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노동이야기] 안전에서만 ‘프리’한, 방송업 프리랜서들

K-콘텐츠 ‘한류 열풍’ 뒤에 가려진 방송업 프리랜서들의 가혹한 노동환경

재작년에 남미 칠레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일행과 함께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로 향하던 중, 택시 운전기사가 자신의 아내가 한국 드라마 팬이라면서 요즘 열심히 보고 있다는 드라마의 주제곡을 흥얼거렸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드라마 ‘천국의 계단’ 주제곡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정의 첫날, 지구 반대편 낯선 땅에서 칠레인 운전기사와 한국 드라마 주제곡을 함께 부르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한국에서 제작된 방송 프로그램들은 최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 방송구조가 본격적으로 변화한 것은 1990년 이후다. 개정된 방송법을 통해 상업방송이 허용되고, 외주제도가 도입되어 방송 자본 간 경쟁체제가 심화됐다. 이런 흐름이 ‘한류 열풍’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이러한 방송구조의 변화 뒤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불공정한 계약,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밀려나야 했던 수많은 방송 제작 노동자들이 있었다.

한국의 방송업도 다른 산업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도급 계약이 매우 일반화되어 있지만, 계약이 이루어지는 형태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방송업의 도급계약은 보통 건설업에 비교된다.

프로그램 한 편이 제작되려면 연출, 대본, 촬영, 조명, 동시녹음, 소품 등 다양한 작업이 필요하다. 발주자인 방송국·제작사들은 이 업무를 팀 별로 나누어, 담당자들과 도급 계약을 맺을 때 해당 팀에 한꺼번에 예산을 배정하는 소위 ‘통계약’을 체결한다. 건설업으로 치면 ‘십장’의 역할을 하는 방송업의 팀장들은, 함께 팀을 이루어 프로그램에 참여할 스태프를 직접 찾아 계약하고 자체적으로 인건비를 나눈다. 그리고 이 팀장들을 통해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게 되는 인력 대부분은 ‘프리랜서(free-lancer)’이다.

최근 20년 간 급격하게 늘어난 방송업 관련 프리랜서는 전체 규모조차 파악이 어렵고 프로그램 장르에 따라 계약 관행에도 차이가 있다. 그렇지만 프리랜서 고용 실태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메인 제작 단계의 조명, 장비, 동시녹음, 오디오, 무대 영상, 소품, 헤어·메이크업 등을 비롯해, 제작 후 작업 단계인 편집, 믹싱 작업 등에서 프리랜서 계약이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사실 대부분의 방송 제작 업무는 프리랜서 계약에 의존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프리랜서 업무 계약이 대부분 구두로 이루어지다 보니, 많은 이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임금 체불, 계약 해지 등 수많은 불이익을 경험해 왔다고 한다.

KBS드라마 근로기준법 위반 처벌촉구 노동부 고발 기자회견 사진2021.09.16ⓒ제공 = 희망연대노동조합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계약서의 부재로 생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19년에 방송분야 표준계약서 사용 지침을 내놓았다. 그 이후 현장의 스태프들이 표준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늘어나긴 했다. 그러나, 이는 주로 대형 제작사나 방송사와 직접 계약을 하는 경우와 연출, 작가 등 일부 업무의 경우에만 그렇다. 여전히 많은 프리랜서가 계약서 없이 구두 약속만으로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다면 프리랜서의 계약서는 이들의 불공정 계약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프리랜서들이 작성하는 [표준업무위탁계약서]는 ‘방송 스태프가 프리랜서로서 자신의 책임 하에 계약의 내용을 수행하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방송사 또는 제작사로부터 업무 자율성을 보장 받은 상황’에서 적용된다. 즉, 방송사 또는 제작사로부터 별도의 지휘 감독을 받지 않고 개인이 스스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업무 계약인 셈이다.

그러나 실제 방송업 프리랜서들의 업무를 들여다보면 그렇지가 않다.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받고,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이 존재하는 등 실제로는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해야 하는 노동자에 훨씬 가깝다. 따라서 프리랜서들의 표준업무위탁계약과 현실 간의 부정합성은 이들을 노동자 보호 제도의 사각지대에 위치시키는 동시에, 프리랜서로의 업무 자율성도 전혀 갖지 못하게 하는 이중의 착취구조에 놓이도록 만든다. 단순 계약서 문제만이 아니라는 뜻이다.

방송업 프리랜서들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는 업무상 재해를 예방하거나 재해 발생 시 보호할 수 있는 안전망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사실, 방송 제작에 종사하는 대부분 스태프는 고용 형태를 막론하고 종합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살인적인 노동시간과 빈번한 밤샘 작업으로 인한 질병과 상해, 무대나 세트의 무너짐이나 감전, 화재 등으로 인한 부상, 긴 차량 이동 시간과 무리한 스케쥴 때문에 발생하는 교통사고 등이 빈번하다.

사실 방송 제작 업무 중에서도 가장 열악하고 위험한 일은 주로 프리랜서들이 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행 안전보건관리체계로 인해, 사고와 재해를 예방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무색해진다. 우리나라 방송 영상 독립제작사의 절반이 10인 미만의 영세 사업장이며 50인 이상 제작사는 2.3%에 불과한데,*** 현행 안전보건관리체제는 상시근로자 50인 이상의 사업장에 적용되어 대부분의 제작사가 적용 대상이 아니다. 헐거운 법적 규제가 영세한 방송 제작 환경에서 더 발생하기 쉬운 사고와 질병은 규율하지 못하고, 중층적으로 형성된 사용자 간 책임 회피도 막지 못하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에서 열린 ‘방송계갑질119와함께한 1년 6개월, 성과와 과제’ 토론회에서 방송계갑질119 스탭 권순택 활동가가 발언을 하고 있다. 2019.08.07ⓒ김철수 기자

업무를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고 제작사의 기획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방송업 프리랜서들은 제작사와의 관계에서는 물론, 방송 제작 스태프들 사이에 존재하는 역관계로 인해 끊임없이 괴롭힘에도 시달린다. 조명, 의상, 동시녹음 등의 업무를 하는 스태프들은 방송 현장에서의 자신들은 갑·을·병·정에서 ‘정’의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제작 과정을 총괄하는 외주 제작사 연출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방송 출연자 혹은 카메라 감독 등 방송 제작 현장의 핵심 업무를 담당하는 스태프들에게 욕설이나 폭언을 듣는 경우는 아직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런 부당대우를 신고하거나 항의하는 것은 소위 ‘소문에 민감한 좁은 바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에, 괴롭힘 발생을 확인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기도 어렵다.

지금까지 방송업 스태프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방송 제작 환경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나라의 방송 산업은, 이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만은 계속 외면하고 있다. 방송업이 갖는 특성 때문에 고용구조와 노동환경이 현재와 같이 형성되었다면,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한 조건 역시 방송업의 특성에 맞게 갖추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니 방송업 프리랜서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근로계약을 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사업장이 아닌 방송 사업 혹은 프로젝트 단위로 기준이 변경되는 등, 방송업의 특수성에 맞는 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며 방송법 등 관계 법령에 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필자는 이들 방송업 프리랜서들과의 면접 조사에서 그렇게 힘든 현실에도 왜 이 일을 계속하는지 질문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이 세상에 공개될 때의 성취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방송 말미 엔딩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발견할 때, 작품에서 필요한 이미지에 딱 맞아떨어지는 메이크업을 완성했을 때, 원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잡았을 때, 그들은 저임금도, 밤샘 촬영의 고단함도, 불안정한 직업적 조건도 잊을 수가 있었다고 한다.

방송사와 제작사는 그간 이들이 방송에 쏟아온 열정에 대한 책임의식을 느껴야 한다. 또 이들의 꿈에 대해서도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지구 반대편 사회까지 점령한 한류가,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의 방송 산업이 다 자신들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줄 아는가.

**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방송제작 프리랜서 고용·경력 관리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
***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콘텐츠진흥원, 「2020 방송영상 산업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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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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