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철 칼럼] ‘단계적 일상회복’ 논의와 반드시 병행돼야 하는 것

2021년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 키워드는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

UN에서 정한 매년 10월 17일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전후로 각종 후원과 모금 행사가 열린다. 코로나19와 경제위기로 세계의 빈곤 인구가 증가세에 있는 올해에도 후원을 위한 각종 콘서트 개최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우리는 빈곤과 불평등이 후원과 모금의 부족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후원과 모금은 방치된 빈곤과 불평등으로부터 만들어진 하나의 시장이자 산업일 뿐이다. 빈곤 문제 해결책 우선순위에 자선이 놓이며, 현재의 빈곤과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들이 희미해져 버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한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예측할 수 없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두의 안전과 안정된 삶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변혁이 필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10월 17일을 ‘빈곤철폐의 날’로 정하고 지속적인 투쟁을 전개해 온 이유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앞 농성장에서 1017빈곤철폐의날 조직위원회 주최로 '못 보는가 안 보는가 코로나 위기 속 쫓겨나는 사람들, 방역과 공존가능한 생존을 요구한다' 기자회견이 열렸다. 2021.10.12ⓒ사진 = 빈곤사회연대

‘‘빈곤철폐의 날’은 빈곤 문제를 일상에서 마주하며 싸우고 있는 노점상, 철거민, 쪽방 주민, 홈리스, 장애인, 임차 상인, 노동자들이 빈곤과 차별 없는 세상에 대한 요구를 모아내고 연대해 행동하는 날이다. 매년 ‘세계주거의 날’(매년 10월 첫째 주 월요일)부터 10월 17일까지 ‘빈곤철폐의 날’ 투쟁을 이어진다.

올해에는 “안 보는가 못 보는가? 코로나 위기 속 쫓겨나는 사람들, 방역과 공존 가능한 생존을 요구한다!”는 기조 아래 빈곤철폐의 날 투쟁을 진행했다. ‘세계주거의 날’엔 용산 정비창을 점거하며 100% 장기공공임대주택 도입과 주거권 문제를 이야기했다. 또 온·오프라인 기자회견과 증언대회를 통해 불평등한 재난의 위기를 알리고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세상의 조건을 물었다.

아래는 ‘1017 빈곤철폐의 날, 내가 살아갈 코로나19 이후 증언대회’에 참석한 노점상 정 씨의 발언 중 일부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그대로 장사를 하면서 왜 노점상들에게는 장사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까? (중략)... 집값과 전월세가 미친 듯 오르면서, 우리 가족의 꿈은 그냥 꿈일 뿐이었습니다. 월세 낼 날만 돌아오면 주인 눈치를 봐야 했고, 월세 낼 돈이 없어 밀리기라도 하면, 주인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도 꾹꾹 참아야 했습니다. 그나마 이 집에서도 쫓겨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2년 동안 조금씩 모아온 적금도 깨고, 보험도 깨면서 근근이 살고 있습니다. 매달 월세 낼 날은 돌아오고, 아이들 학비낼 돈 등 돈 들어갈 데는 많은데, 장사는 못하고 정말 저의 삶을 생각하면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중략)... 식당에 가서 설거지 알바도 하고, 서빙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노점상도 사람입니다. 처음 태어날 때 노점상이라고 이마에 찍혀서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하는데 왜 구청 공무원들이 바뀔 때마다 우리들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해야 할까요? 이렇게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는 노점상들의 고통을 누가 알기나 할까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 주최로 ‘빈곤철폐의 날 증언대회-내가 살아갈 코로나19 이후’가 개최됐다. 2021.10.15ⓒ사진 = 빈곤사회연대

정 씨의 증언을 들은 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재난의 위기가 불평등을 타고 흘렀고, 가난한 사람들이 방역의 예외 상태에 몰려 있다는 말이 수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말이다.

방역 조치가 없었던 시기 빈곤과 차별 속에 살았던 사람들은, 방역의 시기 ‘최대한 집에 머물라’ , ‘아프면 쉬어라’는 새로운 질서에 합류할 수 없었다. 재택 근무나 유급 휴가가 가능한 사람들이 홈트, 홈바 등 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소비 트렌드에 적응하는 동안, 불안정한 고용 관계에 있는 노동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며 일터에 나가거나 해고됐다. 장애인 거주시설, 요양병원 등 집단밀집시설에서의 감염과 사망이 속출했다.

세계적으로 고용과 주거 안정이 강조됐지만, 이윤 중심의 개발 정책은 계속 철거민들을 집과 가게에서 쫓아냈다. 정부는 노점상에 대해선 별도의 방역 수칙을 제시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단속을 강화하고 과태료를 남발했다. 방역을 이유로 집회 금지 조치를 내려 생존의 조건이 박탈된 이들이 목소리를 낼 통로마저 차단했다. 심지어 홈리스들은 방역을 이유로 공공장소에서 퇴거 조치 됐다. 이 비극은 모두 ‘현재 진행중’이다.

15일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서울시립승화원 제1묘지 무연고 사망자 추모의집에서 1017빈곤철폐의날조직위원회와 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등 7개 단체 주최로 '제5회 무연고사망자 합동 추모제'가 진행됐다. 2021.10.15ⓒ사진 = 빈곤사회연대

정부는 이런 실질적인 방역 문제,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사회 정책에 대한 논의는 시도하지도 않았다. 그리고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 논의에 돌입했다. 달갑지 않다.

전세계의 전문가들이 이전과 같은 세계로 돌아갈 수 없고, 또 다른 위기가 반복될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개인이 위기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고통과 비극이 계속되는 현재 사회 시스템과도 단절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이후를 이야기 하려면 그 논의가 반드시 병행되야 한다.

정부와 우리 사회엔 노점상 정 씨가 제기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도와 논의를 할 책임이 있다. 방역 조치가 시행되는 시기에도, 방역 조치가 없는 시기에도 안전하고 존엄한 삶, 모두의 소소한 일상이 보장되는 사회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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