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저울] 정치적 열정과 냉정 사이에서

최근 본격적으로 여당과 야당의 대선후보가 선출되면서 여론조사 등 각 후보들의 정치적 비전과 일상이 포털사이트에 매일 올라오고 있다. 사람들을 만나도 각자 지지하는 후보들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곤 한다. 그러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비판하는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바로 대리난타전(?)이 벌어진다. 다들 믿고 있는 사실이 진실이길 바랄 테니 후보들이 주장하는 공약이 공약(空約)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 열망과 욕구를 이슈화시켜 권력의 자리에 오른 후 공적 가치를 수호하고 지키기보다 현실의 장벽을 핑계 삼아 사적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던 탓일 게다.

대통령 선거부터 지자체 선거에 이르기까지 대의정치를 제도화한 정치문화 속에서 우리는 정치적 열정과 냉정 사이를 왔다 갔다 하거나 때로는 냉담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특정 권력 카르텔이 공적 가치를 추구하고 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할 때 너나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그 권력을 끌어내린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믿었던 정권에 실망한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스스로 새로운 시대의 장을 연 역동적인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다. K-pop에 열광하는 문화적 현상을 연구하는 외국의 평론가들조차 한국문화가 세계를 열광시킨 현상의 기저에는 민주화를 향한 역동성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4·19, 5·18, 6월 항쟁, 촛불항쟁 등 수많은 항쟁을 경험해왔다. 숨 가쁜 현대사는 영광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아픔의 역사이다. 4.19 의거는 박정희 군사쿠데타로 좌절됐고, 5.18 민주항쟁은 전두환 정권으로 무너졌으며, 6월 항쟁은 노태우 군사정권의 재집권으로 이어졌다. 여전히 이 나라를 지배하는 기득권은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고 민중들이 지향하는 세상은 그리 간단치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요즘 포털사이트나 보수 언론들의 보도 양태를 보면 요상하다. 마치 ‘기울어진 운동장 논리’를 보는 듯하다. 사실을 사실로 보도하지 않고 소위 ‘마사지’된 이미지로 정보를 소비하면서 진실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과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소비하는 사람만 존재한다. 이미지화한 권위에 의미를 부여하고 열광하면서 심지어 이것에 복종하라고 한다. 이미 편향되어 기울어진 언론인에게 무엇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일까.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조국 구속, 공수처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시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복종을 요구하는 권위의 힘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알고자 ‘권위에 대한 복종실험’을 했다. 이 실험은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일이나 수백 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도 북한군의 만행이라고 주장을 한 전두환, 그리고 이들에게 맹종하는 사람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단서가 된다.

밀그램은 지역 신문에 ‘예일대학교에서 시간 당 4달러, 기억에 관한 연구에 참여할 사람 구함’이라는 광고를 냈다. 연구에 참가한 40여 명의 사람들은 처벌이 기억에 미치는 효과를 조사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문제를 내는 선생 역할을, 또 다른 일부는 문제를 푸는 학습자 역할(참여자로 위장한 연구자)을 맡았는데, 문제가 틀릴 때마다 전기 충격을 주라는 말을 듣는다.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은 학습자 역할을 맡은 사람을 건너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전기가 통하는 의자에 묶고, 문제를 틀릴 때마다 15V에서 450V까지로 서른 개의 버튼을 차례대로 올린다.

“과연 참여자 중 450V까지 버튼을 누르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질문에 밀그램을 비롯한 실험진은 0.1퍼센트에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험이 진행될수록 전기의 강도가 높아지고 학습자 역할을 맡은 사람은 소리 지르며 여기에서 꺼내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연구진은 “계속하세요”라는 지시를 내리며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실험 진행을 위해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당신에게는 선택권이 없다. 반드시 해야 된다”라고 요구했다. 300V가 넘어가자 학습자 역할을 맡은 사람은 고통스러운 나머지 대답조차 하지 못했다. 선생 역할을 맡은 사람들 중에 더 이상 못하겠다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들도 있었지만 450V까지 버튼을 모두 올린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끝까지 버튼을 누른 사람들은 40명 중에 26명이나 되었다. 무려 65퍼센트나 되는 비율이었다. 450V 전기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이들은 버튼을 눌렀을까?

밀그램은 이 실험에서 사람들이 권위자의 지시에 얼마나 쉽게 지배받는지, 권위 앞에서 인간의 도덕과 양심이 얼마나 손쉽게 허물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사실 도덕과 양심도 사회적 영향력의 산물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도덕과 양심이 배태되기에 어느 사회를 지향하는지, 어떤 사람들과 사는지에 따라 도덕과 양심도 결정된다.

시민들이 4.7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6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백병원 사거리에서 한 서울시장 후보의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2021.04.06ⓒ공동취재사진

기득권 카르텔은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권력자에 복종하라고 요구한다
기존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에 복종하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내년 3월이면 변이 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거리의 정치가 축소화된 사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맞는다.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유토피아를 꿈꾸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정을 불어넣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을 빼앗겼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와 함께 하면서 일상의 상실조차 애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열정을 창출해야 된다. 기득권의 카르텔이 더욱더 강고하게 뭉치며 스스로에게 권위를 부여하고 이미지화한 권력자에게 복종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복종의 결과로 전두환을 찬양하고 옹호하는 세력에게 권력을 맡길 수는 없다. 우리는 이미 박정희와 전두환, 이명박과 박근혜를 통해 이들의 정치적 결과를 보아왔다. 자신이 무엇을 말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도 모른 채 권력놀음에 취해 후보역할 놀이나 하는 사람에게 우리의 미래를 선뜻 맡길 수 있는가?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할지 궁리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우리나라에 자칭 재림예수를 주장하는 사이비 종교인이 50명을 넘는다고 한다. 전문 정치인들은 각자 구세주가 되어 국민들에게 구원을 약속하고 정치는 팬덤화가 가속화될 것이며 한바탕 굿판을 벌이는 대선판이 될 것이다. 기존의 권위와 사회적 영향력에 복종하는 사람이 아니라 깨어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타인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 포털사이트를 떠다니는 헛된 기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지금 여기에서 깨어 있는 정신으로 내 삶과 미래를 스스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를 기득권 카르텔의 허튼 수작에 빼앗기지 않는다. 각자 꿈꾸는 세상이 있는가? 그렇다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주장해보시라. 우리 모두 자신의 열정을 끌어올리며 깨어있는 씨알이 될 때 미래는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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