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암에 걸렸다고 솔직하게 말하자

부모와 아이들ⓒpixabay

편집자주: 우리나라 일년 신규 암환자는 약 25만명, 암 유병자는 200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30~40대의 암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어 어린 아이들이 있는 부모가 암에 걸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암에 걸렸을 때 아이들한테는 뭐라고 해야 할까? 아이들을 위해서 솔직하게 얘기하는 것을 권하는 애틀랜틱 기사를 소개한다.
원문: Tell Children the Truth

암 판정을 받았다. 심각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나는 비틀거리며 병원을 나와 익숙한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치과는 바로 옆에 있었고, 치과를 다녀올 때면 값싼 장난감을 사주던 편의점도 있었다. 불과 한 시간 반 전에 그 길을 걸었을 때는 내 세상이 온전하고 안전했다. 어린 쌍둥이 아들 둘과 착한 남편이 있었고 작가로서의 삶이 이제 막 펼쳐지기 시작했었다. 내 인생! 누가 알았겠는가. 한 번도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본 적이 없었다.

차에 탄 나는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둘 다 아이들, 조금 있으면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는 패트릭과 코너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 생각은 이 와중에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아픈 게 아니라 내가 아프다는 점. 최소한 애들은 안전했다. 두 번째는 두 아들이 다른 종류의 위험에 처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잃을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진 것이다.

나는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었지만 어머니가 그 슬픔을 한 번도 드러내지 못했던 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자라실 때에는 아무도 아이들의 트라우마 극복에 힘쓰지 못했다. 어머니 때에는 아이들이 그냥 버텨야 했다.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버텼다. 하지만 어머니 속에는 아물지 못한 상처가 있었고, 언니와 나는 그것을 수많은 데서 느꼈다. 동화책의 주인공 코끼리가 엄마의 죽음을 묘사한 장은 깔끔하게 찢어져 없었고 우리에게 아예 금지된 책도 많았다. 비밀들은 모두 지켜졌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에게 슬픈 이야기를 하는 것에 대해 배운 것은 이랬다. 모든 것을 즐거운 이야기로 포장해라, 그게 아무리 신빙성이 없다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들을 보호해라, 거짓말을 해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것을 통제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정확한 사실들은 몰라도 집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의 조각을 맞춰서 의미를 짜맞춰간다.

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온 첫 날부터 친구와 친지들이 아이들에게 선물을 가져오고, 문을 닫고 수군댔다. 그때부터 두 아들은 뭔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끔찍한 일주일이 지났고, 그 다음 주, 또 그 다음 주도 지나갔다. 그동안 남편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얘기해 줘야 한다고 점점 강하게 주장했다.

남편은 나름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었다. 부모님이 나쁜 일은 모두 비밀에 부쳤다. 남편은 그 후 무슨 일이 있어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우리 아이들이 사실을 알면 그들의 어린 시절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상태를 설명할 표현들을 만들어냈다. 수술하러 간 이유는 의사가 ‘볼록 튀어나온 혹’을 찾아냈기 때문에 그것을 꺼내기 위함이었고, 내 머리가 빠지는 이유는 내가 ‘우스꽝스러운’ 약을 먹어서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항암치료가 시작된 후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는 반드시 스카프나 가발을 썼다. 하지만 어느 날 출근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며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잠옷을 입을 패트릭이 들어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뜯어보았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빠, 저 사람은 누구야?”

아이들이 잘 자고 있는지 체크를 할 때 불안해서인지 둘이 한 침대에서 자는 모습을 자주 봤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밤에 실수를 하고는 추위에 떨면서 울며 안방으로 오기 시작했다. 나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우리의 정상적이고 행복한 가정이 눈 앞에서 무너지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잃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아주 평범한 일이 상황을 바꿨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준 것이다. UCLA 암센터의 소장님을 만나러 갔는데 그녀가 자리를 비워 돌아가려 할 때, 근무 중이던 복지사가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지 마세요. 와서 좀 앉으세요.”

(아직까지도 나를 부끄럽게 하는) 항암치료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진짜 앉고 싶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센터에서는 부끄럽지 않았다. 그래서 앉았더니 그녀가 내게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이들 얘기를 했고 아이들이 내 상태에 대해서 뭘 알고 있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볼록 튀어나온 혹과 우스꽝스러운 약 이야기를 해줬다.

그녀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넘어져 혹이 생기면 자기네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생각할 것이고, 약을 먹어야 할 때면 머리가 빠질까봐 무서워할 것이라면서 말이다. 맞는 얘기였다.

복지사는 그러지 말고 내가 암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고, 그게 아주 희귀한 병이고 아이들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하라고 그랬다. 그리고 내가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얘기도 해 주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았다. 5살짜리들에게 항암치료 얘기를 하라니. 그러나 그녀는 동화책이 가득 꽂힌 책장에서 책 한권을 꺼내 내게 줬다.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나는 집에 돌아와 아이들을 양 옆에 앉혀 놓고 그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첫 페이지부터 아이들이 그 책을 정말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은 꼼짝도 않고 숨죽이며 책을 뚫어져라 봤다. 책에 있는 엄마는 항암치료 중이었고 나처럼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책은 암과 항암치료, 심지어는 방사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고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자마자 패트릭이 책을 집어 들고 옆집으로 책을 보여주려고 달려갔다. 그리고 길 건너 이웃들에게도 달려가 책을 보여줬다. 나는 코너를 데리고 패트릭을 따라가 웃으면서 이웃들에게 암에 대해 설명해주는 동화책을 아이들이 처음 봤다고 설명했다. 이웃에 사는 어른들은 모두 내 상황에 대해 알고 있었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며 책을 구경했다.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싶어 했다. 나는 패트릭과 코너가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얼마나 절실하게 알아야 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아이들은 무슨 일인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았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 이후 밤마다 우리는 그 책을 읽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이상 평범한 삶에서 밀려난 두 아이가 아니었다. 자기네와 같은 상황에 있고 같은 경험을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관련 동화책이 나올 정도로 흔한 일이었다. 책에 나온 엄마도 나와 똑같이 자기 아이들을 사랑했고, 나와 똑같이 머리카락이 없었다.

아이들이 다시는 밤에 실수하지 않았다.

항암치료 받는 여성ⓒpixabay

아이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나도 물론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나의 애들이 그 말을 증명해야 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어려움으로부터 보호할 수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를 바가 없다. 아이들의 삶도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과 자기와 부모가 원하지 않는 경험들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견딜 수 있는 힘이 내재돼 있고, 아이들의 견디는 힘은 어른의 힘만큼 강력하다.

집에 위기가 있을 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많지 않다. 아이들은 일어나는 일에 대한 간단하고 정확한 설명과 위기가 끝날 때까지 누가 자기를 돌 볼 것인지만 알면 된다. 당신의 가슴이 찢어져도 아이들의 가슴도 찢어지는 건 아니다.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 이웃에 사는 어린 남자애가 있었다. 외동이었는데 아버지를 잃은 아이였다. 그 아버지가 죽은 지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가 그 집이 시끌시끌한 것을 봤다. 몇 시간 떨어져 사는 삼촌이 놀러 와서 집 마당에 거대한 거미를 놓고 거미줄을 치며 요란하게 할로윈 장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자기 집이 단순히 애도하는 곳은 아니었다. 재미있고 멋진 일도 일어나는 곳이었다. 몇 주 후 그 삼촌이 자그마한 축구 골대를 들고 놀러왔고, 일요일 아침마다 그 삼촌과 아이가 공을 찼다.

그 조그마한 앞마당에서 그 두 사람이 서로에게 힐링이 되고 있었다. 형을 잃은 남자와 아빠를 잃은 아이가 말이다. 나는 두 사람이 공차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울컥했다. 한 사람이 죽었다는 슬픔 때문이기도 했고, 조카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삼촌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들들이 자라기 전에 내가 죽었다면 그게 우리 집의 풍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건 매우 슬픈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곧 새로운 삶, 엄마가 없는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내가 엄마로서 할 일은 아이들이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내가 없어도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고 안심시켜주는 것이었다.

그것에 대한 동화책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다행히 우리가 그것을 읽을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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