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추억처럼 밀려오는 손성제의 노래

손성제의 새 음반 [변해버린 너에게]

손성제의 새 음반 '변해버린 너에게'ⓒ길

다행이다. 여전히 이렇게 좋은 음악이 나와서 다행이고, 이렇게 좋은 노래를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재즈 색소포니스트이자 프로듀서이며 싱어송라이터인 손성제의 두 번째 음반 [변해버린 너에게]는 손성제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다시 곧추세운다. 그동안 그가 참여했던 The NEQ의 음반들과 [비의 비가] 음반, 그리고 정미조의 복귀작 등에서 손성제는 재즈, 크로스오버, 팝 뿐만 아니라 옛 가요의 감각까지 부드럽게 소환하고 소화했다. 꽤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음악들을 연결해낸 손성제에게는 특정 장르에 매이지 않는 감각이 반짝거렸다.

[비의 비가]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팝 음반 [변해버린 너에게]에서도 손성제는 녹슬지 않았다. 6곡의 노래를 담은 이번 음반에서 손성제의 노래는 트렌디한 당대의 팝과는 다르게 펼쳐진다. 모든 가사와 곡을 쓰고 프로듀싱과 노래까지 맡은 손성제의 목소리는 매끈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베이스 기타, 신시사이저, 드럼, 일렉트릭 피아노라는 기본적인 악기만 사용한 손성제의 노래는 가만가만 노래하고 연주한다. 더 멋들어지게 부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좀처럼 가창력을 뽐내지 않는 창법과 담백한 연주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아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그대 왜’부터 시작해 ‘세월은 흐르고’로 이어지는 여섯 곡은 이별을 예감하고 헤어지고 그리워하면서 세월을 견디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마감한다. “그대 왜 날 울게 하나요/내겐 오직 그대 뿐인데/내게 던진 말 한마디에도/나의 마음은 무너져 버려요”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그대 왜’에서부터 손성제는 좋은 팝, 완성도 높은 음악에 필요한 요소들을 부족함 없이 채웠다. 멜로디는 매끈하고, 흐름은 자연스러우며, 노랫말은 내 이야기 같다.

특히 손성제의 노래는 짧은 노랫말과 인상적인 멜로디를 결합시켜 순식간에 침투하는 옛 대중가요의 매력을 되살린, 요즘에는 드문 노래다. ‘그대 왜’ 뿐만 아니라 ‘다 잊혀질 거야’의 앞부분 편곡이나 간주, ‘틀린 대답’의 인트로 등 여러 악절에서 80년대 노래의 호흡이 느껴지는데, ‘뽕끼’를 넣지 않는 연주는 소박하면서도 세련된 오늘의 음악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옛 가요의 현대적 계승이라고 해도 좋을 사운드 메이킹은 그때 노래의 추억을 가진 이들의 성인가요로 부족함이 없다. 세월이 느껴지는 것은 연주에서만이 아니다.

가수 손성제ⓒ길

서운하고 아쉽고 그리워하면서도 감정에 메여 매달리지 않는 노랫말의 태도 역시 성인가요다운 완성도에 함께 마침표를 찍는다. “가슴이 아파서 한 번 두 번 목놓아 울고 나면/나와 함께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하나둘씩 멀리 사라져 가고/가슴 깊이 아물지 못한 상처도 눈물과 함께 다 잊혀질 거야”(‘다 잊혀질거야’)라고, “우리 서로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걸까”(‘가슴앓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 미안해 하지 말자/누구 탓도 아닌데/말하진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잖아”(‘변해버린 너에게’)라고 말하는 것 역시 헤어져야 할 때는 헤어져야 하고, 그럼에도 함께 한 시간은 소중했고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배려이고 이별의 예의라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알아/언젠가 모두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혼자만의 꿈이었다고”(‘변해버린 너에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하고 이별하며 나이 들었는지 모른다.

쉽게 들리지만 만만치 않은 여운을 남기는 노래들은 통속적이면서 강력하고, 보편적이면서도 기품이 있다. 먼저 인용한 ‘그대 왜’처럼 서운해 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는 세상에 수십만 곡쯤 될 것이다. 40대 이상의 청자들은 이런 노래를 수도 없이 들어왔을 것이다. 어쩌면 그 노래들과 대동소이한 노래라고 할 수 있겠지만, 손성제의 노래는 무수하게 대동소이한 노래들 가운데 거뜬히 기억되고 살아남을 것이다. 노래의 중심이 튼실하기 때문이고, 그밖에는 다 덜어냈기 때문이다.

담백한 손성제의 보컬처럼 수록곡들의 편곡 역시 단출하다. 멋을 부리지 않는 연주이지만 촉촉하게 젖은 연주의 톤은 그리움만큼 일렁거린다. 우리는 이별하며 더 너그러워졌고, 헤어지며 비로소 그리운 사람이 되었다. “그대 내 곁을 떠났다는 것도 가끔씩 잊고 살다가/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면 또 난 한참을 우네”(‘세월은 흐르고’)라는 노랫말을 따라 오는 수많은 기억들. 가을 탓이다. 노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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