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하나님] 기득권 중심의 성경 해석, 이대로 좋은가

빈센트 반고흐가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ible 1885 oil on canvas 65.7cm x 78.5cmⓒVan Gogh Museum

기득권 중심의 성경해석은 성경의 정신을 훼손한다

얼마 전, ‘타작마당’으로 알려진 과천 은혜로교회 신옥주 목사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모든 여자들아 교회에서 잠잠하라”라는 전면 광고를 냈다. 신 목사는 현재 대법원의 ‘징역 7년’ 판결로 수감된 와중에도 자신을 ‘성령’이라 칭하고 자신을 비판한 사람을 ‘여자’로 명명하면서,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 나오는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성경 구절을 가져와 불법과 폭력을 정당화하는 자의적인 성경해석을 하였다.

나는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 대한 신옥주 씨의 성경해석을 보면서, “교회에서 여자가 잠잠하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못 박은 보수교단(합동, 합신, 고신)의 성경해석이 떠올랐다. 신옥주 목사나 보수교단의 성경해석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기득권 중심’ 성경해석이라는 점이다. 이는 성경을 해석해 온 자들이 정통이든 이단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모두 자신들을 ‘신격화’ 내지 ‘특권화’하는 데에만 몰입하여, 교회 내 약자들과 여성들의 소리를 ‘음소거’시키는 독점적이며 배타적인 성경 해석을 해왔다는 의미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실린 은혜로교회 전면 광고ⓒ기타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힘없는 약자와 여성에게 엄격한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어 정죄와 혐오를 일삼으면서도, 속으론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 찼던 위선적 작태를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침을 가하지 않으셨던가(마 23:23~28). 작금의 교단 내 기득권 중심의 성경해석은 겉으론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성경의 정신인 의(義), 인(仁), 신(信)을 버리고, 교회 내 모든 차별을 정당화하고 있다. 급기야 교회는 ‘차별금지법 반대’에 앞장서는 ‘반인권적 집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현재 교단의 기득권자들은 ‘교회 세습’과 ‘학력 위조’, ‘교회 재정 횡령’, ‘성폭력’ 등 자신들의 엄청난 불의와 죄악은 꿀꺽 삼켜버리면서, 양심의 자유와 예배 의식, 성 정체성과 성 역할 등 기독인의 자유(아디아포라, adiaphora)에 해당하는 문제를 ‘진리의 문제’로 둔갑시키면서 오히려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

예수의 정신에 합당한 성경해석이 필요하다

나의 성경 읽기는 예수를 믿은 10대부터 시작됐다. 규칙적으로 성경을 읽으려 힘써보기도 했다. 그런데 20~30대가 되자, 교회에서 설교를 들을 때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서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열정이 솟구쳤다. 그 당시, 총신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이유 중 하나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한 보수신학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막상 신대원에 들어가 보니, 합동 총신이 말하는 보수신학은 오로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신학이었고, 그들이 말하는 성경의 권위란 교단 내 남성 교권주의자들의 권위를 강조하는 위한 것이라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교권주의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말할수록 여성으로서의 존재감과 정체성, 복음적 위로와 소망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보수 교단의 성경은 한마디로 말해 ‘남성용’ 성경이었다. 남성 기득권자들의 성경해석은 하나님의 남성적 이미지가 마치 ‘본질’인 것처럼 왜곡하면서 여성에 대한 억압과 소외,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였다.

나는 이런 기득권 중심의 성경해석은 예수의 정신에 합당한 성경해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관계의 차별과 혐오, 수직적 위계나 배제의 그 어떠한 공간도 허락하지 않고, 오히려 ‘작은 자’, ‘잃어버린 1마리의 양’도 포기하지 않는 평등하고 포용적인 인간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 나오는 안식일 논쟁(마 12:1~12)과 장로들의 유전에 대한 훈계(마 15:1-14),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셨음을 포착할 수 있다.

루카스 카라나흐가 16세기에 그린 예수와 간음한 여인ⓒ기타

특히, 예수는 여성의 성(性)과 결혼을 통제하며 악용했던 유대 사회의 가부장 질서와 여성에게 가르침을 금했던 랍비 전통의 질서를 깨면서까지, 여성들의 비참한 현실에 찾아와 치유와 구원을 베풂으로써, 남녀 모두를 존중하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그리스도인의 실천 강령이라 천명함으로써 온전한 율법을 완성하셨다.

“교회에서 여자는 잠잠하라”(고전 14:34)의 해석과 현대적 적용

2021년 9월에 열린 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는 “성경은 오직 남성에게만 목사 자격을 부여하며 여성은 협력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성 안수 불가’를 재확인했다. 합동 교단이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근거는 고린도전서 11장 2~16절, 14장 26~40절, 디모데전서 2장 1~15절에 대한 성경해석 때문이다.

하지만 신약학자 차정식 교수에 따르면, 성경이 쓰인 시대에는 목사직이란 게 없었으며, 오늘날 그 임명 자격과 절차도 성경의 맥락과 무관한 것이다. 즉, 바울의 본문에서 곧바로 ‘목사직’과 관련해 해석할 수 없다는 뜻이 되겠다. 나는 ‘남성 안수’란 말은 없는데, ‘여성 안수’라는 용어가 마치 교단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성경적 진리’인 양 해석되는 것에서 남성 중심의 직제 이후에 남성 기득권자들의 편견에 의한 성경해석이라고 생각한다.

합동 교단은 1934년 9월 평양에서 열린 제23차 장로회 총회 정치부에서 “사도바울이 [녀자는 조용하여라. 여자는 가르치지 말라]고 한 것은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통행하는 규률이엇스니.. 그것이 엇지 한 시대 한 지방에 국한된 교훈이리요. 그것은 분명히 만고불변의 진리이웨다”라고 결의한 이래로, 여성 안수에 대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14장 34절(“교회에서 여자는 잠잠하라”)을 해석하기 위해선, 고린도교회가 지혜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예언과 방언의 은사, 능력 행함과 방언 통역의 은사 등 다양한 은사를 지닌 남녀 공동체라는 걸 전제해야 한다(고전 12장). 또한, 고린도전서를 쓴 사도 바울 주위에는 유니아 사도, 뵈뵈 집사, 브리스길라 동역자, 다비다 제자, 빌립의 네 딸 선지자와 같은 여성 동역자들이 리더십을 발휘했음도 염두에 두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

지난 2019년 대한예수교 합동총회 제104회 회의가 끝나고 총대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여성 안수를 금지한 예장 합동에서 여성은 장로와 목사가 될 수 없어 여성은 회의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평화나무 제공

고린도전서 14장에서는 잠잠해야 할 부류로서 ‘방언하는 자들’(28절), ‘예언하는 자들’(30절), 그리고 ‘여자들’(34절) 이렇게 세 부류가 나온다. 바울 당시엔 계시가 완성되기 전이므로, 방언과 예언, 지혜의 말씀이라는 은사를 받은 자들이 계시 전달자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잠잠하라’는 지시의 맥락은 방언하는 자들, 예언하는 자들처럼 계시의 방편에 가담한 자들에게 주어진 명령이다. 그런데 왜 ‘여자들’에게 잠잠하라고 지시했을까? 바울은 그 당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기에 여성들도 계시의 방편으로서 예언과 방언에 가담하고 있었는데, 일부 여성들이 소란스럽게 떠들면서 예배행위를 방해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36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라고 되어있는데, 여기서 ‘~만’(모누스)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남성 복수형 형용사’로서, 34~35절에 여성에 대한 지시 문맥의 흐름과 불일치하고 있음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울이 36절에서 ‘남녀 성도 공동체’를 지칭하는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33절의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라는 것, 그리고 39~40절의 “예언과 방언을 금하지 말라. 모든 걸 적당히 하고 질서대로 하라”에 강조점을 두었다고 해석하는 게 문맥상 자연스럽다. 아울러 바울은 성령의 은사를 받은 남녀 모두에게 그에 상응하는 역할(직분)을 허락했다는 점도 놓쳐선 안 될 것 같다.

최갑종 교수는 바울서신에 나타난 여성 관련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다음과 같이 안내해준다. “고린도 교회와 에베소교회의 여성도 중에 교회를 혼란스럽게 한 여성에게 주는 특별교훈(임시 교훈)으로 봐야 하며, 교회 내 여성의 역할 문제는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이뤄지는 새 창조의 관점에서 해석하여, 여성 안수를 포함해 교회 안에서 모든 제도와 법을 과감하게 개선하고 오히려 사회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의 예배 상황에서 방언과 예언은 계시 전달의 방편이었으며, 여성들도 계시 전달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나 성경이 완성된 현대 교회에서 방언과 예언의 은사는 계시의 방편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작금의 보수 교단은 이러한 계시 전달의 역할이라는 측면을 간과한 채, 고린도 교회 내 일부 여성들의 소란스러운 일시적 행위를 모든 여자에게 “잠잠하라”고 적용하면서 이를 ‘만고불변의 진리’로 해석하는 건, 결국 여성 안수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남성 직제 중심의 선입견과 편견이 전제된 해석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2017년 열린 예장 합동 총회장 앞에서 여성안수 허용을 요구하는 총신대 여동문회 회원들. 사진 제일 오른쪽이 강호숙 박사.ⓒ기타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의 여성들이 계시의 방편이었던 예언과 방언에 가담했다고 한다면, 계시가 완성된 오늘날에 적용해 볼 때,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성경을 해석하여 말씀을 가르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건 당연하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힘써야 할 교회가 여성이 예언하고 방언했던 바울 시대보다, 서재필 선생이 “남녀가 평등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부국강민(富國强民)의 원인이라고 말한 20세기 초기 한국교회 때보다 더 후퇴하여, 교회 여성의 역할을 제한하는 건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성령의 역사를 거스르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남녀 구별 없이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교회 안에서 남녀 모두가 성령의 은사와 전문성을 갖고서 헌신하도록 직분과 리더십을 부여하는 게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이해한 구약과 신약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은 남성 기득권자들이 약자와 여성을 소외, 분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인격성과 평등성에 근거하여 공의와 자비, 그리고 포용과 평화를 도모하도록 자신의 기득권을 먼저 내려놓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들이 현대사회의 눈높이에 맞게 실현되도록 성경 본문에 대한 역사적, 문법적 배경의 민감함과 인간다움의 헌신, 그리고 적실한 적용과 실천이 이뤄지도록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의 권위를 지키는 일이며 예수의 정신에 응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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