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당신에게

포스트 펑크 밴드 소음발광의 정규 2집 [기쁨, 꽃]

포스트 펑크 밴드 소음발광ⓒ오소리웍스

세상이 좋아지지 않는 것 같아 절망할 때는 음악을 듣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음악을 듣는 게 일이긴 해도, 음악을 들으면 버틸 수 있다. 어디선가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고, 이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이 다 망가지지는 않을 거라고 어설픈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그 음악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닿을지는 알 수 없다. 좋은 음악은 대부분 아는 사람만 아는 음악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TV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음악을 찾아 듣지도 않는 심사위원들의 놀란 표정을 끌어내야만 겨우 사람들에게 알려질 거라 생각하면 맥이 빠진다. 어느 시대에도 좋은 음악이 저절로 알려진 적은 없다지만, 밴드 소음발광의 역작 [기쁨, 꽃] 또한 저주받은 걸작이 될까봐 마음이 초조해진다.

소음발광의 두 번째 정규 음반 [기쁨, 꽃]을 듣는 이들은 대부분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밴드의 음악이 이름과 똑같다고, 소음 같은 소리들을 긁고 키우고 터트리며 발광하는 음악이라고. 어떻게 1년만에 더 근사한 정규 음반을 내놓을 수 있느냐고. 부산은 어떤 동네길래 여전히 이렇게 멋진 밴드들이 계속 나오느냐고. 록 음악의 과거가 계속 현재화 되면서 뒤섞이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포스트 펑크 밴드 소음발광의 2집 [기쁨, 꽃]은 포스트 펑크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로큰롤, 사이키델릭, 스크리모, 하드코어를 비롯한 과거의 어법을 두루 활용한 음반은 대중음악의 자산들을 조합하고 승계한다. 10곡의 수록곡들이 흐르는 동안 곡을 들을 때마다 다른 장르와 레퍼런스가 휙휙 지나간다. 한 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열매를 따 먹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다시 꽃 피우고 열매 맺는다. 그 때마다 다른 음악과 연결되어 더 많은 음악의 유전자를 품고 잉태한다.

포스트 펑크 밴드 소음발광의 정규 2집 '기쁨, 꽃'ⓒ오소리웍스

‘낙하’, ‘춤’, ‘불씨’, ‘로맨틱’, ‘해변’, ‘연분홍’, ‘태양’, ‘끝’, ‘이브’, ‘기쁨’으로 이어지는 열 곡의 수록곡들을 관통하는 주제와 정서는 없다. “재가 된 평화라는 이름의 조롱”(‘낙하’)라는 노랫말과 “중요한 건 우리가 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춤’), “사랑의 밤, 인정의 밤/모두 내게 오라”(‘이브’)라는 노랫말의 차이만큼 곡의 비트와 사운드 역시 거리가 있다. 소설과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은 노래에는 좌절과 실패, 열망과 충동이 넘실거린다.

소음발광은 가사의 모호함을 사운드의 강렬함과 명징한 멜로디로 가시화한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크고 거칠고 날카로운 사운드의 질감과 그렇게 노래할 수밖에 없는 태도를 사랑하는 것일텐데, 사운드의 강도와 밀도를 조금만 낮춰보면 보통의 노래와 다르지 않은 구조와 멜로디를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 팝이 될 수도 있는 노래를 록으로 변환하고 확장한 것이다.

이 음반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 음반의 매력이 록 밴드의 음악임에도 좋은 팝의 생명인 자연스러운 서사와 멜로디를 담지했다는 사실에만 있지 않지만, 이 음반에는 비치 보이스가 오래전에 선보였던 선샤인 팝의 매력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다. 설레고 들뜨고 몽롱한 팝의 기운이 스며든 음악은 아무리 거칠고 투박한 사운드가 발광하듯 날뛸 때에도 부드럽게 마음에 잠입한다.

그래서 소음발광의 [기쁨, 꽃]을 온전히 체감하기 위해서는 록음악의 다양한 줄기들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확인함과 동시에 그 순간마다 어떻게 팝과 만났는지 유념하며 들어야 한다. 대놓고 팝을 지향하는 ‘해변’과 ‘이브’만이 아니다. 첫 번째 곡 ‘낙하’에서부터 보컬이 거칠게 노래하고 일렉트릭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 난폭하게 연주하더라도 각 곡들에는 노래로 완벽한 순간들이 끊이지 않는다. 때로는 보컬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때로는 일렉트릭 기타가 그 역할을 병행한다. ‘춤’의 기타 리프가 만들어내는 징글쟁글한 감각과 “여름이 다가오길 기다리는” 노랫말이 손을 잡을 때는 비치 보이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불씨’의 거친 목소리를 낮추면 썩 괜찮은 팝이 되지 않을 리 없다. ‘로맨틱’이나 ‘연분홍’도 마찬가지이다. ‘기쁨’으로 음반이 끝나는 순간까지 좋은 노래는 한 번도 멈추지 않는다. 빼어난 팝의 감각은 기꺼이 소음발광에 열광하게 만든다.

소음발광은 거칠면서 부드러울 수 있고, 몽롱하면서 뜨거울 수 있음을 음악으로 증명한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고른 음악의 완성도와 다채로운 장르의 혼종, 그리고 맹렬한 기운의 생동감은 이 음반을 올해 나온 여러 음반들 가운데 맨 앞에 두자고 한다. 맞다. 수작이다. 역작이다. 상투적으로 말하자면 이 음반을 들으면 기쁨이 꽃처럼 피어날 것이다. 좋은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당신이라면 오늘은 이 음반이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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