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공연은 지금]3. 불편한 진실을 외면한 결과는 가혹하다, ‘오이디푸스’

‘영국 연극계의 최대 희망’ 로버트 아이크 연출가의 무대

NTOK_Live+_ITA Live 오이디푸스ⓒJan Versweyveld

코로나 팬데믹으로 멀티플렉스 영화관과 OTT 플랫폼 등을 통해 공연실황 영상을 관람하는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걸맞춰 국립극장은 세계 유수의 극장들과 손잡고 NTOK Live+를 기획했다. 이번 기획을 통해서 국내 관객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해외 유명 작품을 국내 극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해외 공연의 '현재'와 '명성'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을 소개해 본다.

1. 영국 NT Live 프로그램, 제임스 매커보이 주연의 '시라노 드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
2. 영국 NT Live 프로그램,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폴리스(Follies)'
3. 네덜란드 ITA Live 프로그램, 로버트 아이크의 '오이디푸스(Oedipus)'

코로나 팬데믹이 장기화 되면서 해외 작품들의 내한 공연 규모 역시 축소되고 있다. 이 가운데 국립극장이 유럽 연극의 최신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네덜란드 인터내셔널 시어터 암스테르담의 'ITA Live'를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ITA Live'는 네덜란드의 인터내셔널 시어터 암스테르담(이하 ITA, Internationaal Theater Amsterdam)이 최근에 론칭한 공연실황 제작·배급 프로그램이다. 이미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한 연출가 이보 반 호프를 포함해 사이먼 스톤, 로버트 아이크 등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연출가들의 작품을 제작해 왔다.

이번에 'ITA Live'를 통해서 한국 관객에게 소개된 작품은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의 '오이디푸스'다.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대표적인 비극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멀게 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는 오이디푸스 신화를 과감하게 변모시켰다. 그는 테바이의 왕 오이디푸스를 21세기 유명 정치인으로 바꿨고, 테바이는 팽팽한 지지율 싸움이 오가는 선거 사무실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야기는 중요한 선거 날 밤에 역대적인 승리를 코앞에 둔 오이디푸스 모습으로 시작된다. 이미 오이디푸스의 승리가 점쳐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는 국민들에게 대대적인 약속을 한다. 나라의 리더였던 라이오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겠다고 말이다.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의 아내 이오카스테의 전 남편이기도 하다.

선거 결과 발표 전, 오이디푸스는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던 라이오스의 죽음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자'가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된다.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의 '오이디푸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궤를 함께한다. 그래서 관객은 정치인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눈을 찌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NTOK_Live+_ITA Live 오이디푸스ⓒJan Versweyveld

그런데도 관객이 긴장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연출가가 만들어 놓은 장치 때문이다. 연출가는 대망의 선거 결과를 알리는 전자시계를 무대 한편에 배치해 두었다. 오이디푸스가 선거에서 승리할 시간이 다가올수록, 오이디푸스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들이 쏟아진다. 오이디푸스의 집권을 지지했던 아내 이오카스테는 "세상은 어차피 거짓말로 돌아간다. 오늘 밤은 제발 어떤 것도 결정하지 말고 넘어가자"고 애원한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오카스테는 진실을 모른 척하고 넘어자고 한다. 하지만 오이디푸스는 "나는 내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야겠다"며 위험한 진실 속으로 한 발 내딛는다.

연출가 로버트 아이크는 오이디푸스를 통해서 켜켜이 누적된 진실을 한 커플 한 커플 견고하게 벗겨낸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한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비극의 농도를 짙어지게 만든다.

또 다른 재미는 막연한 선악의 대결이 아닌, 비극의 기원을 추적하는 과정에 있다. 왜 정치인 오이디푸스에게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것일까. 면면을 파고 보면 알 수 있다.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진실을 외면하려는 각 인물들의 태도로부터 탄생했다. 진실을 숨기고 규정대로 행동한 운전기사, 아픔을 들추기 싫어서 임신·출산·남편과의 관계를 숨긴 이오카스테, 오이디푸스의 출생을 숨긴 어머니 등이 그렇다.

각 인물들이 외면했던 진실들이 선거 당일 밤 뿜어져 나오면서, 진실 하나를 가리킨다.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비참한 진실과 함께, 전자시계가 오이디푸스의 선거 승리를 알리는 시간을 가리킨다.

주인공 오이디푸스를 연기하는 한스 케스팅은 2019년 '로마 비극'에서 안토니우스 역으로 국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배우다.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출신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로버트 아이크는 가디언지가 '영국 연극계의 최대 희망'이라고 평가한 연출가다. 2010년 루퍼트 굴드 컴퍼니에서 '헤드롱(Headlong)'의 협력 연출가로 활동했으며, '로미오와 줄리엣' '1984'도 연출했다. 2013년 알메이다 극장의 협력연출가로 전작 '1984'를 재공연해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다. 2019년부터 알메이다를 떠나 프리랜서 연출가로 활동하고 있다.

ITA Live '오이디푸스'는 지난 8~9일 양일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총 2회 상영됐다.

NTOK_Live+_ITA Live 오이디푸스ⓒJan Versweyv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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