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기재부 해체, 그 오래된 미래…김대중

[2022 더 왼쪽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⑤
기재부 핵심 권한 예산권, 청와대 직속으로 둘 수 있을까
김대중의 도전과 실패, 문재인의 소극적 시도

기획재정부는 국가 경제 전반을 총괄한다. 비전을 세우고 세금을 추계하고 이를 바탕으로 예산을 짠다. 금융정책을 총괄하고 국제금융 상황에 대응해 외환을 관리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멋대로 휘두르는 검찰과 닮았다. 국민 살림살이에는 검찰보다 훨씬 막강한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곳이 기재부다. 이젠, 해체할 때다. 김대중 정부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무엇을 시도했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살폈다.

권한 넘어 권력 된 예산권의 정상화 방안

예산 편성권은 기재부 핵심 권한이다.

편성은 기재부 예산실에서 담당한다. 각 부처 사업 심사·조정 등 예산 편성 일련의 과정을 수행한다. 예산 총괄 심의관 아래 사회·경제·복지안전·행정국방 예산 심의관이 있다. 4개 심의관 아래 세부 분야별 과가 있다. 이들이 정부 사업 8천여개를 총괄한다. 현재 기재부 예산실 정원은 약 200명이다. 대통령 비서실이 모두 합해야 400명밖에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실로 거대한 조직이다.

예산권을 어디에 둘지 정하는 것이 기재부 해체의 출발이자 끝이다.

예산권을 청와대로 이관하는 방안이 있다.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산하로 예산실 기능을 옮기는 방안이다. 청와대로 예산권이 넘어가면 공약과 정책의 괴리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이 공약 실행에 대해 평가받으면서 책임이 강화되는 원리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정책 실현을 위한 핵심 수단인 예산 편성은 관료가 할 일이 아니다. 관료가 예산권을 쥐니까 반(半) 정치인이 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대통령 비서실보다 국무총리 직속으로 예산실을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예산 편성은 각 부처 사업을 법령과 절차에 따라 반복 검토하는 일이다. 각 부처와 빈번한 소통이 필수다. 효율성을 감안하면 국무총리 산하에 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신뢰하는 인사를 예산실 수장으로 두면 굳이 청와대 직속으로 두지 않아도 대통령 뜻을 예산에 반영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취임 축하 리셉션에 참석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당시 지명자)와 담화 나누는 김대중 전 대통령.ⓒ대통령기록관

정쟁 속 ‘절반의 성공’ 그친 김대중 대통령의 예산권 확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예산권을 청와대에 두려 했다.

당시, 예산권은 김영삼 정부에서 꾸려진 재정경제원에 있었다. 재정경제원은 현재 기재부와 닮은 꼴이다. 조세·금융을 담당하는 재무부와 예산권을 쥐고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경제기획원을 합한 조직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재경원 해체를 추진했다. 1998년 IMF 사태 주범 중 하나가 재경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경제 권한 집중으로 나타난 부작용이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국가 비상 상황에서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으로 예산 관리에 나설 필요성도 대두됐다.

개편 요지는 재정경제원 예산권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예산권을 제외한 재정경제원은 재정경제부로 축소했다. 예산권은 기획예산처를 신설해 이양하고, 기획예산처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는 방안이었다.

당시 연합정부(DJP연합)를 구성했던 자민련이 반발했다. 예산권을 재경원에서 떼어내자는 데는 공감했지만, 청와대 예산권 집중엔 반대했다. 자민련은 당시 김종필 총재가 맡게 될 국무총리 산하에 기획예산처를 두자고 주장했다.

개편안은 누더기가 되기 시작했다. 타협안이 나왔다. 예산 기획과 편성을 분리하는 안이었다. 기획권은 청와대가 갖고, 편성권은 또 다른 조직을 만들자는 안이었다.

기획예산처가 아니라 기획예산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위원회는 예산 기획만 하자는 것이었다. 핵심인 예산 편성은 독립 외청인 예산청을 만들어 재경원에서 분리한다.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국회에 발의되자 야당도 반대했다. 예산권을 대통령이 가지는 데 대한 거부감이 강했다. 안상수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예산만 갖고 있으면 국가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다”며 “중요한 예산 기능을 몽땅 대통령한테 뺏기고 마는 것”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야당은 자민련 의견에 동조하며 예산권을 국무총리 산하에 두자고 주장했다.

자민련과 야당 반대가 거세지며 김대중 대통령의 예산권 확보는 무산됐다. 통과된 정부조직법은 반대세력의 의도대로 됐다. 대통령 직속 기획예산위원회는 재정 계획만 세우고, 예산 편성 지침을 내리는 수준으로 역할이 축소됐다.

당시 정부조직개편심의위원회 실행위원장이었던 고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논문에서 “결국은 기이한 형태의 기구가 탄생하고 말았다”고 평가했다. 김 명예교수는 “원안이 꽤나 왜곡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기획예산위원회와 예산청의 분리”라고 적었다.

예산 기획과 예산 편성 기능이 이원화되면서 업무 효율성이 또 다른 쟁점이 됐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와 관료 조직 간 긴밀한 협조에 어려움이 있었다. 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옆에 자리를 잡았고, 예산청은 정부 과천청사에 있었다. 물리적 거리 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멀었다.

두 조직이 출범한 직후부터 통합 얘기가 나왔고 이듬해, 두 조직은 기획예산처로 통합됐다. 통합된 기획예산처는 대통령 직속이 아닌 총리실 소속으로 편제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예산권 확보 시도는 그렇게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무산됐다.

예산권 분리에 속 태운 경제 관료…10년 흘러 ‘공룡 부처’ 부활

재경원 해체를 골자로 한 조직개편 윤곽이 드러나면서 경제 관료는 속을 태웠다. IMF 사태 책임으로 장관과 국장급이 경질되는 상황이었다.

예산권이 떨어져 나가는 데 대한 재경원 내부 반발심은 간접적으로 감지된다. 당시 보도를 보면, 한 국장급 간부는 예산권 이관에 대해 “업무가 제대로 되겠냐”고 말했다. 해당 언론은 재경원 대다수 고위관리가 ‘공룡 부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른 보도에서는 재경원 해체 과정에서 ‘파워엘리트’ 관료 집단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전해지기도 했다.

전면적인 저항에 나설 수 없었던 재경원 관료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재경원 관료의 저항이 정치권에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진 교수는 “재경원 관료 입장이 국회의원의 입으로 전달되는 경우는 전부터 종종 있었다”며 “예산권 분리가 논의되는 상황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는 “도도한 경제 관료의 힘은 아무리 외환위기라 해도 막강했다”고 말했다.

기획예산처 모델은 이후 폐지된다. 외환위기 여파가 지속되던 때도 스멀스멀 올라오던 ‘재경부 부활론’이 10여년 뒤 이명박 정부의 기재부로 실현됐다. 형식적으로나마 분리됐던 예산권은 다시 관료집단의 통제 아래에 들어갔다.

강만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국무위원 임명장을 수여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2008)ⓒ대통령기록관

문재인 정부 ‘타협안’ 재정기획관…예견된 한계, 현실로

문재인 정부도 기재부 예산권에 대한 청와대 영향력 확대를 시도했다. 2017년 5월 첫 청와대 조직 개편에서 대통령 비서실 직속으로 재정기획관을 신설했다. 재정기획관은 장기적·거시적 관점에서 재원 배분을 기획·점검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대통령 공약이 예산에 반영되는지 살핀다.

재정기획관 신설은 예산실 이관을 완화한 형태로 풀이된다. 청와대가 예산권을 가져오는 데 대한 기재부 반발을 의식해, 재정기획관이 큰 틀에서 기재부와 예산을 조정하는 정도로 타협했다는 것이다.

2017년 초,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더미래연구소는 기재부 예산권 분리 방안을 제시했다. 예산 기획(경제전략, 공공기관 관리) 부문을 분리해 기획예산처를 설립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연구소의 제안은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공약집에도, 집권 이후 인수위 성격으로 꾸려진 국정기획자문위의 100대 국정과제에도,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도 관련 내용은 언급되지 않는다.

당시 연구소 선임연구위원으로 기재부 해체 방안을 제기했던 홍일표 경제인문사회 연구소 사무총장은 “세부적인 검토 과정 없이 기재부와 같은 거대 조직 개편을 결정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라고 아쉬워했다. 대신 등장한 것이 재정기획관 신설이었다.

재정기획관 신설은 기재부 반발과 현실적 제약으로 마련된 타협안이지만, 기재부 내부에서는 이마저도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기재부 관계자들은 언론을 통해 ‘청와대에 예산 관련 비서관을 둔다는 건, 부처에 자율성을 준다더니 청와대에 상전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내비쳤다.

재정기획관이 제대로 된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기재부 관계자의 의견처럼 ‘상전’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소득주도성장이 성과를 평가할 만큼 충실히 추진됐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비상 국면에서 긴급 대응과 재정 확대가 충분했느냐에는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박상인 교수는 “내부적으로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제3자 입장에서는 재정기획관 모델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학자 출신이 재정기획관으로 와서 기재부를 강하게 그립 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정기획관 사례는 예산실을 청와대로 이관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범진보진영, ‘기재부 조직 개편’ 한목소리

범진보진영 대선 후보는 기재부 예산권 분리를 구상하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가장 명확하고 선명하게 대안을 제시한다. 이 후보는 지난 18일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기재부로부터 예산 기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기재부가 예산 권한으로 다른 부처의 상급 기관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재부의 제일 문제는 기획·예산·집행 기능을 다 가진 것"이라며 "그 문제를 교정해야 각 부처의 고유 기능이 살아난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5일에도 “기재부를 해체하라는 얘기까지 나온다”며 “미국은 백악관에 예산실이 있다. 그런 것도 고려할 때가 됐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미국은 대통령실 직속 예산관리국(OMB)이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해, 대통령의 정책 우선순위를 예산에 반영한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도 기재부 예산실 분리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김재연 선거운동본부는 지난 4일 논평을 통해 “기재부를 기획예산처와 재경부로 분리해 견제와 균형을 실현하고, 공공성을 기준으로 중장기적 사회경제 발전을 위한 예산이 수립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 캠프도 기재부 해체를 골자로 한 정부 조직 개편안을 준비 중이다. 캠프 측은 “아직 안이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조직 개편 핵심은 기재부”라고 설명했다.

보수·중도진영에서는 대체로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측은 “기재부 조직 개편은 전체적인 정부 조직 개편 방향성 내에서 움직인다”며 “현재로서는 기재부를 비롯한 정부 조직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 공개하기 이른 감이 있다”고 전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측도 향후 공약 발표 일정에 맞춰 정부조직개편 관련 구상을 내놓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새로운물결(가칭) 김동연 후보는 기재부 예산권 분리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김 후보는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기재부 예산 기능을 청와대로 옮겨 대통령이 예산 편성과 집행을 직접 하면 많은 왜곡을 가져올 것”이라며 “국무총리실로 이관하는 방안도, 책임총리제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성과 노하우 측면에서 썩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기재부 기능과 조직이 비대해 역할과 기능 조정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선거가 4개월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돼야 한다’는 이유보다 ‘누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유독 넘쳐나는 요즘이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등으로 평가절하 된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민중의소리는 이번 대선이 한국 사회가 더 진보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2022 더 왼쪽으로’는 대선에서 주목할 만한 진보적 대안을 조명해보는 기획이다. 연말까지 몇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전할 의제와 주장에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린다.

첫번째 기획으로 ‘이젠 기재부 해체다’ 시리즈를 5개의 기사로 보도한다.

① 정부 위의 정부, 기재부가 ‘폐기한’ 골목상권 지원책
② 경제부시장=기재부 출신…예산에 멱살잡힌 지방 분권
③ 국회 쥐락펴락 기재부, 예산 선물 보따리엔 뭐가 들었나
④ ‘기재부의 나라’ 드러낸 문재인 정부 다섯 장면
⑤ 기재부 해체, 그 오래된 미래…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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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무·홍민철 기자 chm@vop.co.kr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