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읽기] 약자들의 용기

일리야 레핀의 그림 ‘술판 모하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예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가운데 하나는 힘이 센 나라가 힘이 약한 나라를 구박한다는 것입니다. 국가 사이의 관계에서 국가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기 시작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모든 국가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일 뿐입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요? 이런 상황을 떠올릴 때마다 웃음 짓게 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Ilya Repin 일리야 레핀 Reply of the Zaporozhian Cossacks 술탄 모하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1880~1891 oil on canvas 203cm x 358cmⓒ러시아 미술관, 상트 페테르부르크

한 무리의 사내들이 편지를 쓰는 사람 주위에 모여 낄낄거리고 있습니다. 옷차림이 그다지 세련되어 보이지 않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듯한 모습들입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시작해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흑해로 들어가는 드네프르강 주변에 사는 코사크인들입니다. 얼마 전 오스만 제국 군대와의 싸움에서 이겼는데, 오스만 제국의 황제로부터 자신의 법을 따르라는 최후통첩이 도달했습니다. 지금 코사크인들은 적반하장의 이 통첩에 대한 답장을 쓰는 중입니다.

모하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가운데 일부분ⓒ기타

그림 한가운데 편지를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공부 좀’ 한 사람이겠지요. 바로 옆에 있는 붉은 색 얼굴의 남자는 답장이 너무 재미있는지 눈물이 나도록 웃고 있습니다. 모하메드 4세가 보낸 최후통첩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술탄 모하메드 4세가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에게, 무함마드의 아들이자 태양과 달의 형제이며 신의 대리인이자 손자이고 마케도니아, 예루살렘, 상하 이집트의 통치자이자 왕들의 왕이며 한 번도 패한 적 없는 장수이자···’

모하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가운데 일부분ⓒ기타

왼쪽에 있는 사람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들입니다. 검게 탄 얼굴에 깊은 주름에 내려앉은 세월은 이들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은 술탄에게 보내는 답장의 내용 때문입니다.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이 터키 술탄에게, 터키의 악마이자 빌어먹을 악마의 친척이며 악마의 비서인 술탄, 엉덩이를 까고 고슴도치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장수라는 소리를···’

모하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가운데 일부분ⓒ기타

이런 와중에도 눈을 반짝거리며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담뱃대를 물고 있는 이 사람은 이들의 리더인 이반 시르코입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힘을 가진 나라 중 하나인 오스만 제국과의 싸움은 쉽지 않지만, 그냥 물러서지는 않겠다는 결의도 보입니다. 리더는 이런 맛이 있어야 합니다.

19세기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에는 코사크인들의 모습이 주제로 등장하는데 원초적인 생명력과 기존 권위에 대한 냉소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것은 또 다른 탈출구였을 수도 있습니다.

모하메드 4세에게 답장을 쓰는 자포로제의 코사크인들 가운데 일부분ⓒ기타

실제로 이 일이 있었는 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 왜냐면 아직 확실히 이 사건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그림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담았고 우리는 그 그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되는 것 아닌가요?

일리야 레핀이 완성한 작품을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더 3세가 35,000 루블에 구입하는데, 당시 러시아 그림으로는 가장 비싼 가격이었습니다. 어쩌면 레핀도 그림 속 사내들처럼 웃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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