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의 종말] 백남기와 한국농업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각들

“부서진 허리를 안간힘으로 버티며 소리없는 눈물로 꾹꾹 눌러 저들의 심장에 격문을 쓰노라. 이렇게 허망토록 쓰러지기 위해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었지 않은가. 한줌, 아니 티끌만큼도 하늘을 우러러 거역하지 못하는 농사를 이렇게 빼앗기려고 진통제로 버텨온 세월이 아니지 않은가. 아서라. 나는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생명의 물줄기를 부여안고 생명지기로 여름지기(농민의 순우리말)로 꿋꿋하게 서리라. 보아라 너희들 권력과 자본이 내 앞에 무릎 꿇게 되리니…” -‘백남기를 위하여’ 중에서- 한도숙

이러한 이유로 들판에서 꽹과리를 치던 백남기는 정권의 무도한 직사 물대포를 맞고 사망했다. 이 사건은 무도한 정권에 의한 한 농민의 사망이란 점에선 주목받았다. 결국 저항의 물결은 정권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출렁이는 촛불로 타올랐다. 사실 백남기 농민 사건이 가지는 함의는 따로 있었으나, 그 함의를 드러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너버린 탓인지도 모른다.

2015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청입구 사거리에서 경찰이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백남기 열사에게 계속 물대포를 쏘고 있다.ⓒ민중의소리

대한민국의 1년 농림축수산물 총 수입액이 49조7058억 원(2018년)이다. 이 중, 미국이 단연 1위 11조 5827억6천만 원이다. 이것은 공식적으로 미국 본토에서 수입되는 게 그렇다는 얘기이고 미국의 다국적 농기업이 진출한 남미지역까지 포함하면 그 금액은 엄청날 것이다. 2위의 중국부터 호주, 브라질, 러시아, ASEAN, 베트남, EU를 제외한 기타 국가 대부분이 미국의 초국적 기업이 운영하는 회사를 둔 남미지역에서 수입하는 것이리라. 그 기타국가의 수입액 9조7051억2천만 원과 미국의 11조 5827억 6천만 원을 더하면 그 금액은 21조2천878억8천만 원이다. 총 수입액의 42.8%를 차지한다. 대충 봐도 40%가 미국의 먹거리에 의존하는 형국이다.

농민 백남기는 노구를 이끌고
상경하여 정부에 항의 한 것이다.
아니 박근혜에게 항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이다.
쌀값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1차적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식량자급률이 21%에 이르는 나라가 선진국일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농사를 계속해서 망가뜨리고 있다. 통계청이 2021년 2월 발표한 2019년 농지면적은 158만1,000ha다. 이 중 논은 83만ha(52.5%)고, 밭은 75만1,000ha(47.5%)다. 2019년 농지면적은 2018년 159만6,000ha에서 0.9%인 1만5,000ha가 감소한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0년 171만5,000ha에 비해 13만4,000ha가 감소한 것이다. 2010년부터 매년 평균 1만3,400ha가 감소하고 있는데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앞으로 7년 후엔 농지 150만ha 선이 무너질 전망이다. 150만 ha는 식량자급의 마지노선을 의미한다. 만약, 미국·호주 등이 밀가루 수출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우리 국민 3분의 1은 굶어야 하는 지경이다. 요소수 사태가 벌어져 난리면서도 사람들은 식량 걱정은 하지 않는다. 요소수와 비슷한 다른 것들을 걱정할 뿐이다.

당시 농민 백남기는 노구를 이끌고 상경하여 정부에 항의 한 것이다. 아니 박근혜에게 항의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이다. 쌀값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1차적 원인이라 말할 수 있다.

“이제 함께 버텨주던 사람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가고 있다. 이웃이 사라지고 땅이 사라지고 있다. 고샅길 돌담이 힘없이 무너지는 황폐한 마을이, 손이 가지 못하는 버려진 땅들이 서럽게 우는데, 남아있는 농민들의 가슴은 타들어갈 수밖에. 언제고 생명의 먹거리를 우습게 여기다가 큰 코 다칠 것이라고 객기도 부렸다. 하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신자유주의 미친 바람 뿐이다. 자본과 권력의 가공할 위력 앞에 농사군, 농부는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난 농민으로 섰다. 세차게 밀려오는 바람 앞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구르다 말 일이 아니다. 이렇게 구르다 썩어갈 일이 아니다. 이렇게 발바닥에 밟혀 꺼꾸러져 먼지가 될 일이 아니다. 가진자들의 노래를 꺾어야 한다. 자본의 미친 광기를 맞 받아쳐야 한다. 권력에 온몸을 내던지며 우리가 사람임을, 우리가 생명임을 외쳐야 한다. 그래서 난 농민이다. 내 이름이 농민이다.”
-‘백남기를 위하여’ 중에서- 한도숙

그렇다. 백남기는 땅이 죽어가는 것을 두고만 볼 수가 없었다. 한국 농업이 이 지경이 돼가고 있다는 것을, 그는 생명의 지속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각성을 촉구하고자 나선 것이다. 50개국에 달하는 FTA, 쌀 전면개방, 수입농산물 범람, 이런 일들이 이어지면서 농촌과 농민들에게 패배의식이 드리우고 있다. ‘농업은 전망이 없다’, ‘이대로 무너지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만연했고 농사는 투기에 가까운 형태가 돼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단결된 힘으로 농정을 한 번 바꿔보자는 의미로 대규모 집회를 하게 됐고 백남기는 스스로 제단에 오른 것이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농민 공약이 담긴 걸개ⓒ박완주 의원실

농민을 아니 한국 농업을
걱정하는 위정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고 내뻗는 일에만 몰두했다

“경찰관이 직무중에 사망하거나,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다 사망하면 그들의 열악한 처우가 공론화되고 최소한의 해결 방안이 도출되지 않느냐”, “그런데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아 죽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벼랑 끝에 몰린 농민의 외침에 귀 기울여 주는 정부도, 정치인도 찾아볼 수 없다”고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이 일갈했다. 그의 말처럼 한 농민을 아니 한국 농업을 걱정하는 위정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은 오히려 공권력에 의한 타살이 아니라고 내뻗는 일에만 몰두했었다.

간간히 “우리농업 살려내라”는 외침이 들리기는 했어도 이내 인파에 묻혀버렸다. 사람들은 바로 정권 퇴 진에 몰입해 버렸고 백남기 농민 죽음의 의미는 사라져갔다. 개방농정이 시작 될 때만 해도 우리농업을 지키자며 방방곡곡에서 천만인이 서명하던 모습과는 한참 달라보였다. 국민의 90%가 농업을 살리는 데 필요하다면 세금을 더 낼 수도 있다고 했던 때로부터 20년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저 먹거리가 어디서 나서 어디로 흘러 자신의 먹이가 되었는지 관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2017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유지를 위한 추가 세금 부담 여부 농촌경제연구원 도시민 농촌인식조사 송성환 박혜진ⓒ농촌경제연구원

상황은 이러했다. 2012년 쌀 한 가마 가격은 12만 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쌀 개방시대를 대비한 정부의 연착륙 책이라고 했다. 국내 쌀값이 낮을수록 수입쌀과의 차이가 좁혀지고 이렇게 되면 고율 관세 때문에 국제시장과 갈등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게 연착륙이라는 거다.

박근혜는 강서구 88체육관에서
농업경영인들을 모아놓고
농정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서 쌀값 21만 원 인상
공약이 나온 것이다.

당시 쌀값이 개 사료값만도 못하다는 말이 농민들 사이에 유행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2014년 산지 쌀값은 80kg 한 가마에 14만 9천352원인데 반해 ‘홀리스틱’이라는 개 사료는 6.8kg에 3만 8천500원이니 kg당 가격을 비교하면 1천817원 대 5천661원이다. 1/3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러니 박근혜는 강서구 88체육관에서 농업경영인들을 모아놓고 농정 5대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서 쌀값 21만 원 인상 공약이 나온 것이다.

농약 지원, 비료 지원, 농기계도입 지원, 경지정리, 시설하우스 등장, 각종 정책지원금 등은 이른바 녹색혁명형 농업이었고 철저한 미국식 농업의 이식이었다. OECD 최고 수준의 한국농업의 집약성은 생산성 중심으로 흘러왔지만 한계가 명확했다. 2015년 한국은 고추 1kg의 생산원가가 1만 1천686원이지만 중국은 1천895원이다. 마늘은 2천49원 대 686원이고 양파는 334원 대 98원이다. 우리 농업이 세계 시장으로 편입되어 고도화된 지금의 성적표다. 이것이 바로 세계 농식품 체계로 빨려 들어가는 입구 정책 이었다.

정부의 정책과 국민들의 무관심은 백남기 농민을 살려내라는 함성에 싸늘해져갔다. 농민들의 데모대에 육교에 올라 박수치던 모습은 전설이 되어버렸다. 국민들의 시선은 애써 농업을 외면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농경연의 자료에도 2016년과 2017년 딱 한해 사이에 농촌을 유지하기 위해 세금부담 여부를 살펴봤는데 각각 54.6%와 53.8%로 1년만에 0.8%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데 10년 뒤면 절반 아래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원인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2017 도시민의 농촌에 대한 이미지 농촌경제연구원 송성환 박혜진ⓒ농촌경제연구원

그것 뿐 아니다. 국민들의 농촌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커져가고 있다. 살기 힘든 곳이라는 낙인이 찍힌 후 20년 동안 주거환경과 문화복지면에서 미흡하다는 평가만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이런 저변엔 농업을 단순하게 성장주의로 바라보고 경쟁력 우위정책을 펴나간 정부의 농정 방향 오류에서 비롯된다.

농가, 농업인구 변화추이ⓒ통계청

이는 농가수와 농업인구 변화추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2019년 현재 전체인구대비 농업인구비율이 4.3%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10년 전 5.9%에서 1.6%나 줄어들었다 그나마 농업종사자의 연령분포를 보면 65세 이상이 절반을 넘는 수치이다.

왜 농촌으로 새로운 생산인력이 투입되지 않는가. 백남기 농민이 죽음으로 지키려 했던 농업과 농촌은 그렇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하찮은 것이었는가. 한국고용정보원의 조사 결과 2020년 전국 시·군·구 중 46%, 105곳이 ‘소멸위험지역’이 되었다. 2019년에 비해 12곳이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2020년 새로이 여주, 제천, 무안, 나주 등 농촌이 위치한 지역의 소멸위험지수(‘한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수를 해당 지역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로 나눈 값’으로, 소멸위험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 지역이라고 정의한다)가 0.5 이하로 나타났다. 따라서 30년 후면 이들 지역이 사라질 것으로 보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함께
우리농업도 사망한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생명평화정신이,
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사회의 종착점이었고
생명 평화의 농업을 되살려내는
작은 불꽃이었음을 이 사회는 냉정하게
부인한 것이다.

“인간문명의 근본 토대는 단 6인치의 깊이에 불과한 토양층(표토)이다. 흙(humus)을 떠나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humans)이 아니다. 사실상 재생 불가능한 자원인 이 토양층은 오직 정성스럽게, 과욕을 부리지 않고 땅을 돌보는 사람들, 즉 토착농민들에 의해서만 보존될 수 있다. 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사회의 귀결은 파멸 뿐이다.

도시화·산업화가 아무리 ‘문명화’의 척도라고 하더라도, 땅이 죽거나 땅과의 유대가 끊어지면 인간은 조만간 사멸할 수밖에 없다. (중략) 그런 의미에서 땅의 성질을 잘 알고, 땅을 사랑하며, 땅을 보살피는 데 온 생애를 바치는 소농들이야말로 생태계와 인간다운 문명의 궁극적인 수호자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러나 소농을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농민들의 생계 문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땅을 살리는 문제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땅이 죽으면 만사가 끝이다.”
-‘시사인’ 제64호(2008. 12. 06), 김종철, ‘땅이 죽으면 만사가 끝이다’

2016년 11월 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백남기 농민 영결식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참가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김철수 기자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함께 우리농업도 사망한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생명평화정신은 김종철이 이야기 한 대로 농민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진 사회의 종착점이었고 생명 평화의 농업을 되살려내는 작은 불꽃이었음을 이 사회는 냉정하게 부인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백남기 정신으로 지난 시절의 농정적폐를 확실하게 처리하고 새로운 생명농업으로 나가겠다고 다짐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치적 잣대로 농업의 가치는 재단되었을 뿐이다.

건국대 교수 윤병선은 ‘살농(殺農)의 시대, 희망은 있는가’라는 글에서 ‘가을은 두려움의 계절’이 되어버렸다면서 이렇게 한탄했다. “언제부터인가 가을은 두려움의 계절로 되어버렸다. 농촌은 더욱 그렇다. 가을의 신명 나는 풍년가는 이미 박물관에 갇혀버린 지 오래고, 봄과 여름의 고단함을 위로해주던 가을은 한국 농촌에서 사라져버렸다. ‘내년에도 농사짓자’는 외침이 가을의 절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절규의 한가운데에서 농민 백남기는 떠났지만, 살아남은 농민들은 ‘우리가 백남기’라며 그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보성에서 농사짓던 농민 백남기가 작년(2015년) 11월 서울에 올라간 것은 끝 모르고 추락하는 쌀값으로 표상되는 동촌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 백남기 농민이 317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이에 쌀값은 더 폭락했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더 많은 생산 증가의 욕망을 가차 없이 투영하는 사이, 농사의 가치는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버렸다. 도시인들은 아스팔트에 쭈그려 앉아 팔뚝질하며 농정을 규탄하는 농민들을 도로교통에 방해되는 존재로나 취급한다. 그런 인식이 조만간 부메랑으로 자신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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