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매칭’ 전기차 보조금, 확보한 예산도 활용 못 해

지방비 조기 소진으로 국비 지급 불가…일부 지자체 할당량 못 채워 정부 목표치 미달

전기차 보조금 자료사진ⓒ현대자동차

전기차 보조금이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환경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보조금 ‘미스매칭’ 탓에 확보한 예산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형국이다. 지역에 따라 ‘선착순’으로 배분되는 예산이 떨어지면 남들보다 수백만원 비싸게 사야 하거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부는 남는 보조금 주인을 찾아주지 못하고 묵히고만 있다.

30일 환경부 저공해차 통합누리집에 따르면, 보조금 예산 규모가 상위 5개 지자체인 서울시, 부산시, 인천시, 대전시, 제주도 모두 올해 확보한 보조금이 다 떨어졌다. 전국 161개 지방자치단체 중 113곳이 비슷한 처지다.

전기차 보조금은 국비와 지방비로 구성된다. 둘을 합해 지급하는게 원칙이다. 둘 중 하나가 떨어지면 나머지 하나가 남더라도 보조금은 지급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 있다. 보통 국비는 남고 지방비는 모자라 보조금은 전기차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방비 보조금이 조기 소진될 경우 국비 단독으로는 보조금 지급이 안 된다. 국비 보조금은 중앙정부가 각 지자체에 교부하는 방식인데, 보조금법상 반드시 지방비와 국비를 매칭해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보면 예산을 편성해 놓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불합리가 발생하는 셈이다.

소비자도 불만이다. 지방비가 소진된 지자체에서 국비만 지원받고 차를 구매하려 해도 보조금을 아예 받을 수 없다. 내년 국비 보조금이 600만원으로 올해보다 200만원 내려가고 서울시 지방비 보조금이 200만원으로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소비자는 올해 국비만 지원받아도 내년에 지방비까지 지급받는 것과 동일하다. 국비와 지방비 보조금이 더 떨어지면, 오히려 올해 국비만으로 차를 사는 게 더 싸다.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 지자체 지방비 보조금을 환경부가 통합 관리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지자체별로 예산 소진 상황이 달라 국비와 지방비가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니, 환경부가 보조금을 총괄하면서 조율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방비가 남는 지자체의 재원을 지방비가 모자란 지자체로 넘기고 국비와 매칭해, 보조금 수혜자를 늘릴 수 있다.

지자체별 전기 승용차 지방비 보조금(2021년 1월 기준)ⓒ환경부/현대자동차

예산 미스매칭 왜 발생하나

국비는 중앙정부 예산이다. 환경부는 올해 보조금을 1대당 최대 800만원으로 산정했다. 지방비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자체 예산 능력과 소비자 수요를 고려해 결정한다.

전기차 등록 대수가 전국 3위인 제주도는 전기 승용차 보급 목표를 2,850대로 잡고 1대당 최대 지방비 보조금을 450만원씩 지급한다. 국비 800만원에 지방비 450만원을 더해 최대 1,25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반면 인구도 적고 전기차 수요가 많지 않은 강원도 철원군, 충남 태안군, 전남 해남군 등 소도시는 1대당 지방비 보조금 단가가 840만~520만원으로 비교적 높지만, 지자체별 지원 대수는 50대를 밑돈다.

보조금 '미스매치'는 정부 정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도 문제다.

지자체의 보조금 규모는 환경부 전기차 보급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환경부가 목표로 한 국비 보조금 규모는 12만 1천대다. 이 중 승용차가 7만 5천대고, 나머진는 화물차, 이륜차, 승합차 등이다. 전기차 보조금 예산은 전년 8,174억원에서 1조 230억원으로 늘렸다. 환경부는 예산에 편성한 국비 보조금을 각 지자체 수요에 맞게 배정한다.

현재까지 전국 지자체가 보조금 접수 공고를 낸 전기 승용차 물량을 합산하면 약 6만 1천대 수준으로, 정부 목표치 7만 5천대에 미달한다. 지자체가 환경부 할당량만큼 보조금을 편성하지 못하면서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는 것이다.

지자체는 환경부 할당 규모를 지방비 예산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할당 규모를 정할 때 지자체별로 수행한 수요 조사를 반영하기는 하지만, 전기차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다 보니 지자체 수요 조사 결과보다 할당 규모가 커지는 게 현실이다.

부산시는 올해 보조금 물량을 6,225대 할당받았다. 부산시가 편성한 상반기 보조금 지원 물량은 3,500대다. 환경부 할당량에 미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하반기 2천대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정된 예산에서 지방비 보조금을 꾸려야 하는데, 본예산에서 환경부 할당량에 대한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설명이다. 실제 부산시는 지난 7월과 11월 추경을 통해 보조금 예산을 추가로 확보했다.

추경과 함께 1대당 지방비 보조금 단가를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병행하면서 보조금 지급 물량을 늘리는 사례도 있다.

서울시가 대표적이다. 연초 전기차 보급 물량을 약 1만 1,800대로 잡은 서울시는 7월에 전기 승용차 접수가 마감됐다. 예산 조기 소진으로 보조금 지급이 어려워지자, 추가 예산을 배정하는 동시에 1대당 지방비 보조금 단가를 기존 4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낮췄다. 이렇게 확보한 보조금 지급 추가 물량은 1만 1,200대다.

당시 서울시 측은 “전기차 보조금 축소는 다양한 신차 출시로 인한 급격한 수요증가 상황에서 구매자가 보조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임을 양해 바란다”고 전했다.

다만, 보조금 단가 축소는 지자체가 섣불리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못 된다. 한 달 새 찻값이 수백만원 변동되는 데 대한 소비자 반발이 우려돼서다.

부산시와 서울시처럼 추경을 통해서라도 보조금 지급이 가능한 지자체도 있지만, 일부 지자체는 예산을 확보하지 못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지자체가 보조금을 일부 부담하도록 하는 건 지역 환경 개선에 지자체가 동참하도록 해 중앙정부 예산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면서도 “지방비 조기 소진에 따른 불합리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가 지자체 보조금 예산을 모아 통합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며 “보조금 불합리 상황을 지금 개선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문제가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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