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글로벌 호구’ 한국, 그래도 조기경보기는 미국 보잉?

우리 공군이 운영 중인 미국 보잉사의 E-737 조기경보기(항공통제기) (자료 사진)ⓒ뉴시스(자료 사진)

우리나라가 세계 방산 시장에서 미국의 ‘글로벌 호구’라는 별명을 얻은 지는 오래됐다. ‘억’ 단위는 고사하고 ‘조’ 단위로 값을 올려도 한국은 가격 평가나 심지어 효과도 따지지 않고 미국이 부르는 대로 값을 다 쳐주고, 고마움까지 표시하며 구매한다는 조롱이다.

문제는 이 ‘글로벌 호구’라는 현상이 시간이 갈수록 더해 간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이미 방사청이 ‘피스아이’라고 불리는 조기경보기를 2대 더 구매하고 기존 4대를 수리하는 비용에만 국민 혈세가 무려 4조원이나 날아간다는 기사를 쓴 바 있다.
[분석] ‘묻지마 미국산’ 조기경보기 사업, 4조원 ‘퍼주기’…이번엔 달라질까?

그런데 2대가 아니라 아예 4대를 한꺼번에 계약하면 10% 정도 가격을 깎을 수 있다는, 국민을 바보 취급하는 황당한 주장이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나온다. 2대 값이 2조5천억원이 넘으니 4대 값인 한 5조원 정도를 미리 계약하면 2대 값은 10%(2,500억원) 정도 깎아주지 않겠느냐는 발상이다. 이러면 국민 혈세를 아낄 수 있다는 그 발상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조기경보기 문제는 기존 4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4대를 더 구매하겠다는 것에서 시작됐다. 아무리 국민 혈세가 미국 방산업체에는 쌈짓돈이라도, 너무 심하다 보니 2대만 구매하겠다고 조정했다. 하지만 미국 보잉사는 2대 값도 2조 3천52억원으로 후려치고 있다.

방사청이 책정한 가격보다 무려 44%(7,059억원)나 올린 금액이다. 스웨덴의 사브사 등이 약 1조5천억원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존 조기경보기 납품사인 보잉사는 ‘너희가 우리꺼 안 사고 배길 수 있겠냐’는 배짱이다. 보잉사는 기존 4대 수리비(1조6천398억원)도 신규 도입가의 3대 값을 내라고 요구한다.

이런 횡포를 고발하는 것이 언론의 책임이다. 그런데 바가지를 써서 2대를 더 사는 것도 문제인데, 아예 4대를 사면 그나마 10% 정도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발상이 언론에 버젓이 등장한다. 1조원 바가지 쓰지 말고 아예 2조원 바가지 써서 1천억 아끼자는 속임수다.

조기경보기 사업은 가격도 문제이지만, 유럽 등 다른 방산업체는 경쟁입찰의 구색 맞추기 역할만 한다는 것이다. 보잉사가 배짱을 부리는 이유도 이러한 독점 구조에 있다. 뺨을 10대 맞을 것을 앞으로도 또 10대는 더 맞아야 하니 아예 한꺼번에 18대를 맞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왜 우리가 계속 미국에 계속 뺨을 맞아야 하는지 근본적인 문제는 뒷전이다. 이러니 값을 후려치고 때리는 놈은 얼마나 신이 나겠는가. 하도 맞으니 그 흔한 ‘국뽕’ 논리도 미국과 보잉사에는 내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데 몇십조원이 들어간다면서 곳간 타령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유독 미국 방산업체에는 수십조원의 국민 혈세가 바가지를 쓰면서 날아가도 곳간 타령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아직 그 곳간은 넉넉한 모양이다. 설마 국민 재난지원은 절대 안 되지만, 미 방산업체 지원은 ‘만사 오케이’라는 것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미국에 가는 돈은 우리 곳간 말고 다른 데서 나오는 것일까.

보잉사는 이미 도입한 4대의 수리비도 3대 값을 요구한다. 거기에 더해 2대 말고 4대 사면, 대략 10%는 깎아줄 모양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을 감시하는 조기경보기가 아니라 이렇게 ‘글로벌 호구’ 짓을 되풀이하는 중병을 예방할 조기경보기가 아닐까.

민중의소리를
응원해주세요

기사 잘 보셨나요? 독자님의 응원이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후원회원이 되어주세요. 독자님의 후원금은 모두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정기후원은 모든 기자들에게 전달되고, 기자후원은 해당 기자에게 전달됩니다.

김원식 전문기자 응원하기

많이 읽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