 옥스포드였습니다. 40년간 토리당이 주도권을 잡고 있던 곳인데 휘그당이 이 거점을 빼앗기 위해 노력했던 곳이었지요. 윌리엄 호가스는 이 선거의 진행을 ‘선거의 유머’라는 제목 아래 작품 4점으로 남겼습니다.

선거 유세 Canvassing for Votes 1754~1755ⓒSir John Soane's Museum

출정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유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정견을 발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하는데 이곳의 풍경은 이상합니다. 가운데 한 남자를 두고 두 남자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것 같은데, 또 다른 손으로는 가운데 남자에게 돈을 쥐어 주고 있습니다. 유권자는 양쪽에서 돈을 받고 있으니 나쁠 것이 없다는 표정입니다. 그 위에 걸린 걸개 그림에는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선거로 인해 막대한 돈이 뿌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맨 오른쪽 두 사람은 이런 것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열심히 자신의 예전 무용담을 탁자 위에 그려가면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보아야 할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당시 선거는 앞을 못보는 사람에게 화려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뜻일까요?

투표 The Polling 1754~1755 oil on canvas 101.5cm x 127cmⓒSir John Soane's Museum

투표일입니다. 그런데 투표 장소가 난장판입니다. 맨 오른쪽 오렌지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선거인 명부에 서명을 해야 하는데 그는 한 손은 없고 다른 한 손에는 갈고리가 달렸습니다. 난감해하는 직원의 표정이 애처롭습니다. 그 뒤에 있는 남자는 제정신이 아닙니다. 뒤에 있는 사람이 간신히 부축하고 있는데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선거가 불가능한 사람들까지 모두 동원된 투표장 왼쪽에는 부서진 마차가 보입니다. 마차 안의 여인을 빨리 밖으로 꺼내야 할 것 같은데 마부 두 사람은 게임에 빠졌습니다. 윌리엄 호가스는 당시 영국의 모습을 마차에 비유한 것이지요. 나라는 엉망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선거라는 게임에 빠져 있다는 일종의 야유이기도 합니다.

대의원의 승리 Triumph of the Deputies 1754~1755 oil on canvas 101.5cm x 127cmⓒSir John Soanes's Museum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시가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풍습은 당선자가 앉은 의자를 가마처럼 매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행진 앞에 있던 오렌지색 모자를 쓴 휘그당 지지자와 당선자의 지지자 사이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휘그당 지지자를 때리기 위해 든 곤봉이 하필이면 당선자의 의자를 매고 가는 남자의 머리에 맞았고, 이 바람에 당선자는 의자에서 떨어질 판입니다. 의자에서 떨어지는 것이 선거에서 떨어지는 것보다는 덜 아프겠지요.

당시 옥스포드 선거에서 근소한 차이로 토리당이 휘그당을 이겼지만, 휘그당은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해 치러진 영국 의회 선거는 휘그당이 전체 의석의 66%를 차지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우리의 선거는 호가스가 그린 260여 년 전의 그림과 닮은 것이 하나도 없겠지요? 부디 그렇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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