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서 배제된 노동자들, 국회 찾아 “차별 말라” 법개정 촉구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열린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 촉구를 위한 차별 당사자 합동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입법촉구서를 들고 차별 피해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2021.11.17ⓒ뉴스1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노동자는 그냥 노동자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합니까?"

구두와 같은 신발을 만드는 제화 노동자 박완규 씨가 17일 국회 앞에서 열린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근로기준법 제2조(정의)는 '근로자'를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의 허점에 의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동자로 인정받더라도 이를 입증하기 위해 법정 다툼까지 벌여야 하는 경우가 흔하다. 노동자임에도 근로기준법을 차별 적용받고 있는 셈이다.

제화 노동자도 그중 하나다. 박 씨는 "1997년, IMF 이전 제화 노동자는 '노동자'였다. 그러나 그 이후로 25년 동안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소사장'이란 굴레에 묶여 살아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던 중 제하 노동자들은 최근 법원에서 잇따라 '노동자'로 인정받고 있다. 박 씨는 "2015년부터 현장 제화 노동자들이 '나는 노동자다'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판결을 요구했다"며 "2017년 탠디제화 노동자들이 노동자로 인정받았고, 2018년 소다제화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도 노동자로 인정받아 퇴직금을 쟁취해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씨는 "노무를 제공하고, 노임을 받아 생활하는 제화기술 노동자가 어찌 특고 노동자인가"라고 반문했다.

근로장학생으로 일했던 대학생 남우석 씨도 박 씨와 비슷한 처지다.

남 씨는 "근로장학생으로서 차별받고 있다고 처음 느꼈던 이유는 노동자가 아닌 근로장학생이기 때문에 주휴수당을 받지 못하면서였다"며 "우리 근로장학생들은 노동자가 아니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찍소리'도 못하는 존재였다"고 밝혔다.

또한 "근로장학생과 비슷하게 현장실습생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동료도 있었다"고 전했다.

남 씨는 "우리는 그저 일하게 해줘서 감사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며 "일 하게 해줌에 감사해하는 노동법에 없는 투명인간이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여서 최소한 노동법에 적용되는 당당한 노동자가 되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러다 보니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는 근로기준법 등에 명시된 '근로자' 및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입법추진단은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입법촉구서'에서 "노동자가 아닌 것으로 계약의 형식을 위장당해도 피해당사자가 나서 장기간 고비용 소송으로 노동자성을 입증해야 하는 권리구제 불능지대"라며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징수하면 노동자를 노동자가 아니게 할 수 있는 세계에서 근로기준법 2조는 '노동자 권리 박탈법'이 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모두를 노동자로 추정하고, 실제 사업주들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근로기준법 2조의 전면 개정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회에선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지난 9월 6일 대표발의한 근로기준법 제2조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현행 법의 '근로자' 정의에서 "타인에게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은 근로자로 추정하되, 다만 사용자가 '다음 각 목'의 사항을 모두 입증한 경우에는 그러지 아니한다"고 덧붙이며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를 좀 더 명확히 했다.

여기서 '다음 각 목'은 ▲노무제공자가 업무수행에 관해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받지 아니하는 경우 ▲노무제공이 사용자의 통상적인 범위 밖에서 이뤄진 경우 ▲노무제공자가 사용자가 영위하는 사업과 동종 분야에서 본인의 이름과 계산으로 독립해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등 3가지 항목이다.

마찬가지로 '사용자'의 정의도 확대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한편 입법추진단은 상시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 적용을 배제하는 조항인 근로기준법 제11조를 즉각 폐지할 것도 촉구했다.

근로기준법 제11조(적용 범위)는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家事) 사용인에 대해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상시 4명 이하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이 법의 일부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법추진단은 '입법촉구서'에서 "우리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취업했다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의 핵심조항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라며 "서류상으로 사업장을 쪼개거나, 4대보험 대신 사업소득세를 납부하게 하여 '상시근로자수'를 축소 위장한 '가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피해를 당하는 노동자"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렇게 우리는 근로기준법 차별 제도의 이름으로 근로시간, 연차휴가, 연장근로수당, 휴업수당, 부당해고구제의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라고 지적했다.

입법추진단은 이런 근로기준법 조항으로 인해 "직장갑질을 신고도 못 하는 직장내괴롭힘금지법, 안전하게 일할 권리와 죽음마저 차별하는 중대재해처벌법, 빨간 날에 못 쉬고 대체휴일에는 공짜로 일하는 공휴일법" 등의 문제가 생기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하는 사람 모두의 기본적 권리를 위해 사업장 규모로 적용범위를 차별하는 근로기준법 11조의 즉각 폐지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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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현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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