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과 학살의 현장’ 아프간 카불의 미 CIA 비밀기지 공개

9.11 이후 미 CIA가 테러용의자들을 불법으로 구금한 수용시설이 자리했던 캠프 엑스레이.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캠프 엑스레이는 폐쇄됐지만 관타나모의 다른 미군 기지에는 여전히 수십여명의 테러용의자가 수감되었다.ⓒAP/뉴시스

편집자주:미국이 지난 8월 3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 철수하면서 용산기지보다 큰 CIA의 카불 기지도 버려졌다. 고문과 포로들의 사망, 여러 인권 침해로 악명 높았던 CIA 기지가 드디어 공개됐다. 이에 대한 가디언과 인터셉트의 내용을 소개한다.
원문:Inside the CIA’s secret Kabul base, burned out and abandoned in haste
The CIA’S Afghan Proxies, Accused of War Crimes, Will Get a Fresh Start in the U.S.

미국 CIA가 아프가니스탄의 그림자전쟁에 썼던 자동차, 미니버스, 장갑차들이 줄 맞춰 세워져 미군 철수 전에 불살라졌다. 잿빛 잔해 밑에는 녹아내린 금속들이 고였다가 불길이 사그러들면서 딱딱하게 굳어 반짝이고 있다.

CIA가 아프간 전쟁 최악의 인권 유린과 연루된 준군사조직들을 훈련시켰던 아프간 마을 세트장도 무너져버렸다. 아프간 국민이 그토록 증오했던 야밤의 주택 급습을 훈련하기 위해 한때 사용됐던 이곳에는 흙더미와 쓰러진 기둥들이 널브러져 있고, 높은 콘크리트 장벽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다.

어마어마했던 탄약고도 폭파됐다. 총과 수류탄, 박격포와 폭탄, 대포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 수 있는 온갖 무기들이 세 줄로 늘어선 40컨테이너에 실려 산산조각 났다. 미군 철수 중에 이뤄진 카불 공항 폭탄 테러 직후에 폭파가 이뤄졌기 때문에 그 엄청난 폭파음에 카불은 또 한 번 공포에 떨었다.

20년 동안 극비에 붙여졌던 CIA기지 얘기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심장부에 있는 어둡고 비밀스러운 장소.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벌인 많은 만행들 중 최악의 일들이 일어났던 곳. 카불 공항 북동쪽으로 78만평에 이르렀던 언덕위의 이 CIA 기지는 아프간 전쟁 초기부터 CIA 코드명 코발트, 일명 ‘소금 구덩이’로 알려진 고문과 살인의 장소로 악명을 떨쳤다.

이 감옥은 불이 없었고, 낮에도 커튼과 페인트가 칠해진 창문 때문에 항상 어두웠다. 포로들은 가끔 보이는 교도관들의 모자에 달린 라이트 외에는 불빛을 전혀 볼 수 없던 이곳을 ‘어두운 감옥’이라 불렀다. 끊임없이 시끄러운 음악을 방송했고, 죄수들에게 족쇄를 채웠다. 난방은 되지 않았다. 2002년 영하의 날씨에 반나체로 밤새 벽에 묶여 굴 라만이 결국 동사했던 곳도 여기였다. 그 후에도 CIA는 고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계속 고문을 자행했다.

극비에 붙여져 위성사진이나 포로들의 증언으로만 그 존재가 확인됐던 기지가 드디어 공개됐다. 탈레반 특수부대가 언론인들에게 잠시 열어준 것이다. 탈레반의 엘리트 313부대의 지휘관으로 안내를 맡았던 물라 핫사나인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건설에 사용될 수 있었던 이 수많은 것들을 미국이 어떻게 낭비했는지 보여주려 한다”.

지난 2019년 10월 1일, 카불의 동쪽에 있는 자라라바드에서 가족 4명을 잃은 압둘 자바르가 미국의 공습으로 죽은 마을 사람들의 명단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공습과 미국 CIA가 훈련시킨 아프간 부대들의 야밤 급습으로 사망하는 민간인이 점점 늘자 아프간 국민의 분노가 점점 커져 미국인들도 아프간 법정에 서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왔었다.ⓒ사진=뉴시스/AP

‘소금 구덩이’ 수용소 바로 옆에 있는 막사를 사용했던 준군사 조직들은 아프간 국민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체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임의로 아이들과 민간인들을 죽이는 등 각종 만행에 연루됐다. 그들이 막사를 얼마나 급하게 떠났는지 먹다 남은 음식도 있었고, 바닥에는 온갖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다급해도 많이 다급했던 모양이다. 이름이나 계급이 있는 것은 거의 모두 가져가거나 알아보지 못하게 파괴한 것처럼 보였지만, 악명 높은 제로 부대의 01 패치들이 있었고 손으로 수주 간의 훈련내용을 기록한 노트도 있었다.

바로 옆의 ‘소금 구덩이’는 이미 몇 달 전에 허물어진 것 같았다. 뉴욕타임스의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올해 봄부터 이 CIA 기지의 건물들 일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탈레반 관계자들은 그들이 ‘소금 구덩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도 잘 모른다고 했다. 동사했던 라만의 가족들은 아직도 그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소금 구덩이’에서는 영하의 날씨에 포로들의 옷을 벗겨 물을 끼얹어 방치하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고문이 행해졌다. 미국은 항문을 통해 포로들에게 강제로 ‘직장 급식’을 했고, 천장에 매단 봉에 포로들의 족쇄를 채우기도 했다. 미국은 포로들의 ‘화장실 특권’을 빼앗기 일쑤였고, 그들을 발가벗기거나 그들에게 어른용 기저귀만 차게 했다.

‘소금 구덩이’ 부지에는 건설 장비도 널브러져 있었고, 반쯤 부어진 콘크리트 슬래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에는 첨단 기술을 갖춘 문과 장비로 강화됐던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폭파된 상태로 있었다. 그 내부는 완전히 파괴돼 밖의 차들과 마찬가지로 재로 변했다.

민감한 장비를 파괴하는 건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기지 곳곳에는 의료키트부터 리더십 매뉴얼, 큰 장비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이 태워졌던 소각 구덩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탈레반 관련자들은 그들이 아직 점검하지 못한 지점에 언론인들이 갈까봐 불안해 했다. 기지 여기저기에서 부비트랩이 여럿 발견됐기 때문이었다.

미군이 철수할 때 헬리콥터들이 수일 동안 이 기지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을 공항으로 실어 날랐다. 그곳에는 01 부대 대원들이 공항을 수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미국이 막판에 그들을 꼭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 약속만큼은 미국이 제대로 지켰다. 01 부대 대원들은 공항에서 열심히 아프간 국민들을 모아서 수색했고, 미국은 대략 7,000명의 대원들과 그들의 가족을 비행기에 태워 대부분은 카타르를 거쳐 미국으로 데려갔고, 아랍에미리트로 간 이들은 곧 데려갈 예정이라고 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군기지에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아프간의 인권 활동가들이나 원조 단체 직원들은 그대로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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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연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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