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귀천의 일과 법] 어디에나 있는 노동, ‘대선’ 어디에도 없는 노동

1996년 제레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이라는 책을 처음 접하였을 때 당시 노동법 석사과정을 막 시작했던 필자는 책 제목만 보고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 노동하는 사람, 노동법의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리프킨은 “실업자들은 죽어가는 환자들과 흡사한 병리적 증세를 보인다.”라고 했던 심리학자 코틀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노동자들”이라는 표현을 썼다(제레미 리프킨, ‘노동의 종말’, 이영호 옮김, 민음사, 1996, 264쪽). 리프킨의 말대로 서서히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도처에 있지만 어쨌든 수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수많은 종류의 노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이건 타인의 노동이건 간에 사람이 과연 노동 없이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부지불식간에 수많은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물론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빠른 속도로 인간의 노동이 줄어들거나 기계에 의해 대체되고는 있지만 사람을 필요로 하는 노동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은 어디에나 있고, 앞으로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 인구의 절대 다수는 결국 어떤 형태로든 노동을 통해 삶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이 계속 존재하면 존재하는 대로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노동정책은 정부정책 중 매우 중요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아직 대선후보들이 확정되지 않았고 본격적인 구체적 공약들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대선주자들의 노동공약이나 관련 발언들을 보다보면 이번 대선만큼 노동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과거에 또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25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순회 경선 광주·전남 합동연설회에서 후보들이 투표 결과 발표를 기다리며 손 인사를 하고 있다. 2021.09.25.ⓒ뉴시스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23일 오후 서울 강서구 ASSA빌딩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후보자 선거 2차 방송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상수, 윤석열, 최재형, 하태경, 홍준표, 황교안, 원희룡, 유승민 후보. 2021.09.23.ⓒ뉴시스 / 국회사진기자단

다만, 언론을 통해 보도된 몇몇 야당 대선주자들의 노동공약 속에는 ‘반노동’ 내지 ‘반노조’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귀족노조 해체, 자유로운 해고의 보장, 장시간 일할 자유의 보장 같은 말들이 난무하는 것을 듣다보면 노동법이 없던 19세기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인가 싶다. 특히 높은 수준의 근로조건을 보장받는 이른바 귀족노조를 타도해서 청년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외친다. 이들은 최근 몇 년간 급격히 대두되고 있는 세대간 갈등에 노조에 대한 혐오감을 버무려 이른바 MZ세대의 실업난,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과 불공정의 핵심적인 원인을 제공한 주범이 귀족노조라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마치 재벌만 해체하면 우리나라 경제와 노동의 중요한 문제들이 획기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대척점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야당 대선주자들의 ‘반노동’ ‘반노조’ 말곤
노동이 사라져버린 대선
‘포스트 코로나’에서 노동의제 더욱 중요해져

우리 사회 전반에서 갈등과 분열, 양극화가 날로 심해지고 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 노동자간의 격차로 인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통합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정의 책임자가 될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통합을 지향하는 해법을 진지하게 공약에 담아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정책 추진은 우리 사회의 지속과 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하여 법과 정책의 측면에서 보면 노동조합과 노동법제를 통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노동계층을 어떻게 노동법과 노동정책의 범위 안으로 들여올 것인가에 관한 고민과 대안이 제시되어야 한다.

9월 27일 인천의 한 아파트 유리창을 청소하던 20대 노동자가 작업용 밧줄이 끊어져 추락사했다. 이 노동자는 이날 출근 첫날이었다. 작업 당시 보조 밧줄 없이 작업용 밧줄 하나에만 의지하고 있다 참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이후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에서 장례식장에 추모 현수막을 걸고 국화와 피켓을 놓았다.ⓒ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한편, 이번 대선은 무엇보다도 포스트 코로나 대선이라는 특징이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산업구조의 변화와 디지털화가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던 가운데 코로나 19의 대유행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더해진 상황에서 노동을 둘러싼 환경 역시 급격하고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러한 변혁기에 어떠한 노동정책이 필요한지 치열한 고민과 대안이 필요하다. 클린턴 행정부의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는 2020년 영국 가디언지에 게재한 칼럼에서 코로나19로 인해 미국 사회에는 4개의 계급이 출현했고, 계급간 불평등 완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피력한바 있다. 이에 따르면 첫 번째 계급은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 등 원격 근무가 가능한 노동자(The Remotes)로 위기를 잘 견딜 수 있는 계급이고, 두 번째 계급은 간호사, 돌봄노동자, 위생 관련 노동자, 음식 배달 노동자 등 필수노동을 하는 노동자(The Essentials)로 일자리를 잃지는 않지만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The Unpaid)로 식당, 소매점, 제조업체 등에서 근무하다가 코로나 이후 무급휴직 중이거나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계급은 잊혀진 사람들(The Forgotten)로 이주노동자, 노숙인, 수감자 등이다. 이들은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공간에 머무르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가장 높다. 이러한 분류는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각 계급별 특징에 따라 이미 발생되었거나 향후 발생될 노동 이슈들은 포스트 코로나 대통령이 바로 직면해야 하는 노동‧사회보장정책의 과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소위 말해서 유력 대선주자들의 주장과 논의 어디에도 아직까지 노동은 보이지 않고 있다. 부디 노동 없는 대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노동은 모두의 삶과 바로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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