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위험천만한 윤석열 외교안보 구상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지난달 말 외교안보 비전을 발표했다. 지난 12일 외신기자클럽 간담회를 통해서 이 분야에 대한 정책이 윤곽을 더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9월에 발표했던 두서없는 외교안보 공약에 비해서는 그래도 좀 더 정돈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깜짝 놀랄 만큼 위험한 주장이 곳곳에 눈에 띄고 각론의 모호함은 불안을 더 키우는 것도 사실이다.

윤 후보는 9·19 남북 군사합의를 파기할 수 있다고 했다. 윤 후보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명분으로 “집권하면 북한에 9·19 합의 이행을 촉구하고, 그래도 변화가 없을 경우 파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9·19 군사합의는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낳은 성과로 지상과 해상, 공중에서 남북이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민은 이 합의 뒤에 남북이 전방초소를 철거하는 역사적 장면을 목격했다.

야당 대선 후보로서 반 문재인 기조를 더 선명하게 내세우고 싶은 마음은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지켜야 할 기본은 있다. 역대 보수 정권조차도 적어도 국가 간 합의를 놓고서는 이렇게까지 가볍고 무책임하게 다루지 못했다.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서 기왕의 군사합의의 의미와 중요성을 강조해도 모자랄 판인데 먼저 나서서 언제든지 파기가 가능한 수준으로 격하하는 윤 후보의 발언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약 ‘합의 파기’가 현실이 된다면 단순한 기싸움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력충돌 가능성이 대두될 일이다. 굳이 대선 이후를 가정하지 않더라도 주변국의 관심이 쏠린 주요 대선 후보의 입에서 그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불안을 부채질하기에 충분하다.

정치적 공방과 정책은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는 무리수를 낳을 수밖에 없다. 윤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에 대한 평가를 묻는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의 질문에 “이 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거의 망가졌다”고 평가하며 “대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너무 끌어들였다”고 답했다. 한일관계 악화의 원인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 한국 정부 때문이라는 주장은 일본 극우정치세력들이 펼치는 적반하장의 주장이다. 현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서라면 일본 극우의 주장마저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태도는 위험하다.

윤 후보는 지난달 공개한 외교안보 비전에서 현 정부의 외교를 북한과 중국에 대해서는 ‘굴종외교’, 미국과 일본에 대해서는 말과 행동이 다른 ‘인지부조화 외교’로 평가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상호존중’, ‘정경분리’, ‘공동이익’의 원칙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미·중 간의 갈등이 지속되는 현실에서 미국의 대외정책을 그대로 추종하면서 중국과 ‘정경분리’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다. ‘균형외교’라는 명분조차 없다면 미·중 양국이 갈등하는 틈바구니에서 무엇을 버팀목으로 국익을 지킬지 뾰족한 대책도 밝힌 것이 없다. 지금까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설익은 차별성만 부각하려다가 벌써부터 국제적인 불안감만 키우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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