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잠시 숨을 돌리는 대기실의 낡은 벽에 119가 아닌 129 구급대 연락처가 크게 적혀 있다. 129는 사설구급차를 부르는 번호다.
도계광업소에서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13년차인 장모(51)씨는 “민간구급차 번호가 대기실에 써있다”며 “119 말고 129로 부르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운탄 작업을 하는 또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 박모(63)씨도 “119로 부르면 소문이 나니까 (부르지 말라는 것)”이라며 “사망 사고나 (산재로) 집계되지 사소한 건 집계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계광업소 안에서는 노동자들의 사상 사고가 많이 일어나지만 그중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당한 사고는 밖으로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송주화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장은 “119를 부르면 산재 처리를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한다”며 “하청업체 사장들은 산재가 있으면 입찰에 들어갈 때 감점된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10여 년 동안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은 민간기업도 아닌 공기업, 석탄공사의 광업소였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말대로 산재신청조차 되지 않은 사고까지 더해진다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쳐도 산재 처리되지 않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14일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석탄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광업소별 산재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석탄공사가 현재 운영하는 3개 광업소(도계·장성·화순)에서 총 38명이 산재로 사상을 당했다. 사망 6명, 중상 9명, 경상 23명이다. 이중 석탄공사 직영 정규직 노동자는 29명(사망 3명, 중상 7명, 경상 29명),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9명(사망 3명, 중상 2명, 경상 4명)으로 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이 훨씬 컸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집계되지 않은 사고가 더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로 처리되기는커녕 신청조차 하지 않은 사례가 있었다.
도계광업소에서 갱내 배수시설을 점검하는 일을 하는 A 하청업체 비정규직 이모 씨는 2020년 9월 17일 갱내에서 도보로 이동 중 미끄러져 손바닥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하지만 산채 처리는 되지 않았다. 이 씨는 치료 기간도 출근한 것으로 인정받아 월급을 받는 선에서 그쳤다. 그마저도 치료비 20만원은 자비로 부담했다. 그 결과 석탄공사가 공개한 산재 현황에는 그해 도계광업소 하청업체에서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다. ‘0건’이다.
갱내 전차운전 조수인 B 하청업체 비정규직 윤모 씨는 올해 9월 15일 갱내에서 축전차와 수평인차의 연결핀을 제거하는 작업 도중 차대 프레임과 지면 사이에 발등이 끼어 부상을 입었다. 전차의 무게는 무려 8톤이다. 전치 8주의 심한 부상을 입었고 수술도 받아야 한다. 이건 산재 처리가 됐다고 윤 씨가 전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갱외로 빠져나온 윤 씨를 병원으로 후송한 건 119 구급차도, 129 구급차도 아닌 협력업체 직원의 승용차였다. 급한 대로 탄 것일 수는 있지만, 병원에서 “너무 늦게 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윤 씨는 전했다.
그는 한 달 전쯤인 8월 7일에도 갱내에서 전차와 공차 연결핀 제거 작업 도중 그 사이에 끼어 머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건 산재 처리가 되지 않았다. 사고 당시 회사는 윤 씨의 상태만 확인한 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에 윤 씨는 다음날 병원을 찾아 검사를 받은 뒤 자체 요양 후에 출근했다. 치료비 15만원만 업체에서 부담했다.
송주화 민주노총 공공연대노조 석탄공사지회장은 “올해 제가 본 것만 8건”이라고 말했다. 석탄공사가 제출한 산재 현황 자료에는 올해 도계광업소 하청업체에서 2명(중상 1명, 경상 1명)이 사고를 당한 것으로 나와 있는데 누락된 사고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중대재해법 시행 코앞...석탄공사 책임 가중
이처럼 크고 작은 부상까지 합치면 석탄공사의 산재 현황 성적은 더 처참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석탄공사는 ‘산재 사망자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최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10여 년 동안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은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로 316명(11.7%)이 산재로 사망했다. 그 뒤로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213명(7.9%)으로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를 냈다. 석탄공사는 현재 3개 광업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무려 두 군데가 산재 사망 사업장 1, 2위를 나란히 차지하는 불명예를 얻게 된 것이다.
이는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크게 앞질렀을 뿐만 아니라 민간광업소에 비해서도 굉장히 높은 수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산업재해 사망자 수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죽음의 행렬’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가장 많은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 사업장은 민간기업도 아닌 공기업인 석탄공사 광업소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다.
특히 내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만큼, 원청인 석탄공사의 책임도 무거울 수밖에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르면 안전사고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법인 또는 기관에게는 50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노동자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릴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산재사고를 막기 위해 저가 입찰 관행을 해소하고, 위험장소 2인1조 근무와 안전 취약설비에 대한 설비 보강 등을 추진해야 한다는 게 광업소 노동 현장의 목소리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석탄공사가 직접 나서야 한다. 경동광업소에서 32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석탄공사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한 지 3년차인 박모(63)씨는 “2인 1조로 일을 해야 하는데 인건비를 아끼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며 “광차와 광차를 연결할 때 손가락이 잘리는 등의 사고가 굉장히 많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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