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량용 반도체 수급 위협하는 변이 바이러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

코로나19 재확산 불확실성 지속…자동차 전동화로 반도체 수요도 증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인근 수출 선적장ⓒ뉴시스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이른바 ‘마이너스 옵션’으로 출고 대기 기간을 줄이고 있다. 언제 어디서 바이러스가 재확산할지 몰라 전망이 불투명하다. 자동차 전동화로 반도체 수요는 늘고 공급 확대는 제한되는 구조도 수급 불균형을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5개사(현대차·기아·르노삼성·한국지엠·쌍용차)는 지난달 총 57만 3,758대를 팔았다. 전년 동기 67만 4,725대보다 15% 줄었다. 지난 7월부터 5개월 연속으로 하락세다.

완성차 판매 감소 주된 배경은 반도체 부족이다. 주문은 밀리는데 반도체가 없어 차량을 출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신차 구매정보 플랫폼 겟차가 조사한 지난달 출고 대기 기간 조사를 보면, 현대차 아반떼는 5개월, 아이오닉5는 8개월, 싼타페 하이브리드는 9개월 이상이 걸린다. 제네시스 GV60은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완성차 업계 타격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동차 시장조사업체 마크라인스 조사 결과, 세계 주요 완성차 기업의 9월 누적 생산 대수는 5,571만 4천대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동기(6,786만 3천대) 대비 17.9%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5,200만대 수준이던 지난해보다는 소폭 개선됐지만, 여전히 코로나19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완성차 업계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개수를 줄이기 위해 일부 옵션을 배제한 채 출고하면서 공급난에 대응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5월부터 아이오닉5에서 파킹어시스트, 4륜구동(4WD), 디지털 사이드미러 등 옵션을 뺄 경우 출고 대기 기간을 줄일 수 있다고 소비자에게 안내하고 있다.

외국 기업도 마찬가지다.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는 향후 무상 추가해주는 조건으로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기능, LTE 통신 모듈, 무선 충전 등 일부 편의 장치 없이 출고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도 쉐보레 실버라도와 GMC 시에라에서 고음질 HD 라디오 옵션을 제거했다. 일부 차종에서 연비 향상 장치를 빼기도 했다. 테슬라는 모델3와 모델Y에서 C타입 USB포트를 뺐다.

반도체 공급난은 완성차 업계가 수요 예측에 실패하면서 야기됐다.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될 것으로 본 완성차 기업은 반도체 주문을 줄였는데, 지난해 말부터 자동차 수요가 회복됐다. 이미 반도체 업계는 모바일과 PC용 반도체 생산을 늘렸던 터라, 차량용 반도체 주문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재해와 사고가 겹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지난 2월, NXP와 인피니언 공장이 있는 미국 텍사스가 한파로 정전됐다. 3월에는 르네사스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TSMC도 대만 가뭄으로 생산 차질을 겪었다. 르네사스, NXP, 인피니언 등 차량용 반도체 기업은 설계와 생산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면서, 일부 물량을 TSMC와 같은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에 맡긴다.

동남아시아 확진자 증가도 큰 타격이다. 지난여름 봉쇄령이 떨어졌다가 10월 들어 단계적 완화에 들어간 말레이시아에는 반도체 후공정 기업 공장이 밀집해있다. 반도체 생산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리는 공정 이후 테스트와 패키징 공정을 거친다. 패키징은 반도체 칩을 인쇄회로기판(PCB)에 올려놓고 저항기, 콘덴서, 인덕터 등 구동에 필요한 부품과 연결하는 작업이다. 반도체 열 관리도 패키징 영역이다.

내년 들어 사태가 점차 완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유진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은 2022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나, 생산 차질 강도는 올해보다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도체 부족 현상을 심화시킨 텍사스 한파, 르네사스 화재, 대만 가뭄 등 일시적 요인이 해소되고 있다는 게 근거다.

말레이시아 내 확진자 수 감소로 반도체 공장이 정상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 9월 확진자 수가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위드 코로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증권가는 내년 완성차 업계 실적 개선을 점치고 있다. 유안타증권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현대차 내년 판매 대수를 올해보다 5% 이상 증가한 417만대로 추정하면서 “반도체 수급 이슈가 내년 1분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나, 생산 차질에 미치는 영향은 완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투자증권도 반도체 공급 차질 완화로 증산 본격화가 기대된다고 전했다.

다만,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전망은 코로나19 사태 안정화를 전제로 한다. 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할 경우 반도체 수급 정상화가 멀어질 수 있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어 여전히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상황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반도체 부족은 이번, 다음 분기에 국한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언제 어느 지역에서 재확산이 발발할지 알 수 없어 예측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종류 및 적용 분야ⓒ한국자동차연구원

전기차·자율차 반도체 수요 증가도 ‘현재진행형’

코로나19와 자연재해는 반도체 공급난을 야기하는 일시적인 요인이다. 구조적인 요인도 있다. 앞으로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가 늘어나는 반면, 차량용 반도체는 모바일과 서버에 비해 높은 안전성이 요구되고 마진도 적어 신규 진입이 제한된다.

내연기관차에는 평균 200~300개의 반도체가 탑재되는데, 전기차에는 1천개, 자율주행차에는 2천개 이상이 탑재될 전망이다. UBS에 따르면, 내연기관차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평균 400달러 수준인데, 전기차는 1천달러 수준이다. 자율주행 전 단계인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이 더해지면 650달러가 추가된다. 테슬라 모델3에는 약 1,700달러의 반도체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수요 증가는 현재진행형이라는 얘기다.

ADAS 적용은 전기차로 국한되지 않는다. 내연기관차에서도 ADAS 확대는 자동차 상품성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ADAS를 비롯한 안전장치 관련 반도체는 차량용 반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가장 크다. 내비게이션에셔 차량 내 전자결제 시스템,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디지털 클러스터로 범위가 확장 중인 인포테인먼트 관련 반도체 비중도 17%에 달한다.

테슬라는 여러 장치를 관할하는 반도체를 최대한 통합하는 방식으로 반도체 개수를 줄였다. 자동차 각 장치에는 전자제어기(ECU·Electronic Control Unit)라는 컴퓨터가 딸린다. ECU는 센서에서 신호를 받아 판단하고 제어 명령을 구동 장치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가령 차선유지지원 장치의 ECU는 카메라와 레이더에서 들어온 정보를 바탕으로 핸들을 꺾을지, 얼마나 꺾을지 계산해 조향 장치로 명령을 보내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자동차에는 60~100개의 ECU가 들어간다. 테슬라는 중앙집중형 설계를 통해 ECU를 4개 수준으로 줄였다.

컴퓨터 개수가 줄어드니 반도체 개수도 줄어든다. ECU에서 연산을 담당하는 부품은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Micro Control Unit)이다. 부족 현상이 가장 심각한 반도체다.

차량용 반도체 기능별 비중을 보면, MCU가 30%로 가장 크다. 속도와 온도 등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변환하는 회로 반도체, 입력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 통신 반도체 등이 뒤를 잇는다.

실제 테슬라는 올해 3분기 차량 인도 물량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며 6분기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테슬라가 경쟁사보다 반도체 공급난 위기를 더 잘 극복했다”고 평가했다.

다른 완성차 기업은 반도체 업계와 협력 관계를 형성해가고 있다. 포드는 최근 지난달 글로벌파운드리와 반도체 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포드와 글로벌파운드리는 자율주행, 데이터 네트워크, 배터리 관리 등 3가지 분야 반도체를 공동 연구할 계획이다.

포드는 이번 계약을 통해 글로벌파운드리로부터 반도체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파운드리 기업의 생산설비 구축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 이번 계약으로 당장의 반도체 부족을 벗어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도, 향후 발생한 공급난 리스크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GM도 퀄컴, NXP, TSMC 등 7개 기업과 MCU 반도체 공동 개발을 추진한다. GM 측은 “새로운 MCU는 현재 개별 칩이 처리하는 많은 기능을 통합할 것”이라며 “비용과 복잡성을 줄일 뿐 아니라, 품질과 예측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전기차와 자율주행 확산까지 고려하면 반도체 공급난을 예측하기는 더 난해해진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연기관차만으로 예측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전기차와 자율주행이 얼마나 빠르게 진척될지 고려해야 하는데, 종합적인 전망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파운드리 설비 투자로 증산이 뒷받침돼야 공급난이 완화될 수 있다”며 “올해만큼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니라도, 2023년까지는 차질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테슬라 ‘스마트 호출(Smart Summon)’ 기능ⓒ테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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