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15일 배우자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의혹이 계속 확산되자, 여의도 당사에 들어가며 만난 취재진들에게 “현실을 좀 잘 보시라고요”라며 황당한 해명을 했다.
그는 “가까운 사람중에 대학 관계자 있으면 한 번 물어봐라. 시간강사를 어떻게 채용하는지, 무슨 교수 채용 이렇게 하는데, 시간강사라는 거는 전공 이런 거 봐서 공개채용하는 게 아니다. 어디 석사과정에 있다 박사과정 있다 이러면 얘기 하는거야”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재차 “겸임교수라는 건 시간강사다. 무슨 채용 비리 이러는데, 이런 자료 보고 뽑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의 이 발언은 사실일까? 그래서 윤 후보가 말한대로 현재 대학에서 비정규교원으로 근무중인 복수의 관계자에게 ‘시간강사나 겸임교수는 공채를 안 하나’,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는 같은 것인가’, ‘채용 시 허위 이력을 기재하면 어떻게 되나’를 직접 물어봤다.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다 공채로 뽑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며 기막히다는 태도를 보였다.
현재 서울 모 4년제 대학 사회과학대학 소속 연구소에서 BK21 프로젝트 ‘연구교수’로 근무중인 A 씨는 윤 후보의 발언을 듣고 의아하다는 반응이었다. 호주에서 박사학위를 딴 그는, 지난해 여러 대학 채용 절차에 응해 일자리를 구했다. 이 때문에 누구보다도 최근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A 씨는 각 대학과 학과 홈페이지, 학회 홈페이지, 하이브레인넷을 뒤져 강사, 교수 등 채용에 관한 정식공고를 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든, 겸임교수든 강사든 모든 교원 임용 절차는 공식화 되어 있다. 법에 정해져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 다 올라온다”라며 “나는 지원할 때 연구계획서, 경력증명서, 이력서 등 관련 서면 자료를 제출하고 심사 끝에 인터뷰도 했다. 학교별로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절차는 다 거친다”고 말했다.
또 “겸임교수 채용방식이 학교 별로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은 박사학위 소지자가 아니면 어렵다. 그게 아니라면 해당 전공분야에 탁월한 업적이 있거나 확실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라며, “비공식적으로 채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예전에 그랬더라도 요새는 다 공식화하는게 추세”라고 말했다.
서울 모 4년제 대학 인문사회계열 연구소 연구교수인 B 씨는 중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땄고 한국에 돌아와 전국 곳곳의 대학에 지원한 끝에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쳐 어렵사리 이 연구소의 계약직 박사급 연구원이 될 수 있었다.
B 씨는 “연구교수든 겸임교수든 강사든 다 공채”라며, 윤 후보에 발언에 대해선 “시간강사나 겸임교수가 뭔지 제대로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인문사회계열과 김 씨가 일한 예술계열이 경우가 좀 다를 수는 있겠다면서도 “미술 분야 전문성을 보고 임용했다면 학위보다 강의나 수상 등 경력이 더 커리어에 중요한 게 아니냐. 그런데 그런 부분에서 사실이 아닌 게 있다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수도권 2-3년제 대학 여러 곳에서 공학계열 학과의 겸임교수 또는 강사로 일하고 있는 C 씨는 러시아에서 해당 분야 석사학위를 받았고 관련 분야 업체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C 씨는 “정상적인 채용공고가 올라와 지원했고 서류 심사 거쳐 면접 보고 임용됐다. 강사나 겸임교수나 마찬가지”라며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할 지라도 다 공고문은 무조건 공개적으로 올린다”고 단언했다. 그는 윤 후보 주장에 대해 “어처구니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A, B, C 씨는 공히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시간강사와 겸임교수는 직위는 물론 고용 형태, 처우가 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대학에서 강사에게 겸임교수 직함을 주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현재 드러난 김건희 씨의 허위 경력 의혹이 모두 사실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A 씨는 “이력서에 허위 사실이 있다는 게 입증되면, 법적 대응으로 가기 전에 당연히 임용 취소”라며, “대부분의 대학들이 채용 공고문에 그런 사실을 밝힌다”고 설명했다.
B 씨는 “김 씨와 비슷한 사례를 본 적 없다”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적으론 업무 방해고, 학계에서 도덕적 책무 위반으로 영원히 발 못 붙이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구멍가게에서 사람을 뽑을 때도 이력서에 허위 사실을 쓰면 문제가 될텐데, 대학에 내는 서류에 그러는 게 말이 되냐”고 꼬집었다.
C 씨는 자신이 재직중인 대학들의 채용공고문을 직접 보여줬다. 실제 공고문엔 “제출서류가 허위 또는 변조에 의한 것임이 판명되었을 경우에는 임용을 취소함”, “지원 자격이나 허위경력 등 임용 요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임용 취소할 수 있으며, 향후 우리대학 강사초빙 지원 자격을 부여하지 않음”이라고 명기되어 있었다.
그는 김 씨의 허위 이력 논란에 대해선 “사람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용어를 헷갈려 오기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두 번이 아니지 않나. 몰랐으니 용서되는 수준이 아니다. 스스로 잘못 인정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이렇게 윤 후보가 물어보란대로 현직 비정규 교원들에게 물어봤다. 윤 후보의 발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제 와 ‘내가 말한 건 김 씨가 재직했던 2000년대의 일’이라고 발뺌해도 소용없다. 본인이 “현실을 보라”고 취재진에게 말하지 않았나,
대선 후보의 발언은 그 시기 가장 주목받는 콘텐츠 중 하나다. 장차 대통령이 될 사람이 하는 말이기에, 그 발언이 가지는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앞으로 특정 제도나 절차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도 미리 가늠할 수 있다. 그러니 문제 발언을 하면 큰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윤 후보는 배우자의 과거 행실에 대해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공무원법, 사립학교법 등 관계 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대학 교원 임용 절차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있게 엉터리 해명을 했다. 이는 합법적 채용 절차를 거쳐 정당하게 임용돼 대학에서 연구와 강의에 매진하는 수많은 겸임교수와 시간강사들의 권위를 깎는 불의한 행동이다.
김 씨처럼 알음알음으로 채용되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 아니며, 흔히 발생하는 일도 아니고 채용 비리일 가능성이 높다. 윤 후보가 지난 6일 선대위 출범식 연설에서 8차례나 언급한 ‘공정’이 이런 것인가? ‘윤석열표 공정’으로 나라의 기본을 이루겠다고 했다는데, 그랬다가는 온 대학 사회에 채용비리가 날뛸 판이다. 윤 후보는 반드시 자신의 발언이 잘못됐음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
윤 후보가 강변에 가까운 해명을 하고 몇 시간이 흐른 뒤, 김 씨는 ‘허위 이력과 관련 청년들의 분노가 높은데 사과할 의향이 있나’는 취재진의 질문에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다시 몇 시간 뒤 취재진 앞에서 “사실관계 여부를 떠나 국민께서 불편함과 피로감을 느낄 수 있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윤 후보는 즉시 공감의 뜻을 밝혔다. 그는 “(김 씨에 대한) 여권 공세가 기획 공세”라는 입장은 고수하며 “아무리 부당하다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국민 눈높이에서 봤을 때 조금이라도 미흡한 것이 있다면 그 부분에 대해선 송구한 마음을 갖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부의 발언은 ‘실제로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국민들이 불편하다니 사과할께’라는 식으로 읽힌다. 국민의힘 선대위도 입장문을 내고 “민주당은 이력서 문제를 채용비리라는 식의 악의적인 프레임으로 침소봉대하고 있으나 사실과 다르다”라며, “학력이나 경력을 부풀렸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라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아직도 윤 후보 내외는 본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고 지금까지의 해명이 충분히 합당하다고 믿는 것 같다. 국민의힘도 그 입장을 가져가려는 것 같은데, 그러면 직면하게 될 것은 허위사실과 엉터리 해명이 맞다고 우기는 불의, 불공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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