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로 행진한 故 홍정운의 친구들 “학교에서 노동자 권리 교육해달라”

서울시청서 청와대까지 행진...“노동교육 있었다면 현장실습생 사망사고는 없었을 것”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 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여수의 한 요트업체에서 제대로 된 안전교육과 2인 1조 등 의무 사항이 지켜지지 않은 채로 실습하다가 사망한 여수 특성화고 실습생 고 홍정운 군이 사망한 지 딱 한 달이 지났다. 이 가운데 여수에서 상경한 정운 군의 친구들과 특성화고 학생들은 7일 "다시는 정운이 같은 죽음이 없도록 노동자로서 당당한 권리와 법을 알 수 있도록 학교에서 노동 교육해 달라"고 밝혔다.

특성화고 학생들은 이날 오후 2시 서울시청광장에 모여 "왜 현장실습생이 졸업을 3개월 앞두고 죽어야 합니까"라며 "현장실습 회사 사장이 부당한 작업을 지시할 때 거부하고, 자신의 안전을 먼저 지켜야 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교육했다면 이런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다시는 현장 실습하다가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함께 마음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전국 각지 특성화고 학생들은 정운 군을 추모하기 위해 시청 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부당함을 거부할 권리, 학교부터 노동교육 실시하라' 거리행진에 나섰다.

'학교부터 노동교육 운동본부'가 주최한 이날 추모 거리 행진에는 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재학생 및 졸업생, 교사 등 90여 명의 사람들이 함께했다.

이날 행진에 앞서 주최 측은 홍정운 군이 평소 좋아하는 노래들을 틀었다. 가수 경서가 부른 '밤하늘의 별을'이라는 곡이었다. 원곡엔 홍정운 군의 살아생전 목소리도 함께 담겨 있었다. 또한 친구들이 정운이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도 함께 들어갔다. 노래 속에서 고인의 친구는 "정운이가 원하는 꿈이랑 제가 바라는 꿈 이룰 수 있게 열심히 극복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홍정운 군의 친구인 김기웅(18) 군은 "정운이의 엉뚱한 행동과 바보스러운 웃음은 감히 잊지 못할 정도로 저희를 웃게 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줬다"며 "이런 정운이가 우리 곁을 떠난 게 안 믿기고 힘들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정운이가 왜 희생양이 돼야 했었을까"라며 "정운이랑 웃고 떠들던 교실, 기숙사 방, 용접실이 허전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그리고 저희는 정운이와의 추억을 평생 잊지 않고 살 것"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그는 "저희는 현장실습 폐지를 원하지 않는다. 저희뿐만이 아니라 같은 특성화고 학생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라며 "우리가 바라는 것은 현장실습 폐지가 아니라 안전한 현장 실습을 만들어 이런 사고가 없어지는 것, 우리가 꿈을 펼칠 수 있게 개선해 달라"고 말했다.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 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자기 요트 갖는 게 꿈이었던 고 홍정운
학교부터 '노동교육' 제도화해야

특성화고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물을 무서워하는 학생이 잠수작업을 하다가 죽었다"며 "자기 요트를 갖는 게 꿈인 3학년 학생이 도대체 왜 그 꿈도 못 이루고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교육부가 제대로 책임져야 한다. 책임지고 안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그런데 취업 전에 학생들은 학교에서 실습 나가서 말 잘 듣고 버티라고 배운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참으라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런 교육과정과 환경에서 어떻게 학생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며 일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학교에서 학생들이 노동자로서 당당한 권리,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권리를 배워야 한다. 제2의 홍정운 님이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학교에서부터 노동교육이 제도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로 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홍정운 군이 좋아했던 또 다른 노래도 나왔다. 가수 스탠딩에그의 '오래된 노래'였다. 원곡은 홍정운 군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개사 됐다. 홍정운 군과 동갑이자, 현재 현장실습을 진행하고 있는 특성화고 학생들이 직접 불러 의미를 더했다.

거리 행진 중에도 추모에 참여한 교사와 특성화고 학생들의 발언은 계속 이어졌다.

인천소방고 정소영 교사는 "2017년 제주에서 현장실습을 하다가 숨진 학생 앞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현장 실습생의 죽음은 또다시 반복됐다"며 "왜 학생이 현장실습에 나갔다가 죽음에 내몰려야 하나"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현장실습 학생의 죽음은 불평등한 한국사회의 가장 아픈 부위를 드러낸 일"이라며 "어떤 부모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몇 개월 일하고 50억 퇴직금을 받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삶을 이어가기 위해 위험한 작업장에 내몰리는 이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 입시를 선택하지 않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취업하려고 하는 학생들은 마치 능력이 없는 존재인 것처럼 몰아붙이는 능력주의 사회의 그늘이다"라며 "매일같이 노동자들이 떨어지고 끼이고 깔리고 죽는 OECD 산재 사망률 1위인 나라지만 기업들을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오늘의 현실이 빚은 참혹한 실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부당한 잔업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5인 이하의 사업자들도 근로기준법이 적용됐다면 어땠을까, 안전 책임을 다하지 않아 사고가 날 경우, 사업주가 강하게 처벌받는 사회라면 어땠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노동자는 누구나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라며 "이것이 학교에서부터 노동교육을 해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 사회를 노동 중심 사회로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이유"라고 말했다.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홍정운과 동갑내기 특성화고 학생들
"남 일 같지 않아...실습생도 노동자로서 존중·대우해야"

이날 거리 행진에는 다양한 지역에서 올라온 특성화고 재학생 및 졸업생이 함께했다.

이들은 '고 홍정운의 사고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5년 전 제주에서 현장 실습생 사망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현재까지 학교 내 노동교육과 관련해 변화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행진 내내 "부당함을 거부할 권리. 학교부터 노동교육 실시하라!" "2022년 개정 국가교육 과정 총론에 노동교육 명시하라"고 외쳤다.

광주에서 올라온 특성화고 졸업생 A 씨는 "작년 6개월 정도 트럭 정비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갔다. 첫 현장실습이다 보니 설레고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현장실습 현실은 내 생각과 너무 달랐다"며 "6개월간 한 상사분에게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선배들과 단체 사진 찍을 때 한 상사분이 화를 내며 쌍욕을 했고, 사진 찍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커터칼을 들이대며 '나 칼 들고 있다'고 저에게 위협을 줬다. 무서웠다"고 떠올렸다.

그는 "일하던 중 왼손을 다쳤다. 병원에서 왼손 인대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았다"며 "회사에선 본사에서 나온다고 깁스를 풀고 안 아픈 척, 안 다친 척 할 수 있냐고 이야기를 했고 상사분은 제게 '아, 너 팔 다친 병신 장애인 새끼지' 등의 말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지내다가 홍정운 님 사고를 접했다. 안타깝고 화가 많이 났다"며 "앞으론 지금과 다른 현장실습이 되어야 한다. 현장 실습을 하면서 안 다치고 서로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선 후배에겐 부당한 일 당할 때도 참지 말고 거부할 권리도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내 특성화고 다니고 있다고 밝힌 B 씨 역시 자신이 현장실습을 다니면서 겪었던 일을 털어놨다.

B 씨는 "조금 더 앞서가기 위해 도제관에 들어갔지만 오히려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2년이나 도제 기업에 다니고 있는데 시간이 계속 무한 반복하는 것처럼 회사는 계속 바삐 움직이는데 저 혼자 가만히 있는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회사에 갈 때 다른 반 학생은 선생님에게 교육받고 저는 회사에서 8시간 동안 투명 인간이 되어 자습하는데 과연 누가 더 배운 것이 많고 누가 더 앞서가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든다"고 덧붙여 말했다.

그는 "도제관이 좋은 취지로 만들어졌지만, 그 의도와 많이 빗겨져 나가고 있는 것이 제가 겪은 현실"이라며 "저를 포함한 특성화고 학생이 도제든 현장실습이든 노동자로서 인정받고 꿈을 펼치고 즐겁게 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서 특성화고를 졸업한 정미영(20. 서울 중랑구) 씨는 "SNS에서 정운 군의 소식을 접했는데 남의 일 같지 않고 와닿았다"며 "정운 군의 사고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더 많은 시민이 알았으면 좋겠다. 정부도 이 문제에 적극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나 어른들은 청소년을 어른들보다 밑에 있는 사람으로 취급한다"며 "어른들은 학생의 권리를 존중하고 '그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못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애들이니까 공부나 잘해라' 혹은 '어른 말이나 잘 따라라'라는 식으로 대하는데 그게 아니라 학생이 본인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진행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자신도 도제 현장실습에 다니는 중이라고 밝힌 신은진(19. 경기도 내 특성화고 재학) 양은 "홍정운 군 사고를 듣고 또 발생했구나, 싶었다"며 "5년 전에도 제주도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기업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없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부당한 일을 거부할 권리를 학교부터 가르쳐야 한다"면서 "그걸 배웠다면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부할 권리, 나를 지키기 위해서 노동자로서 안전할 권리를 학교에서부터 교과서를 만들던가, 정책적으로 교육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내 특성화고를 졸업한 이가희(22) 씨 역시 "저도 특성화고 졸업생으로 공감이 많이 됐다"며 "제주도 실습생 사망 사고 이후 홍정운 군 사고까지 변한 게 없어 안타깝다"고 심경을 전했다.

김주현(19. 경기도 내 특성화고 재학) 씨는 "주변 친구들도 특성화고 다니는 친구가 많아서 이런 사망사고까진 아니어도 조금씩 다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특성화고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여수에서 홍정운 군이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주위에서 금방 일어날 것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거리행진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전했다.

그는 "현장실습을 나가는 그 친구들을 학생으로만 보고, 노동자로서의 그런 권리를, 노동자로서의 모습을 봐주지 않아서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난다는 생각이 든다"며 "학생들에게도 노동자 성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는 오후 3시 30분경 청와대 앞에 도착한 후 마무리됐다.

한편, 지난 10월 6일 고 홍정운 군은 여수에 위치한 요트업체에서 현장실습 일환으로 요트 아래 따개비를 따는 작업을 하다가 사망했다. 물 아래에서 작업하던 홍 군은 잠수 장비 정비를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다가 산소통, 오리발을 벗던 와중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 홍 군은 12kg에 달하는 웨이트 벨트를 먼저 벗어야 한다는 교육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인 1조, 업무 적응 기간 등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실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여수 현장실습생 故 홍정운 군의 친구들, 특성화고 학생들, 시민들이 7일 고인을 추모하며 시청서울광장부터 청와대까지 추모거리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11.07.ⓒ김세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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