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나면 온통 대통령 선거 이야기다. 이재명, 이낙연, 윤석열, 홍준표 등 여야 유력 대통령 후보들의 이야기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주요 뉴스로 다루어지고 있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6개월 여 남았으니 당연하다. 국민도 여야의 당내 경선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누가 위기의 시대에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끌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많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라면 국가 운영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정치, 경제, 노동, 통일, 외교, 과학,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한 정치 철학과 소신을 밝히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상식과 다르다. 어른 답지 않은 가벼운 말싸움이 난무하고, 국정농단 책임자에 대한 사면 입장을 묻는 것으로 촛불 민주주의를 모욕하는 모습을 보인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일부 보수 후보들이 노동자에 대한 폄훼와 수단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으며 막장 정치를 펼친다는 점이다. 국민의힘 소속 한 유력 후보의 ‘주120시간 노동’, ‘어려운 사람은 부정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 ‘손발 노동을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발언은 노동자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막말이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고 위험한 식품이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럴 경우 노동자의 상당수는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
한 술 더 뜨는 사람도 있다. 같은 당의 경쟁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긴급재정경제명령권을 발동해서 귀족노조의 패악을 막고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노동조합을 적으로 보고 한 판 전투를 해서라도 버릇을 단단히 고쳐놓겠다는 태도다.

민주당은 당내 경선을 이어 가고 있지만 노동과 안전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노동자는 대통령이 받들어야 할 국민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니 일하는 사람들을 수단화하거나 일하는 사람의 안전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을 적으로 대하는 정치인, 또 이들의 몰상식을 애써 못 본 척하며 고개를 돌리는 정치인은 다른 직업은 몰라도 대통령이 될 자격은 없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위태롭게 일하는 국민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2020년 산재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는 882명이었고 산재 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는 이보다 많은 1,180명이었다. 일터에서 다치거나 질병을 얻은 전체 노동자 수는 10만 7,379명이었다.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산재 신청 권한조차 없는 노동자는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안전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할 일이 많다.
조금 더 현실을 들여다보자. 최근 노동 시간이 단축되었으나 야간노동과 특수고용 및 플랫폼 노동자의 장시간 과로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부족해 과로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있어도, 괴롭힘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으나 현장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갈수록 의문이다. 2020년 산재 사고 사망의 25.4%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는데 현행법은 5인 미만 사업장을 법 적용에서 제외하여 원초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발표된 시행령은 안전 관리 점검을 외주업체에 맡길 수 있도록 허용해 사고가 나더라도 대기업 경영진은 사고 책임에서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직업성 질병에 대해서도 범위를 협소하게 정해 늘어나고 있는 산재 질병에 대한 대책으로는 부족하다.
이렇게 안전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지지부진한 사이 산재 노동자에 대한 정치권의 왜곡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최근 국민의힘을 탈당한 한 유력 정치인의 아들은 특혜 시비가 불거진 회사로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50억을 퇴직금으로 받았다. 이에 대해 당사자는 산재 위로금으로 회사가 거액을 주었다고 주장하고, 회사도 당사자가 중재해를 입어 거액을 지급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마치 산재를 당하면 수십 억 원을 주거나 혹은 받는 것처럼 말하는데 2019년 1인당 유족보상일시금은 1억798만원이었다. 사람이 죽어도 평균 1억 원 남짓의 유족일시보상금을 받는 게 현실인데, 50억 원을 받아 놓고서는 ‘산재노동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어이없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일하다 다친 산재 노동자들을 도둑놈으로 오해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다시 대통령 선거로 돌아가자. 안전한 나라의 대통령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노동자 한 사람의 목숨을 지키고 그 가족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선, 거대 자본이란 기득권과 맞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이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건물을 짓다 보면 한두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기계를 돌리다 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기존의 인식과 관행을 허물 수 없다. 한 노동자의 목숨도, 그 가족의 행복도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려면 철학과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다.
계속 이어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유치한 말싸움 말고, 노동 문제에 대한 진지한 대안과 노동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제대로 된 방안들이 토론되길 기대해 본다.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