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내나는 삶] 청년들이 겪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

청년 시국선언 원탁회의와 각 대학 학생들이 30일 국회 앞에서 ‘오늘의 시대는 실패했다. 세대가 아닌 시대를 교체하라’ 청년 시국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4.30ⓒ김철수 기자

이미 청년의 나이를 지나온터라 아무래도 청년 노동자들보다는 내 또래의 중·장년 노동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에게 여전히 청년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어려운 과제다. 듣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끔 꼰대처럼 “라떼는 말이야···”가 터져 나오고 만다. 특히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 공정하지 않다고 반대하는 그들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기로 하였다.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강요받는 사람들이다.

오늘날 노동시장은 양질의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늘고 있다. 청년들은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생존 경쟁에 내몰린다. 그러니 능력주의와 경쟁을 공정이라고 주장하는 이면엔 불평등한 노동을 강요받는데서 오는 불안감이 있다.

나는 그들보다 선택할 것이 많은 시대에 살았다. 오늘날 청년들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다. 요즘 청년들은 나보다 더 많이 공부했지만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나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혼에 대한 꿈도, 집 장만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강요받는 사람들이다.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2017 대한민국 청년일자리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채용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양지웅 기자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하거나 플랫폼 노동자로 생활하는 청년들도 많이 있다. 이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청년 노동자 김용균이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하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일이 보도되기 전에는 발전소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그렇게 비인간적일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런 목소리 없는 청년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이 그들의 처지를 공감하는 최고의 행위가 될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와 기성세대가 정치적 관점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청년세대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그들의 불안감에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10월 6일 ‘한국 사회와 공정, 청년문제 해법은’이란 주제로 가톨릭 포럼이 있었다. 아마도 우리 사회가 맺고 있는 청년과의 관계가 천주교회의 경험과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회의 청년을 위한 사목은 사회 경제적 변화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나는 토론자로 참석했는데 내 발언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빌어 요약해 보겠다.

“젊은이들은 일상적인 구조 안에서 자주 그들의 불안, 요구, 문제, 상처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른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듣고, 그들의 불안과 요구를 이해하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화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복음의 기쁨’, 105항)

교회는 청년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현재 교회는 청년들로부터 외면당하고 권위를 잃어가고 있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교회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그들의 삶에서 의미 있다고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떤 젊은이들은 교회를 성가시고 심지어 짜증나는 존재로 여기며 자신들을 그냥 내버려 두라고 공공연하게 말합니다. 이것이 무비판적이고 충동적인 경멸에서 나오는 요구만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 40항)

이 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가 권력을 잘못 사용하여 청년들을 올바로 대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교회는 청년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는 교회가 어떻게 권위를 다시 세울지에 대한 문제이고, 어떻게 청년들이 교회의 권위를 인정하고, 양자가 함께 성장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 작업 중 사고로 숨진 김군의 5주기인 28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내선 순환 9-4 승강장에 김군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메시지가 붙어 있다. 2021.05.28ⓒ김철수 기자

한국 문화는 오랜 시간 권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우리 교회 문화도 매우 권위적이다. 권위주의는 권위에 위계를 두고 위계에서 낮은 위치의 사람들에게 높은 위치의 이들의 권위를 복종하도록 강요한다. 이런 권위주의 문화에서 양자 사이의 관계는 늘 일방적이고 불공평하다. 권위주의는 한 개인에 대한 타인의 선함과 자유를 인정하지 않고 종속시키려 한다.

이제 교회는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 위계적인 문화에서 벗어나야 하며,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관계 안에 ‘상호성’을 깊이 고려해야 한다. 사실 “관계는 서로간의 경계가 존중될 때 이루어진다.” 경계를 무시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은 폭력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의하면 ‘상호성(mutuality)’이란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mutare’인데 이는 ‘변하다’라는 의미로, 상호성은 “선의의 교환, 친밀함” 의미한다. 친밀함, 공감, 연민과 같은 감정들은 인간관계에서 상호관계를 위한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청년과 관계 맺는 방식은 상호성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은 문화적으로 확립된 위계관계를 통해서가 아니라 상호존중을 통해서 성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관계의 상호성은 권위주의를 변화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젊은이들을 동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 영적 깊이,
그리고 우리의 신원과 활동에 의미를 주는
인생의 사명을 함께 나누겠다는
개방성을 요구합니다.”

교회는 청년들이 성장하도록 그들에게 자리를 주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늘 하찮은 존재로서 사소한 일만을 해야 하며 의사결정 구조에서 주변부에 위치했다. 이런 대접을 받게 되면 청년들은 소모품이 되어 자발성과 창조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청년들을 위계적 관계에서 소진시키지 말고, 관계의 상호성을 통해서 성장 발전시키기 위해서 의사결정구조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런 관계의 상호성은 교회와 청년 사이의 관계 뿐만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관계 안에서 위계와 권위주의가 존재하는 한 관계의 상호성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회 총원장 아루투로 소사 신부도 전 세계 예수회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 예수회의 모든 활동에서 청년들이 자신들의 희망찬 미래를 설계하고 성취할 수 있도록 그들을 동반하라고 초대하였다. 그러나 이런 활동은 청년들에게 어떤 시혜를 베푸는 활동이어서는 안 된다.

“젊은이들을 동반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진정성, 영적 깊이, 그리고 우리의 신원과 활동에 의미를 주는 인생의 사명을 함께 나누겠다는 개방성을 요구합니다.”(예수회 총원장 서한:‘예수회의 보편 사도적 우선순위 2019-2029’)

그러므로 청년들을 동반하는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배우고, 자신이 가진 것을 청년들과 나누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사실 청년들을 동반하는 활동은 우리 자신이 개인적, 공동체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회심하는 도전이다. 이 도전에 응답한다면 우리가 변하고 우리 사회도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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