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사유] 주민들은 어떻게 싸움꾼이 되었나?

지난 여름 센터에 상담전화가 왔다. 경기도의 한 시에서 협치 활동을 하고 있는 시민 위원들이 시의 정보공개를 개선하기 위한 포럼을 기획하고 있어 조언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며칠 뒤 위원들이 한 시간 여를 달려 사무실로 찾아왔다. 한 분은 비공개 사유에 대한 법조항들을 술술 꿰고 있었는데, 시를 대상으로 수십 건의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비공개에 대한 싸움도 부지기수로 하다보니 행정을 조금이라도 변화시켜보자는 마음에 협치 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정보공개가 정말 필요한데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반영시킬 수 있을지 깊은 고심이 느껴졌고, 이야기가 끝나니 순식간에 2시간이 흘러가 있었다.

얼마 전 긴 준비 끝에 열린 포럼에 나도 발표를 요청받아 참석했다. 포럼에 온 시민들은 정보공개에 대해 조례 강화, 편법적인 공개 회피 규제 방법 등 아주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필요한 정보를 공개 받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높은 이해와 관심에 놀랍기도 하고, 알 권리를 확대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의지가 크게 와닿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사실 일상생활에 바쁜 대부분의 시민들은 지자체 홈페이지를 살펴보는 일조차 드물기 때문에 반가운 마음도 컸지만 한 편으로 그간 이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해당 시는 난개발로 인해 토건 회사와 주민들 간의 갈등이 지속되어왔고, 그 과정에서 시의원, 시청 공무원, 시장 등의 비리가 적발되어 여러 번 구속사건 발생했던 곳이었다. 역대 6명의 시장 중 5명이 정해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실형을 선고받는 '잔혹사'가 있어왔고, 지난 20년 동안 주민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난개발로 인한 피해를 구제받기 위해 시를 상대로 각종 소송과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주민 여러 명이 '공무집행방해죄', '명예훼손죄' 등으로 형사고발을 당해 '전과자'가 되기도 했다.

용인시장 재직 당시 부동산 개발업체에 인허가 편의를 제공하고 수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정찬민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표결 전 신상발언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09.29.ⓒ뉴시스 / 공동취재사진

주민들은 왜 소송꾼이 되었나?

산 정상 부근 급경사까지 타운하우스가 들어서 산사태의 위험에 노출되고, 환경영향평가와 기반 시설 규제를 피해 가려 하나의 아파트가 다섯 개로 쪼개져 세워졌다. 난개발과 토건 비리가 수 십 년째 지역사회에 심각한 피해를 입혀왔음에도 불구하고, 개발허가가 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주민들이 감시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주민들은 일단 허가가 이뤄지기 나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도, 대응할 수도 없다.

주민들은 삶의 터전과 공동체를 훼손하는 막무가내식 개발이 왜 가능하게 된 것인지 정보공개청구를 하고, 허가기준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을 요구해 왔지만 시에서는 건설업체의 의견을 들어 비공개하기 일쑤였다. 공사 진행 시 건축주가 제출한 '안전사고 예방 계획서'마저 '합의 이후에 볼 수 있다'며 비공개하는 사례도 있었다.

많은 지자체에서 인·허가 신청, 심사, 결정에 관한 정보를 주민이 청구할 경우, '개발업체의 비공개 요청'으로 공개할 수 없다거나 '업체의 경영 및 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으로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미 인허가가 끝난 후에 청구를 해도 이러한데, 진행 중인 경우는 '의사결정 과정 중에 있으므로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가 추가되어 비공개가 당연시 된다. 사실 공공기관에서 제3자의 요청만을 사유로 들어 공공에 제출한 정보를 비공개하는 것은 위법한 일이다.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에 대한 공개여부 판단은 공개로 인한 공익과 공개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를 비교해 공공에서 책임있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자체가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고 건설업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주고 있으니 시민들은 지자체에 대해 더더욱 신뢰할 수가 없게 된다.

개발의 과정에서 정보 접근과 개입의 통로가 차단된 주민들은 소송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소송에는 변호사 비용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게다가 공익소송에 대한 감면 규정이 없는 한국의 경우 패소할 경우 공익성 여부와 관계없이 막대한 패소 비용까지 물어야한다. 주민 개개인이 감당하기에 매우 가혹한 부담임에도 불구하고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에, 주민들은 싸움을 택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송에 들어가면, 그 동안 업체의 영업비밀이라며 공개하지 않았던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공직자들의 비리가 밝혀지기도 하고, 토건세력이 법망을 피해 어떤 수법으로 허가를 받아내는지가 드러나기도 한다. 기나긴 싸움 끝에 주민들이 과정상의 문제를 밝혀내고 공사를 중단시키면, 시에서는 세금으로 수천에서 수억에 이르는 수임료를 지불한다. 지난해 대법원에서 있었던 경전철 혈세낭비 손해배상 주민소송의 경우 용인시가 소송대리인 김앤장에게 지불할 금액이 84억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권력남용을 숨기기 위해 낭비된 행정비용을 떠나 가장 중요하고 비극적인 사실은 이미 진행한 공사로 훼손된 산림과 공동체는 되돌릴 수조차 없다는 점이다.

발전소 건설 반대주민들이 삼가면 동리마을 앞에 모여 있는 모습.ⓒ하승수 변호사 제공

지역사회 내 주요 사안, 그 과정부터 공개해야

비단 한 지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며, 난개발에만 해당하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태양광 발전사업 허가, 화학물질 배출시설 관리, 폐기물 처리, 공공시설물 건립 등 전국 곳곳의 지자체에서 지역 공동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들이 졸속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기사는 셀 수 없다. 주민들의 고통과 싸움도 그 만큼 많다는 의미다.

정보공개법 9조1항 5호는 '의사결정 과정이나 내부검토 과정 중에 있어 공개 시 공정한 수행에 상당한 지장이 우려되는 경우' 해당 정보를 비공개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상당히 문제가 큰 조항이다. '의사결정 과정 중'이라는 언술 자체가 매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업무수행의 판단 기준 역시 업무를 수행하는 행정에서 쥐고 있기 때문에 5호 사유는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행정에서 비공개의 근거로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하지만 정보공개제도의 취지는 투명성 보장과 국정에 대한 참여이고, 결정과 논의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없다면 시민들의 참여는 불가능하다. 시정에 대한 시민들의 개입을 '잡음의 요소'로 생각하는 권위주의적 행정을 타파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의사결정 과정'에 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공정성'과 '공공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두고 비공개 여부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행정에서 이뤄지는 결정들에 대해 시민들이 그 과정을 알 수 있도록 회의 공지를 의무화하고, 참관이나 방청을 보장하는 회의공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주택 및 도시개발 계획을 포함해 지역사회 내에서 주요한 의제가 그 결정 과정부터 충분히 공개되고 논의되지 않을 때, 결국 우리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떠안게 된다. 이로 인한 피해는 가장 취약하고 여유가 없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지친 싸움을 거쳐 내공을 단단히 키운 주민들이 왜 정보공개를 절실히 요구하는지 우리는 제대로 다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주민들이 지역사회의 결정에 있어 시의적절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지자체가 주민을 위해 일하는 권력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자연, 공동체, 그리고 삶을 파괴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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