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신청 뒤 2년, 너무 늦은 현장조사...참여 못하고 숨진 암투병 노동자

반올림 “언제까지 산재인정 위해 수년을 기다려야 하나”

반올림 추모글ⓒ반올림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 노동자 故 여귀선 씨가 직업성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두 달 만에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암으로 사망했다. 여귀선 씨와 같은 사업장에서 일하다 뇌종양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해오던 박찬혁 씨다. 그는 37세의 이른 나이로 지난 28일 생을 마감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은 29일 이같이 밝혔다.

반올림에 따르면, 故 박찬혁 씨가 삼성디스플레이 천안사업장에서 담당했던 일은 ‘공정자동화 설비엔지니어’로 모든 공정을 돌아다니며 설비유지보수(PM)를 하는 업무 특성상 각 공정에서 사용되는 화학물질과 방사선 그리고 높은 세기의 전자파 등 다양한 유해인자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 LCD 제조공정에서만 120여 종이 넘는 유해화학물질이 취급된다.

반도체·LCD 산업에서 이미 많은 뇌종양 피해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바 있다. 2019년 안전보건공단이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등록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KEC·DB하이텍의 전·현직 노동자 20만1057명을 대상으로 암 발생과 사망 위험비를 추적 조사한 결과에서도 ‘뇌 및 중추신경계암’의 위험비가 다른 노동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런데도 개별 산재 여부를 밝히기 위해 2년 넘게 재해조사가 이루어지는 게 현실이다. 故 박찬혁 씨에 대한 현장 방문 역학조사도 산재 신청 후 2년 만에 이루어졌다.

이에 반올림은 “개별 산재 여부를 밝히기 위해 2년이나 넘게 재해조사를 하는 것은 신속한 보상이라는 산재보험 취지에 어긋나는 너무 긴 조사 기간”이라고 비판했다.

반올림은 이날 입장문에서 “고인은 투병 중 꼭 필요했던 산재보험 지원을 받지 못했고, 유해하고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일했기에 발생한 산재임을 인정받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라며 “지난 11월 12일 산재 신청 2년 만에 현장 방문 역학조사가 진행됐지만, 정작 당사자는 병세가 악화되어 참여하지도 못했다”라고 했다.

이어 “현장 조사는 고인이 실제 일했던 열악한 천안사업장 대신 아산사업장에서 이루어졌다”라며 “그마저도 제품생산이 되지 않는 멈춰진 라인을 보여주는 방식의 조사였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사가 보여주는 대로만 하는 형식적인 조사로 어떻게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밝힐 수 있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반올림은 “지난 9월 19일 숨진 여귀선 님도 마찬가지로 2019년 산재신청을 했지만, 올해 9월 돌아가실 때까지 역학조사가 마무리되지 못했다. 언제까지 산재인정을 받기 위해 역학조사를 이유로 이렇게 긴 시간이 걸려야 하는 건가”라고 한탄하며, 직업성 암 발생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예방 대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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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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