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환풍기에 폐암까지, 각종 암으로 일터 떠나는 학교 급식노동자들

학교 급식노동자들 “환기시설 전면 교체하고 포괄적 작업환경측정 실시하라”

경기도교육청이 관내 학교 급식 시설 점검ㆍ공기질 측정하는 모습. 자료사진ⓒ사진 = 경기도교육청

# 사례① - 안양 초등학교 단체급식 조리원 A 씨

안양의 한 초등학교에서 단체급식 조리원으로 일하던 A(62) 씨는 지난 2016년 여름방학을 앞두고 다리가 아파 잘 걷질 못했다. 정형외과 여러 곳을 가 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곧 걷는 게 불가능해졌고 학교 앞 병원에 입원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검사를 했는데, 이상 증세가 발견돼 큰 병원으로 옮겨졌다. ‘폐암 4기’였다. 수술은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다.

# 사례② - 광주 초등학교 단체급식 조리원 B 씨

학교에서 26년 넘게 조리원으로 일한 B(60대) 씨는 항상 연기가 자욱한 급식실에서 일했다. 거의 매일 튀김, 부침개, 구이 요리를 만들었다. 이상하게 요리를 할 때마다 가슴이 쪼이는 고통을 느꼈다. 나중에는 목이 쉬기 시작하고, 가슴과 배에서도 통증이 느껴졌다. 이에 그는 지난 2016년 병원을 찾았다. B 씨는 이때서야 ‘폐암 3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그 외 사례

시흥의 학교 급식실에서 13년 동안 일한 강 모(62) 씨는 지난 2014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부산의 학교 급식실에서 15년 일한 박 모(53) 씨, 같은 지역 학교 급식실에서 20년 일한 김 모(59) 씨도 2017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성남의 학교 급식실에서 15년 일 한 안 모(64) 씨도 2019년 폐암 진단을 받았다. 울산의 학교 급식실에서 16년 일한 김 모(55) 씨는 2020년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동해 학교 급식실에서 5년간 일한 문 모(43) 씨는 올해 폐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지난 23일 숨졌다. 이 외에도 수많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최근 폐암과 혈액암, 대장암, 위암 등 각종 암 진단을 받고 있다.

28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교육장에서 급식실 직업성암 집단산재신청 및 환기시설 전면교체 촉구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발언에 앞서 사망한 급식 노동자를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동해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원으로 일해온 문 모 씨는 집단산재신청 준비 중 지난 23일 폐암으로 숨졌다. 2021.9.28.ⓒ뉴스1

석면과 동급인 발암물질 ‘조리흄’
튀김·볶은·구이 시 분진 다량 발생
환풍시설 엉망...급식노동자, 장시간 노출
잇따라 폐암·혈액암 등 각종 암 진단
올 3월부터 최근까지 5명 산재인정

최근 학교 급식노동자들의 직업성암 문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원인 모를 각종 질병에 시달리던 학교 급식실 조리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기 시작하면서다. 올해 3월부터 최근까지 폐암 진단을 받은 5명의 학교 급식노동자가 산재를 인정받았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 ‘직업성·환경성 암환자찾기119’(직업성암119),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 등은 28일 민주노총 15층 교육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실태를 알렸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보건학 박사)은 “2012~2013년 경기도 지역 학교 급식실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을 조사하러 다닐 때가 생각난다”라며, 그때 학교 급식노동자들 중 암 환자들이 많다는 것을 인지했으면서 큰 관심을 두지 못하고 지나친 게 큰 후회가 된다고 한탄했다. 그는 “이 정도로 급식실 노동자들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학교 급식에서 아이들의 입맛에 맞는 요리를 하다보면 튀김과 볶음, 구이 등의 조리법이 많이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초미세분진으로 다핵방향족탄화수소(PAHs)·아크릴아마이드·폼알데하이드 등과 같은 물질이 다량으로 발생하는데, 이 물질을 ‘조리흄’(cooking fume)이라고 부른다. 조리흄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석면과 동급으로 폐암을 일으키는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지 오래다. 이 때문에 급식실 환풍이 매우 중요하지만, 환풍이 잘 안 되는 지하에 급식실이 있거나, 환풍시설이 고장 난 상태로 수년째 방치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급식노동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장시간 일하면서 조리흄을 마셔온 셈이다.

이날 회견에서 제시된 광주 초등학교 조리원 B 씨(폐암3기) 사례가 그랬다. 회견 자료에서 B 씨는 “최근까지도 제가 일했던 학교 급식실의 환풍기가 고장이 난 지도 모르고 일했다는 데에 화가 난다”라며 “대한민국 비정규직에게 건강권은 사치스러운 이야기일 뿐, 남의 나라 이야기다”라고 한탄했다.

2018년 7월 폐암 진단을 받은 성남의 한 고등학교 조리원 C 씨가 일하는 급식실도 지하에 있었으며, 환기가 잘 안 돼 항상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해당 급식실에서 일하는 조리원들은 대부분 중이염을 앓고 있었고, C 씨는 주로 튀김을 담당했다.

2019년 5월 폐암 진단을 받은 용인의 한 중학교 조리원 D 씨는 부침기 가스 구멍이 막혀 불완전 연소가 일어나는 조리실에서 일했는데, 학교에 여러 번 수리 요청을 해도 7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다. 게다가 식당 천장은 석면이었고, 건물 위층이 체육관이어서 아이들의 체육활동으로 항상 석면가루가 날렸으며, 환기시설이 10년 가까이 고장 난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결국 D 씨는 정년을 앞두고 폐암 진단을 받았다.

학교 급식실 자료사진ⓒ김철수 기자

문제는 WHO가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있는 조리흄이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상 작업환경 측정 대상 물질에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조리흄에 관한 작업환경측정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측정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으니, 학교나 교육청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이다. 또 산안법상 조리흄 노출자는 특수건강진단 대상자도 아니어서, 급식노동자들에 대한 특수건강진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날 회견 참가자들은 ▲ 조리흄을 포함한 포괄적 작업환경측정 ▲ 급식노동자에 특화된 특수건강진단 ▲ 학교 급식실 환기시설 전면 교체 등을 강하게 촉구했다.

이 소장은 “보통 학교 급식실에 설치된 환기시설은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는 흉물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통 조리실에 설치된 환기시설은 밑에서 발생한 연기가 위로 빠지게 돼 있는데, 이 환기시설이 조리원 머리 바로 위에 설치돼 있어서 조리 시 발생한 연기가 환기시설로 빠지기 전에 조리원의 호흡기로 들어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리 시 발생한 연기가 조리원 머리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향할 수 있도록 측방형으로 환기시설이 설치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급식노동자 대부분 경력이 10년, 길게는 2~30년이 된다. 직업성암이 발생할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선 것”이라며 “일단 직업성암 환자들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급식노동자에 특화된 특수건강진단으로 찾아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리 과정에서 2차 부산물로 발생하고 있는 초미세분진이 급식노동자들의 폐 깊숙이 들어가서 폐포(肺胞)를 망가뜨리고 있다. 하지만 기존 작업환경측정에서는 이를 신경조차 안 쓴다”라며, 특화된 작업환경측정이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시민단체 직업성암119는 올해 초부터 폐암에 걸린 급식노동자들을 모아 집단산재신청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직업성암119에 접수된 학교 급식실 암 환자는 49명이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이승훈 기자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