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자라는 아빠] 일곱 살 수현이의 ‘월요병’ 잊게 한 송편 만들기

2021년 추석을 앞두고 아빠는 아이와 함께 난생 처음 송편을 만들었다.

아빠, 내일 주말이야?

아이는 매일 밤 똑같이 묻습니다. 내가 '내일은 평일'이라는 답과 함께 고개를 가로 저어 보이면, 아이는 '주말이 도대체 언제 오느냐'고 투정을 합니다. 달력을 짚으며 요일의 순서를 알려줘 보지만, 아이가 원한 건 그게 아닙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친구들의 등원이 들쑥날쑥한 탓에 어린이집에 가기 싫은 것입니다. 엄마, 아빠가 일하러 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늘 내일이 주말이기를 바라는 모습이 못내 짠합니다. 상황을 봐서 가끔은 마스크를 벗기도 하는 어른들과는 다르게, 온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만 하는 곳에 보내는 부분이 무엇보다 미안합니다.

밤 뿐만 아니라 아침마다 '오늘만 어린이집에 안 가면 안되냐'는 아이가 안스럽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있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1년 반이 넘은 코로나19 시절에 조금 지쳤지만, 그럼에도 씩씩하게 살자고 두어 달 전부터 아침마다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집을 나서는 내가 출근하기 전, 우리 세 식구는 현관문 앞에 삼각형으로 모여서 가운데로 손을 모읍니다. 내가 "하나, 둘, 셋, 오늘도!"를 선창하면, 아내와 아이는 "힘차게~!"라고 외치며 손을 허공으로 뿌립니다.

그리곤 나는 아이를 안아주며 말합니다.

아빠:수현아, 우리 잠깐 헤어졌다가 저녁에 만나서 재미있게 놀자.
수현:알겠어.

저녁 7시, 퇴근하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아이가 주섬주섬 소중히 챙겨서 나오는 게 무엇인가 봤더니 사인펜으로 알록달록 색칠한 지점토 공입니다. 보라색을 많이 섞었는지 마치 송편처럼 생겼습니다.

우와! 송편처럼 생겼네. 좀 있으면 추석인데 우리 진짜 송편 만들래?
좋아!

혹시 좋아하려나, 슬쩍 던져본 말인데 아이가 내 말을 한껏 반겼습니다. 고무줄 튕긴 듯 온 얼굴에 웃음이 탁 피었습니다. 아이 얼굴이 얼마나 환한지, 이 약속은 세상이 망한다 해도 무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저는 송편을 만들 줄 몰랐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어린이집에 안 가는, 추석을 앞둔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이제 열심히 놀 차례! 일요일 아침에 우리는 집 근처 숲으로 향했습니다. 송편을 찔 냄비 바닥에 깔 솔잎도 따고, 송편 소에 갈아 넣을 알밤도 줍기 위해서요. 각자 손목에 비닐봉지 하나씩 걸고 둘레둘레 오솔길을 걸었습니다.

날씨는 화창하고 구름도 예뻤습니다. 색이 곱거나 모양이 재밌는 낙엽을 주워다 다른 낙엽에 붙이며 놀았습니다. 사이사이 애벌레도 여러 마리 만났습니다. 그 틈틈이 대화도 나눴습니다.

수현아, 조금 있으면 추석인데 너 추석이 뭔지 알아?
당연히 알지. 보름달이 소원 들어주는 날이잖아.
너는 무슨 소원 빌 건데?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손 모으고 눈을 감으며) 도깨비방망이를 갖게 해주세요~
잉? 어째서 그게 필요한 거지?
돈을 안 내도 갖고 싶은 장난감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요~ (갑자기 존댓말?)

어느새 소원이 업그레이드 되었군요. 아이는 최근 2년 동안 누군가가 쌓아 올린 돌탑이 보일 때면 "장난감 많이 갖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두 손 모아 빌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를 올려다보며 "아빠, 이제 장난감 사줄 마음이 좀 생겼어?"라고 묻곤 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는 아빠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낼 셈인가 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무엇이든 자유롭게 상상하고 이뤄갔으면 좋겠습니다. 추석 보름달에 빈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달에서 지구로 도깨비 방망이가 내려올 것이라고 믿는 지금처럼 말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는 보름달을 산타클로스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숲에서 놀며 쉬며 어지간히 솔잎을 따고, 밤톨을 주웠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에 따라 멥쌀가루를 사러 동네 마트에 들렀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대신 잇몸으로 하면 되겠거니 하고, 그와 가장 비슷해 보이는(?) 찹쌀가루를 샀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잘못 산 기분이 들었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습니다.

송편 소 그릇에 바짝 붙어 꿀범벅 숟가락을 호시탐탐 노리는 아이의 입ⓒ사진 = 오창열

아이와 나는 거실에 마주 앉았습니다. 꿀, 설탕, 깨를 부은 그릇과 숟가락을 아이에게 주며 골고루 섞으라 일렀습니다. 아이는 두어 번 휘젓다 말고는, "이거 맛있네?" 하면서 숟가락을 냠냠 핥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수현아, 그만!
우와~진짜 달콤하겠다. (이미 먹고 있으면서?)

아이는 "그릇에 꿀을 더 넣자~♪" 종알종알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숟가락을 젓습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또 슬쩍 맛을 보고는 "으아아~진짜 달콤달콤 맛있네~!"라며 입맛을 다시며 노동요를 계속 이어갑니다. 어째 아까보다 목소리가 한결 커진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가슴을 붙들고 쓰러질 것 같습니다.

그러다 내가 송편 반죽을 하는 동안 아이가 묘하게 조용해졌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조용할 땐 대개 '그만두도록 말려야 하는 행동'을 하는 때입니다. '설마?'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으로 송편 소를 떠 먹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감정 측정 기계가 있다면, 이 순간의 아이는 '행복 수치 1,000%'가 나올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다급히) 으악, 많이 줄었어! 송편에 넣을 게 없겠다! 이제 그만!
아빠, 그만 먹고 싶은데 멈출 수가 없어!
참아야 해!
참으려 해도 맛있어서 계속 먹게 돼! 에헤헤!
그만 먹으세요, 아저씨!
(안 들리는 듯) 이거 왜 이렇게 달콤한 거야!
이제 정말 그만!
마지막으로 한 스푼만 더 먹고!

아이는 제 말에 대답은 다 했지만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숟가락을 놓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말려서 속 빈 송편이 될 뻔한 위기를 넘겼습니다.

작은 두 손으로 송편 반죽을 조물조물하는 수현이ⓒ사진 = 오창열

드디어 하이라이트! 송편 빚기에 돌입하려는데, 어쩐지 반죽이 흐물흐물한 것이 영 시원찮았습니다. 겨우 소를 넣고 송편 모양을 만들더라도 어딘가에 반드시 구멍이 났습니다. 찢어진 부분을 덧대다 보니 송편이 아니라 왕만두처럼 커졌습니다. 송편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우리가 상상했던 공룡, 오리, 로봇 모양의 송편에는 전혀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찹쌀가루는 역시 아니었어...' 이런 상황이었지만, 아이는 다음날 어린이집에 가야 해서 보이는 '월요병'을 까맣게 잊고 즐거워합니다.

"우와~송편이다!"

다 쪄진 송편이 담긴 냄비 뚜껑을 열자 아이는 감탄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만든 송편을 먼저 골라 먹으며 "맛있다"를 연발합니다. 드디어 당당하게 송편 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일까요? 나 역시 기대감에 맞장구를 치며 내가 만든 송편을 한 입 먹어보았는데, '겉푸속축'(겉은 푸석하고 속은 축축한)한 식감이었습니다. 찹쌀가루의 거칠한 질감이 그대로 씹혀 차마 맛있다고 하기엔 무리가 많은 결과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연에서 직접 재료를 구해오고, 반죽과 소를 만들어보는 과정은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아이에도 그랬을 거라며 마음속으로 합리화를 해봤습니다. 다음번엔 더 잘하게 되겠지요. 그땐 진짜 멥쌀가루로요!

아이와 함께 난생처음 빚어본 송편. 만두 아니고 송편. 다음엔 꼭 멥쌀가루로!!ⓒ사진 = 오창열

송편을 구실로 깔깔 웃으며 놀다 보니 밤이 깊었습니다. 창문으로 풀벌레 소리와 선선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어두운 방, 내 옆에 나란히 누운 아이가 묻습니다.

아빠, 내일도 주말이야?
내일은 주말이 아니고 월요일이야. 아빠는 회사 가고 너는 어린이집 가는 날.
안 가면 안 돼?
네 마음은 알지만, 다른 수가 없네. 각자 잘 다녀와서 저녁에 재미있게 놀자.

제가 한 '다른 수가 없다'는 말에는 사실 무력감이나 체념이 묻어나기 쉽습니다. 이 같은 말로 현실에 한계가 있음을 알려주기엔, 7살은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늘 그랬듯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에 더 열심히 놀자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렇게 오늘도 역시 잘 놀았습니다. 선택지가 고정되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고,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가 점차 성장할 것이라 믿습니다. 어쩌면 이미 아이는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을지 모릅니다. 잠들기 전 이토록 근사한 말 한마디를 남긴 걸 보면요.

아빠, 우리 내일 또 송편 만들어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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