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화살촉이 되지 않기 위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스틸컷ⓒ넷플릭스

개인적으로 피가 낭자하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며 빔을 쏘는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주요 대사를 외우는 글로벌 K드라마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원작도 보지 않은 ‘지옥’은 이유없이 끌려 공개된 날 퇴근길에 봤다. 다행히 통통 뛰며 등·퇴장하는 지옥사자들은 생각보다 귀여운 면이 있었다. 역시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화살촉’의 폭력을 눈 뜨고 보기 어려워 몇 차례 화면을 정지시켰다. 그들이 휘두르는 물리적 폭력, 야구방망이나 고문, 심지어 불을 이용한 살인보다 끔찍한 것은 가차 없는 신상공개와 인격살인이었다. 지옥사자의 가공할 유혈폭력은 초현실적이라 실물감이 적었지만, 화살촉의 인터넷 라이브를 통한 실시간 폭력선동은 극현실적 타격감을 줬다.

자연스레 수년간 극악해진 사회적 폭력과 피해자들이 떠올랐다. 가장 최근 사례는 윤미향 의원일 것이다. 10여년 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취재 빌미로 찾아가 늘 바쁜 윤미향 의원(당시엔 대표)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겉핥기로 수요시위와 정대협을 알았는데 이해를 더 하게 된 시간이었다. 돌아보면 그때 한두 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

윤미향과 정의연은 어느날 거악이 됐다. 취재했던 기자들도 사람인지라 지난해 봄의 압도적 분위기에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례로 윤미향 의원과 정의연의 통장이 섞여 사용된 적이 있다고 알려졌을 때 기자들은 횡령, 갈취, 돈세탁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당부(當否)를 논하기 앞서 급여는커녕 사재나 사비를 털어 단체를 유지했던 이들과 일상을 버리고 사업을 감당했던 이들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오래 전 사라진 존재하지 않는 사례로 여겼을 수 있다. 차분하게 접근하면 메울 수 있었을 인식의 간격이 어느 순간 바다 건너처럼 멀어졌다.

윤미향 의원(과 그의 정의연 활동)은 재판 중이다. 최종적 사법 판단에서 유죄에 해당하는 일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이 윤곽을 드러내며 이미 과대포장이 걷히고 있다. 공소시효 10년의 활동을 뒤진 검찰의 범죄기록에는 2천원짜리 지출도 있다. 윤미향과 전현직 정의연 관계자들, 전국에서 연대했던 이들은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건건이 영수증더미와 서류박스를 뒤졌다고 한다. 누구는 잊었겠으나 아픈 이들은 아직도 절실하다.

‘화살촉’이 무지막지한 것은 화살이 박히는 곳이 나무 판대기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이다. 언론도 자칫 잊기 쉬운 일이다. 과태료나 범칙금을 낼 착오와 비윤리적 부패범죄의 차이는 너무 크다. 결국 순정한 활동가 한 분이 안타까운 일을 당하셨다. 아이러니하게 공세를 주도했던 곽상도 전 의원은 ‘50억원’에 연루돼 사법처리를 앞두고 있다.

화살을 날리는 것은 순간이지만, 이를 빼내고 치료하는 것은 간단치 않다. 지금은 키보드와 마우스로 바뀌었지만, 오랫동안 언론을 상징한 것은 펜이었다. 펜 끝이 화살촉과 닮았다. 보도가 누군가의 진실을 소멸하지 않도록 나부터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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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철 기자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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