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8년 취재로 담아낸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삶,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김철민 감독 “재일조선인의 삶을 아는 일은 식민과 분단의 문제를 다시금 상기하는 일”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스틸컷

영화 ‘터미널’을 보았는가? 동유럽 작은 나라 ‘크로코지아’ 출신 빅터 나보스키(톰 행크스)는 부푼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 뉴욕 JFK 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입국 심사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그가 미국으로 날아오는 동안 고국에선 쿠데타가 일어나 ‘유령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도, 뉴욕에 들어갈 수도 없게 된 그는 공항이라는 경계에 잡혀 있을 수밖에 없게 됐다.

재일조선인들의 사연도 영화 ‘터미널’ 속 주인공과 닮아있다. 식민지 조선을 떠나 강제징용으로, 또는 취업으로, 이런저런 사연으로 일본에 온 동포들은 해방이 됐지만 돌아올 수 없었다. 일본은 귀국v시 가지고 돌아갈 수 있는 재산을 제한했기 때문에 삶의 터전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귀국이 미뤄진 뒤 하나였던 조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면서 재일조선인은 경계에 놓이게 됐다. 분단에서 해방됐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식민지 시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마치 뉴욕 공항에 머물러야 했던 영화 ‘터미널’의 주인공과 같은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조선사람이란 정체성을 지키며
일본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분단되기 전 국적인 ‘조선적(朝鮮籍)’을 가진 채 살고 있다. 일본은 1947년 외국인등록령으로 재일동포들을 외국인 신분으로 분리했다. ‘조선’은 일본에 의해 부여된 기호로 국적 취급을 받지만, 국적을 뜻하는 단어는 아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수립 이후 한국국적 취득자들도 늘어나고, 어쩔 수 없이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조선적을 유지하며 조선사람이란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고, 2세, 3세, 4세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스틸컷

하지만, 경계에 서는 건 불안하다. 어디에도 속하기 어렵고,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경계에 선 재일조선인들은 분단의 현실을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일본에서도, 남한에서도 북한사람 또는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남이냐, 북이냐 선택을 강요받기도 하고, 고향이 그리워 남쪽에 유학을 왔다 독재 정권에 의해 간첩으로 내몰려 10년 넘게 감옥에 갇힌 이들도 있었다. 이런 재일조선인의 삶을 다룬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가 12월 9일 개봉한다.

재특회의 거친 언사와 행동을
일상으로 마주하는 재일조선인

우리는 재일조선인을 잘 모른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를 만든 김철민 감독도 그러했다. 그는 지난 2002년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해외청년학생통일대회에서 처음 재일조선인들을 만났고, 그들에 대한 강한 끌림과 궁금증 때문에 18년 간 일본을 오가며 재일조선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냈다. 영화는 떠나온 고향의 기억을 간직한 채 일본에서 차별과 멸시를 이기고 살아온 재일조선인 1세부터 그들의 후손인 2세, 3세는 물론 4세, 5세 후손인 어린아이들까지 나와 다층적으로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으로 살아온, 또는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한다. 그들이 살아온 역사는 물론 삶의 내면까지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입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에서
피고 강종헌과 같은 북한 간첩은
생존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을 구형합니다”

아울러 영화는 일본 사회에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조선학교는 제외했다. 일본에서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그들은 철저하게 이방인 취급을 당한다.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의 거친 언사와 행동을 재일조선인들은 일상으로 마주한다. 학교 앞에는 일본 극우 패거리들이 몰려와 일본이 그렇게 싫으면 조선반도로 돌아가라면서 조선인들을 향해 ‘바퀴벌레’라고 소리친다. 초등학교 3학년인 아홉 살짜리 꼬마 아이는 필통에 항상 잘 깎은 연필을 가지고 다닌다. 필기하는 데 쓰지 않는 그 날카로운 연필은 재특회가 공격할 때를 대비하기 위한 용도라고 말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김치는 일요일에만 먹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학교에 가 냄새가 나면 차별받기 때문이다. 이런 장면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재일조선인들의 현실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스틸컷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스틸컷

아울러 자신의 뿌리를 찾고 배우겠다면서 고국에 왔다가 간첩으로 몰려 고초를 겪은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서울대 의과대학으로 유학을 왔다가 1975년 반국가단체인 ‘재일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에 국가기밀을 넘겼다는 누명을 쓰고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3년을 복역한 강종헌은 재판정에서 받았던 상처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사형을 구형하면서 검사는 “대한민국은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입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나라에서 피고 강종헌과 같은 북한 간첩은 생존을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형을 구형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고국에서 공부하고 의사가 되서 사람을 살리고 싶어 했던 청년에게 조국은 “생존을 허용할 수 없다”는 무서운 말을 던졌다.

조국을 너무나 사랑해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일본에서 노력했던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과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소속 재일조선인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대부분 한국 국적을 가진 이들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반국가 세력으로 몰렸고, 국내 입국을 불허 당했다. 김창오 한통련 중앙본부 사무장은 “조국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멀어진다”고 한탄했다.

김철민 감독 “재일조선인의 존재 자체가
식민과 분단을 증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픈 역사에 저항하는 분들이다.”

지난 24일 열린 시사회에서 영화에 출연한 강종헌은 “저에게 고문하고 사형 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감정이 있다. 그것을 증오의 마음으로 풀어버리면 개인적 차원으로 끝나고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 하지만 분노라는 감정은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쓰일 수 있다”며 자신이 분노하되 증오하지 않는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시사회에 참석한 강종헌 출연자, 김철민 감독, 이동석 출연자(왼쪽부터)ⓒ㈜인디스토리

영화에 함께 출연한 또 다른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인 이동석은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고 대학교를 재입학해서 3년 간 대학을 다녔다. 촬영하면서나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 재일동포에 대해서 이해를 못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일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통일을 원하는 재일조선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희망을 전했다.

영화를 연출한 김철민 감독은 “처음에 재일동포 간첩조작사건 피해자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획했다. 하지만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분들이나 일본에서 통일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재일조선인의 역사와 지금의 문제를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또 “재일조선인의 존재 자체가 식민과 분단을 증언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아픈 역사에 저항하는 분들이다. 그래서 그분들의 삶을 아는 일은 우리의 풀지 못한 식민과 분단의 문제를 다시금 상기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영화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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