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나의 한 사람 이야기] 저기, 당신의 기억이 떨어진다

노인복지관 수업은 대부분 하반기에 집중되었다. 매년 그래왔다. 내가 다니지 않는 곳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는 대체로 경기도에 있는 복지관에서 매년 가을이나 겨울에 프로그램 운영 의뢰를 받는다. 수강신청은 복지관에서 받는다. 복지관 이용자들의 명단을 보고 일괄적으로 선발해서 앉혀 놓는 경우도 있고 자발적 신청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복지관에 생활보호 도움을 받는 노인들은 자서전 쓰기, 생애 사쓰기, 웰다잉 프로그램이라는 각기 다른 이름으로 현수막 아래에 모여 앉는다. 현수막에는 프로그램 운영기금을 보내준 후원기관의 이름이 꼭 적혀 있다. 짧게는 6주, 길게는 12주 동안 나는 글쓰기 강사로 노인들을 만난다.

올 가을에 만난 복지관의 노인수업은 구성원이 다양했다. 좋게 얘기해서 다양하지 수업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였다. 1929년생부터 1956년생이 한 교실에 앉아 있다. 대학졸업자부터 무학자가 한 교실에 앉아 있다. 글씨를 못 쓰는 사람들은 이야기로 풀어내게 하는데 기억이 점점 사라진다는 고백이 많았다.

“나는 요즘 황당한 일이 많아.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 깜빡깜빡해. 무슨 얘기를 한참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 내가 뭔 얘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거야. 치매 같아.”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치매였다. 암이나 뇌졸중보다 치매에 대한 공포가 컸다. 조짐도 없고 자기가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무섭다는 거다.

이 노인은 글씨 쓰는 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손가락을 움찔움찔했는데 안 써 버릇해서 그런가 글씨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내가 학교를 못 다녔지만, 내 이름자도 쓰고 주소도 썼거든. 동사무소 가서 서류도 볼 줄 알았어.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게 안 돼. 선생님 나 치맨가?”

기억과 생각ⓒpixabay

이 노인은 전쟁 때 피난 중에 가족과 헤어졌다. 이번 가을에 만난 노인 중 전쟁에서 가족과 헤어진 사람이 너댓 명 정도 되었다. 그 중 두 명은 부산의 보육원에서 자랐는데 각각 다른 반에 있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진 못했다. 그 두 명은 보육원에서 잘 자랐다고 했다. 학교를 보내줬고 양부모 역할을 했던 시설의 관리자도 좋았다고 했다. 한 명은 고등학교 때 서울에 있는 보육시설로 옮겨와 고등학교 공부까지 마쳤고, 한 명은 부산에서 중학교 교육까지 마쳤다.

이 노인은 전쟁 중에 가족과 헤어진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고 양부모와 잘 지냈다고 했다. 그는 “보육원”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니 나는 그의 교재에 ‘어린 시절 – 양부모를 만나 잘 지냄’이라고 대신 적어줬다.

이 노인은 ‘나 살아온 거는 말로 다 못한다’고 했지만, 정작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특별한 직업이 없었고 집에서 지냈다고 했는데 그의 시원시원한 얼굴을 다시 살폈을 뿐이다. 말투로 보아 총기도 있어보였으나 의자에 등을 깊이 대고 앉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만 했다. 하지만 그는 최선을 다해 뭐라고 자기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했고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앞자리에 앉은 노인 몇 명도 자꾸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인터뷰 하듯 질문을 하나씩 보탰다.

우리 집은 그냥 시골이지. 충청도.
어떤 시골이요? 농사 지으셨어요?
응 우리 아버지가.
가족들이랑 같이 사셨어요?
응. 그렇지.
가족 누구누구 있었는지 기억나세요?
우리 오빠도 있고, 내 동생도 있고.
집에 소도 있었어요?
응. 우리 집에 소 있었어.
어르신은 그럼 식구들 농사지을 때 뭐하셨어요?
나? 아무것도 안했어.
소 꼴 먹이러 안 다니셨어요?
다녔지.
일 하셨네요.
그렇네.
동생도 업고?
그렇지.
동생이 어렸어요?
어렸지. 내가 일곱 살이고 내 동생은 내가 업고 다녔으니까.

스무고개 하듯 하나씩 하나씩 물어 엉켜있는 기억의 조각을 꺼내 퍼즐로 맞춘다. 시간이 더 많거나, 한 명씩 개인적으로 만나면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정리할 수 있을 텐데 혼자 글자를 써내려가지 못하는 노인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한 사람에게 집중할 수 없다.

벽 쪽에 의자를 대고 앉아 고개를 저으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는 이 노인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나 살아온 거 말로는 다 못한다’는데 그 기억조차 소실되어 가는 것만 같아서 슬프다. 이 노인은 잠을 잘 못 잔다고 했다. 노인은 빈 교재를 앞에 두고 연필을 쥐어보지 않았다. 쓸 수 없다고 말만 했을 뿐이다. 나는 이 노인에게 섣불리 스무고개를 하지 못했다. 이 노인이 “양부모님은 어떤 분이었나요?”라고 물었을 때 그가 “좋았지.”라고만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20대와 30대에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냥 집에 있었어’라고 했다. 나는 이 노인이 기억을 잊어가는 것도 있지만, 잊고 싶은 것들도 적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12일 오후 서울 신문로 경희궁 계단에 켜켜히 쌓인 낙엽이 보인다.ⓒ이승빈 기자

이 노인뿐 아니라 나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기억을 입말로도 풀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그들의 사이를 오가며 한 사람의 이야기를 주워 담으려고 애썼다. 11월에 만나는 노인들은 계속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노인이 교실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는 멍하니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타인의 유창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기억의 조각들이 어디 갔는지, 더듬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딘가 그들이 걸어온 길목에 낙엽이 지듯이 기억이 떨어져 있을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불었다. 낙엽이 쏟아지듯 떨어지며 바람에 휩쓸려 움직였다. 저어기, 당신의 기억이 바람에 날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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