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인 줄 알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결국은 습관 때문이다. 나의 경우 약속 장소가 멀면 오히려 약속 시각보다 일찍 도착하는데, 거리가 가까울수록 늦는다. 가깝기 때문에 시간에 딱 맞춰 나가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늦게 오거나 급한 전화라도 받게 되면 타려던 차를 놓쳐, 십중팔구 약속 장소에 늦게 도착한다. 그때마다 ‘좀 일찍 나와야지’ 하지만 또다시 잘못을 반복한다.
일터에서 안전을 지키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아주 위험한 일은 사용자나 작업자가 온 신경을 집중해 일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가 없지만, 매번 반복하는 일은 뻔한 일이라 생각해 방심하다 사고가 난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방심하지 말고 일하라’는 조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 번을 집중해서 일하다 한 번이라도 방심하면 사고가 나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한국에서 올해 9월에만 4명의 노동자가 건물 외벽 유리창 청소를 하다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보조 밧줄 등 이중장치가 있었다면 지금도 살아있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방심하지 말라는 윽박 대신 안전장비를 철저히 착용하도록 하고, 안전 시설을 하는 등의 시스템적 조치가 필요하다.

일을 처음 시작한 노동자가 많이 다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위험한 일인 줄 모르고 일하다 변을 당하는 것이다. ‘위험한 일인데 그것도 몰랐냐’고 책임을 떠 넘길 수도 있겠으나 사람의 인지 능력이 모두 똑같지 않음을 모르고 하는 어리석은 비난이다. 특히, 일 경험이 짧을수록 잠재된 위험을 알기 어렵다.
지난 10월 사망한 특성화고 학생 고 홍정운군이 납덩이의 잘 무게를 알았더라면 자신의 몸이 통째로 가라앉을 요트바닥으로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잠수교육을 한 번이라도 받고 일했더라면 지금도 웃으며 미래를 꿈꾸는 청년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 일하는 작업자에겐 ‘그것도 모르냐’고 말할 게 아니라 반복해서 위험 요인을 알려주고 일정 기간 동안 2인 1조 작업을 하며 선임자의 안전 노하우를 알려주어야 한다.
말로만 조심하라고 하고 제대로 교육하지 않고 일을 시킨 결과, 2021년 상반기 사고 사망자는 47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명이 더 늘었다. 사망자의 절반 이상인 50.6%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전체 사고사망자 중 81%에 해당하는 384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으며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아닌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3.1%가 늘어난 181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다시 습관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자. 나쁜 습관을 고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극약처방을 내리는 것이다. 끊기 어렵다는 담배, 서서히 줄이는 것은 어렵고 단박에 끊어야 한다고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이 말한다. 이것도 사람 성격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결국 잘못된 습관을 중단하려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의미다. 일터에서의 안전도 마찬가지다.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고 계속 말하고,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받는다고 주의를 줘도 사망사고는 줄지 않고 되레 늘어났다. 그러니 이제 시스템을 바꾸어야 할 때이다.
산업재해를 줄이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시스템 중 꼭 필요한 것이 ‘산업안전보건청’이다. 정부가 2020년 지금의 질병관리청을 만들었기에, 더 감염병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신속하게 산업안전보건청을 설립하여 산업안전과 직업병 예방, 그리고 산재 보상과 치료를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노동자의 생명을 지키는 임무를 맡겨야 한다.
조직 하나로 산업 재해를 확 줄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공무원을 늘린다고 될 일이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다. 그럴지라도 지금처럼 무기력하게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죽는 일을 반복해서 지켜볼 수 만은 없다. 산업안전보건청을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소규모 사업장에 대한 안전관리를 강화하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엄격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소중한 노동자의 목숨을 지켜야 한다.

얼마 전 만난 대기업의 한 임원은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정부가 하는 일이 뭐냐. 사고는 회사가 다 컨트롤 할 수 없는 개인의 부주의도 많은데, 사고났다고 기업 임원을 처벌하면 누가 임원하고 싶겠냐. 이젠 아무도 안전 담당 임원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날 그분의 하소연을 듣고 중대재해처벌법이 노동자의 목숨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을 사리분별 못 하는 회사 임원들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조직을 강화하여 중대 재해를 체계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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