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결국 숨지게 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22세 대학생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졌다. 탐사전문 매체 ‘셜록’의 보도로 알려진 이 사건의 이면은 그저 존속을 살해한 ‘패륜’ 범죄가 아니었다. 한창 나이의 청년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게 만든 우리 사회의 현실 앞에 그저 부끄럽고 참담한 뿐이다.
‘셜록’의 보도에 따르면 이 청년은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홀로 간병을 도맡아야 했고, 청년의 아버지는 병원비가 없어 퇴원한 후 결국 집에서 굶어 죽었다. 법원은 이 청년이 민법상 아버지를 부양할 의무가 있고 퇴원 당시 병원으로부터 간병 지식을 익힌 만큼 적극적으로 간병행위를 하지 않은 점을 살인의 ‘고의’로 인정했다. 청년 역시 수사 과정에서 “혼자서는 병간호를 담당할 능력이 되지 않았고, 아버지가 회복할 가능성이 전혀 없어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며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이 청년의 처지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법적 판단이 무슨 소용인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7개월의 치료비를 삼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마련했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집의 밀린 월세에 허덕였다. 이용료를 못내 휴대폰과 인터넷, 도시가스도 끊긴 상태였다. 아들은 더 이상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게 되자 억지로 아버지를 퇴원시켰다. 욕창을 막기 위해 2시간 마다 자세를 바꾸고 마비된 사지를 주무르고 콧줄로 음식을 주입하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일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22살 청년의 몫이 됐다. 끝없는 생계 고통과 누군가 죽어야 끝나는 간병노동은 그를 아무 것도 하지 않아 아버지를 죽게 만드는 데로 몰아갔다.
‘선진국’ 대한민국은 내년에 200조원이 넘는 복지예산을 편성했다. 매년 10% 이상 인상되고 있는 복지예산은 그러나 이번 사건과 같은 사각지대를 막지 못했다. 당사자의 신청이 없으면 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몇몇 지자체에서 공무원들이 도시가스 연체 등의 신호를 파악해 직권으로 대상자를 ‘발굴’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서 보듯 아직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병원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부의 약속은 이 청년에겐 공염불이었다. 건강보험공단이 지원하지 않는 비급여 치료비와 간병비가 그의 목을 조인 것이다.
어떤 제도건 사각지대가 있을 수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한 허점이 있을 수 있고, 제도 자체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의 관점에서 ‘작은 사각지대’도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벼랑일 수 있다. 더구나 이번 사건은 지자체나 병원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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